아빠의 역할

지난 두 주는 하연이와 예연이가 차례대로 아파서 학교에 못가고 집에 누워 있었다. 열때문에 벌개진 얼굴로 누워 있는 것을 보면, 아빠로서 마음이 참으로 안타깝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럴 때면 나는 바로 아빠로서의 장난을 시작한다. 표정으로, 혹은 말로 광대 노릇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한참 정신 없이 누워서 힘들어 하다가 아빠의 장난이 시작된 것을 보면서 그 벌건 얼굴로 웃음을 그치지 못한다. 나는 아이들이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다. 더우기 아파 힘들어 할 때에는...

집 밖에서는 사실 유머 감각도 없고, 늘 진지하기만 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집에서, 특히 아이들에게 나는 많은 경우 코미디언이고 장난꾸러기다. 그런 나를 아이들이 좋아한다. 나는 그것이 좋다.

어렸을 때 감명 깊게 읽었던 탈무드라는 책에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는 엄하지만 무섭지 않은 존재여야 한다." 가정에서 엄마의 역할은 인자와 사랑을 공급하는 역할이어야 하고, 아빠의 역할은 엄마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것이다. 어릴 때는 이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떻게 엄한 아버지가 무섭지 않을 수 있을까? 무섭지 않으면 어떻게 엄한 아빠가 될 수 있을까?

내 아버지는 무서운 분이셨다. 엄하셨는지는 그렇지 않으셨는지는 잘 모르지만, 무서운 분이셨다. 우리 네 형제가 되도록이면 피하고 도망가기를 원했던 존재,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버지셨다. 그래서 나는 무서운 아버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그렇지 않고 무섭지 않은 아버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아빠가 된 지금, 그 말뜻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엄하다"는 것은 아이들의 잘못과 죄에 대한 것이다. 그것을 용인하지 않는 것이고, 눈물을 흘리게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따끔하게 질책하여 바로 잡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엄한" 아버지가 맡아야 할 역할이다. "무서운" 아버지가 되지 않는 것은 그들이 평소의 상태에 있을 때 언제든지 접근 가능하고 친숙하게 느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잘못해서 야단을 쳐야 하는 때에도 아이들과 아이들의 죄/잘못을 분명히 구분할 줄 알아서 그 아이들의 인격에 상처를 주지 않는 그런 아빠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해서는 안된다는 격언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코미디언, 장난꾸러기 아빠가 갑자기 엄해 지는 것을 보는 아이들은 때로는 많이 혼란스러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빠가 엄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게 도와 준다면, 아이들은 아빠의 자신들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아빠가 자기 자신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잘못을 싫어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게 될 때, 아이는 그 잘못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진다. 아빠와 함께 그 죄/잘못을 싫어하는 아이가 되는 것이다.

내 자신이 부족한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빠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것을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내가 신앙 안에서 성숙해 갈수록 아빠의 역할도 점차 잘 감당해 나갈 수 있는 것을 경험한다. 결국 아빠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주님 안에서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한다.

하연이와 예연이의 아빠로서의 나... 아이들을 대하면서 "엄하지만 무섭지 않은 아빠"라는 탈무드의 지혜가 항상 내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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