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함

삶을 더 살아가면서, 그리고 공부를 해 나가면서 분명히 깨닫게 되는 한 가지는 내가 절대적으로 무식하다는 것이다. 마치 태평양 바다와 같이 넓은 지식의 세계에서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물 한 컵도 안되는 정도라고 할까?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TA인 나를 가리켜 Expert라고 소개하는 것 자체가 많이 부담스럽다. 아는 것이 거의 없는데...

인생을 통해서 배운 것은 내 지식을 뛰어넘는, 지식 밖의 세계가 얼마나 광대한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알아 나가는 것보다 알아야 할 것들(다시 말해 내가 무지한 것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 정복할 수 없는 지식의 바다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는다.

나는 진정으로 무식한 자이다. 무/식/한 자이다. 머릿속이 텅 비어 있는 그런 자가 바로 나다.

다행인 것은... 그런 무식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문제이다. 아무리 뛰어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나보다는 덜 무식하겠지만, 결론은 무식하다는 것이 모든 인간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하는 한 사람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가 아는 선배는 교회에서 리더였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던 그가 어느날 소그룹 모임에서 고백했단다. "지식을 더 많이 쌓을수록, 더 많은 것을 알아 갈수록, 성경이 얼마나 형편 없는 책인지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더 힘들어진다."

과연 그럴까? 세상의 지식은 방대하다. 하지만 그 방대한 지식을 창출한 자들이 얼마나 무식한 자들인지, 그리고 그들이 쌓은 소위 학문 체계가 얼마나 오류 덩어리인지, 모순 덩어리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그 선배라는 사람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한낱 인간에 불과한 자들의 짧은 지식의 모음에 의해서 판단되고 제단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자신이 무식하다는 깨달음도 얻지 못한 초보적인 인식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언젠가 유명한 철학자인 Bertrand Russell이 Why I am not a Christian이라는 글을 썼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학자. 그 사고의 엄밀성과 지식의 방대함으로 모든 사람의 인정을 받는 그 철학자의 성경과 기독교에 대한 인식과 비판은 한 마디로 천박하기 그지 없는 수준이었다. 예를 들어 그가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무화과를 마르게 하신 예수님에 대한 글은 학문을 하는 자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인 텍스트의 바른 분석과 그 텍스트가 작성된 시대적 배경과 그 시대의 관점에서 텍스트를 해석해 내는 것을 배제하고 있다. 그 본문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생각과 주장만을 내세우며,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 그의 모습은 뛰어난 철학자의 "무식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다.

무식함... 나는 그 무식함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고자 평생 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뛰어난 사상가들이 그 무식함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처럼, 나 또한 치가 떨리는 내 무식함을 평생 벗어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 무식함 가운데 많은 오류를 생산해 내고, 실수를 저지를 것이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세상의 광대한 그 지식의 세계, 내가 보기에 태평양 바다보다 더 넓어 보이는 그 세계는, 하나님 앞에는 한 방울의 물보다 못한 것이다. 하나님은 지식 그 자체이시며, 그분의 지식은 광대하여 측량할 수 없다. 그분 앞에서 나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존재는 절대 무식한 존재일 뿐이며, 지식을 조금이라도 자랑할 수 없다.

그분이 내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나를 구원하신 분이시다.
그분이 내 아버지이시다.

그 사실이 내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나는 무식하지만,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은 세상이 측량할 수 없는 놀라운 지식을 가지신 분이시다. 그분은 그 모든 지식을 동원하셔서 나를 인도하시며 나를 가르치신다.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도, 그분은 이해하시며, 내가 무식하여도 그분은 아신다.
그런 그분 앞에 내가 내세울 것이 무엇인가?
내가 주장할 것이 무엇인가?
내가 고집 부릴 것이 무엇인가?
내 무식으로 하나님의 지식을 이길려고 하는 무모한 짓을 감행하는 어리석을 자가 될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지식 앞에, 그분의 지혜 앞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분의 말씀 앞에 무조건 엎드려 순종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분의 말씀이 무식한 나를 설득시켜야 할 이유도 없다. 내가 이해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나는 순종할 뿐이다.

내 무식함을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복이 되는 것을 본다.
세상으로 볼 때,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고, 인정받지 못할 일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 바로 복이다.
그렇게 본다면, 나는 복받은 자이다. 부끄러운 내 무식함 때문에 그분께 복받은 자이다.

무식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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