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가 충성스러운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운명은 각기 달랐다.
그 대표적인 예들이 요압, 아비아달, 나단이다.
요압은 다윗이 떠돌이 생활을 하며 숨어지내던 아둘람굴 시절부터 다윗과 동고동락을 하던 사람이었다. 용사였으며, 다윗의 가장 측근에 있는 사람으로 지금으로 국방부 장관을 지낸 사람이었다. 당시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리고 가장 리더십이 있고, 용맹하며, 군사적으로 능력있는 자가 아니라면 결코 차지 할 수 없는 자리가 바로 군대장관이었다. 군대장관은 언제든지 왕에게 반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압은 다윗이 죽음의 위협 가운데 있을 때에도, 밧세바와 간음의 죄를 짓는 그 타락의 자리에도 다윗을 떠나지 않았던 심복이었다.
하지만 그는 교만한 자였다. 다윗을 섬기는 자였지만, 다윗의 명령을 수시로 무시했다. 자신이 보기에 부당하다면 왕의 명령도 소용이 없었다. 다윗이 보는 앞에서는 매우 충신인 것처럼 행동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었다. 다윗은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을 어떻게 제어할 수 없어서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요압이 결정적으로 다윗의 눈 밖에 난 것은 바로 다윗 왕위 계승문제에서였다. 다윗이 전에 분명히 솔로몬을 다음 왕으로 지목했음을 분명히 앎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지하지 않고,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려고 했을 때, 그의 편에 동조하게 된다.
그것은 명백한 왕명의 거역이었고 반역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그는 다윗의 눈 밖에 나게 되고, 결국 솔로몬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다윗의 심복이고, 충신인 것처럼 보였지만, 마음으로 다윗에게 온전한 충성을 바치지 않았던, 그래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불순종을 일삼던 자의 최후였던 것이다.
아비아달도 요압과 비슷한 경우이다. 사울의 공격을 피해 급히 달아나던 때에 배가 고파 자신의 성소를 찾았던 다윗에게 막 꺼내온 진설병을 주었다는 이유로 가족과 친족이 사울로부터 몰살당하는 끔찍한 피해를 입었던 그를 다윗이 찾아가서 다윗의 무리 가운데 거하게 함으로 그와 다윗의 관계는 시작되었다. 그는 제사장으로서 다윗과 늘 함께했었다. 압살롬이 반역했을 때에도 그는 다윗을 위해 충성을 바쳤던 자였다. 후에 합류한 사독과 함께 두 명의 대제사장 중 한 명으로서, 아니 사독보다 더 앞선 자로서 다윗왕국에서 영적인 리더의 역할을 감당했던 자였다.
하지만 그도 요압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순간에 솔로몬이 아니라 아도니야의 편에 섬으로 인해서, 결국 은혜의 자리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 누구보다도 왕의 마음을 잘 아는 자였기 때문에, 실수로 아도니야의 편에 선 것이 아니다. 주인의 뜻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뜻에 순종하지 않는 의지적인 불순종의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것은 반역이었다.
하나님께 구별된 제사장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솔로몬은 아비아달을 요압과 같이 처리하지 않은 대신, 그를 그의 고향집으로 쫓아보낸다. 이후로 아비아달의 집안은 중앙정치와는 완전히 거리를 두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목숨은 구했지만, 그 반역의 댓가는 컸다.
요압과 아비아달과는 다른 케이스가 나단 선지자였다. 그는 언제 어디서 다윗의 진영에 합류했는지 기록이 없다. 그럼에도 그는 다윗 개인의 영적인 리더와 조언자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그는 다윗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자였다. 다윗이 밧세바와의 간음으로 끔찍한 죄악 가운데 있을 때, 추상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를 일깨운 것은 나단 선지자였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한 전을 짓고자 마음에 생각하고 있을 때, 그 마음을 아시고 하나님의 뜻을 전한 것도 나단 선지자였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이 중요한 고비에 있을 때, 하나님의 바른 길을 알려 준 등불과도 같은 존재였다.
나단은 끝까지 다윗에게 충성한다. 차기 왕에 대한 다윗의 마음이 사무엘에게 있음을 알았고, 또한 그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 왕의 마음을 받아, 그것을 받드는 자였고, 지키는 자였다. 왕이 바르지 못한 길로 갈 때는 옆에서 보기에 심하다 할 정도로 너무나도 엄하게 그 왕을 대했지만, 그 모든 것은 다윗을 위한 것이었고, 그를 사랑하였기 때문에 감당한 그 자신의 십자가였던 것이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충신이었다.
나는 청년들을 섬기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최근에는 요압과 같은 청년을 보았다. 겉으로는 너무나 충성스러운 자였지만, 결코 그 마음이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하고 결국 그 가운데 끔찍한 죄를 짓고야 마는, 그래서 스스로 은혜의 자리에서 떨어져 나가버린 불쌍한, 그렇지만 너무나 악한 사람을 보았다.
아비야달과 같은 청년도 있었다.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 구원을 잃어버리지는 않지만, 하나님 앞에서 상을 받을 만한 어떤 것도 없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울 수 밖에 없는 그런 청년도 있었다.
물론 나단과 같은 청년들도 많이 봤다. 겉으로는 부족한 것이 많아 보이지만, 그 중심이 하나님께로 향해 있어서 죽도록 충성하며, 순전한 마음을 하나님께로 바치는 그런 너무나 아름다운 청년들도 보았다.
그렇다면 정작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내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께 늘 변하지 않는 충성을 바치는 나단과 같은 자인가?
아지면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면서, 왕의 명령을 불순종하는 그런 악행을 일삼는 죄인인가?
내 소망은 나단에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 나의 왕... 그분 앞에 내 모든 것을 다 바쳐 충성을 바치고자 하는 소망이 나에게 있다. 간절함이 나에게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내 삶을 통해서, 내 모든 삶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가?
이 두려운 질문 앞에 오늘도 나는 아파하며 무릎을 주님 앞에 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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