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학회 발표를 앞둔 오전...
조용히 연구실에 앉아 하나님께 감사한다.
살아있음에 대해서... 그것이 참 큰 감사제목이 됨을 지난 주와 이번 주, 폭풍같은 스케줄 속에서 극한을 향해 치닫는 삶을 사는 가운데, 깨달았다.
숨쉬는 것, 움직이는 것, 그리고 주어진 일이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어제가 518. 학생들과 518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예전에는 518 때가 되면 대학가는 늘 들썩였다. 하지만 너무나 조용한 캠퍼스, 그저 다른 날에 비해 전혀 특이할 것이 없는 날인 것처럼 살아가는 대학생들을 일깨우고 싶었다.
"역사를 망각하면, 그 역사는 다시 되풀이된다"는 것을 화두고 시작한 518의 내 개인적인 경험들.
초등학교 5학년 때 광주의 한 가운데서, 도청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살던 내가 직접 경험한 그 끔찍한 비극, 하지만, 그 안에서 피어나던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어제 트위터에서 어떤 한 사람은 "광주사태"는 사회 하층민에 있던 빨갱이들의 반역행위이고, 따라서 그들을 처단하고 진압한 것은 지극히 정당한 정부의 조치였다고 역설하는 것을 들었다. 그가 과연 광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그렇게 주장하는지... 그 글을 읽으면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무식하면 용감하고, 과격해질 수 있다.
그 당시 "민중"들은 광주 시민 모두였다. 못 사는 사람들이 일으킨 반란이 아니었다. 오해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주로 중간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주축을 이뤘지만 거의 모든 광주 시민들이 참여한 범시민적 운동이었다.
원하는 것은 단하나. 민주화. 민주적인 정부를 세우고, 민주적으로 대통령을 국민들이 직접 뽑는 것을 원했다.
광주시민들은 항거하는 와중에도 북한의 선동을 매우 경계했다. 우리 동네에서 총을 들고 정부군에 대해 항전에 참여했던 대학생들, 아저씨들은 간첩으로 보이는 사람, 북한을 찬양하고 선동하는 사람을 붙압아 경찰(혹은 정부군)에 넘겼다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북한 간첩은 설 땅이 없음을 분명히 했었다. 그 "무용담"을 전해들은 동네 주민들은 모두가 잘 했다고 칭찬했다. 우리 모두는 반공교육을 철저하게 받는 박정희 세대였다. 그런 삶들을 종북 빨갱이로 모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어처구니 없다. 무식하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지만, 설사 광주 시민들이 빨간물에 든 사람들이라고 치자. 그렇다고 그렇게 학살을 자행하는 것이 맞는가? 임신부의 배를 가르고, 처녀의 가슴을 도려내는(내 어머니께서 직접 그 시신을 보셨다.) 그 악한 행위가 정당화되는가?
내가 오늘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 모든 인간도 동일하게 오늘을 살아갈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사상적으로 내 반대편 극단에 있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주어진 생명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것이다. 인간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것이다.
오늘, 내 한 목숨 살아 있음에 감사하면서, 518 때 죽어간 영혼들을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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