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화요일, 금요일은 힘든 날이다. 수업 세 개를 연달아하고 나서 바로 학생 상담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내 경우 학생들이 상담하러 많이 오기 때문에 상담시간 두 시간 내내 열심히 떠들어 대야한다. 수업까지 포함하면 상당히 많은 시간을 떠들고 서있어야 해서 모든 것이 끝나면 녹초가 된다(그런데 목은 멀쩡...).
예전에는 그 후에 학교에서 늦게까지 논문을 쓰려고 남아 있었는데, 너무 힘들다보니 생산성이 지극히 낮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학기부터는 그 두 날은 그냥 집에 간다. 가면 가자마자 쓰러져서 심한 경우에는 다음날 아침까지 계속 잔다.
어제도 역시 집에 가자마자 잠이 들었는데, 저녁먹으라고 깨우는 첫째 때문에 깼다. 식사를 하고 피곤해서 침대에 누웠는데, 저녁에 공부하던 둘째가 와서 종알종알대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꼭 껴앉고 대화를 나누다보니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소하지만 힘든 나를 회복시키는 행복을 느끼며, 세월호 유가족이 생각났다. 죽어간 아이들.. 그들도 그 부모에게는 내 딸들과 같은 존재였을텐데... 그 생각이 드니 미안하기도 하고, 그들이 얼마나 괴롭고 힘들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요구대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온 마음을 다해 해 준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평생 그 큰 빈 자리를 느끼며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그 아픔은 어떻게 해도 치료될 수 없는 그런 것일 터...
그 아이들 나이가 거의 다 되어가는 우리 딸들을 볼 때마다 세월호 유가족을 생각한다. 그들의 아픔을 생각한다. 내 삶의 힘든 일들에 치여서 그들을 잊는 것이 너무 미안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아픔을 치유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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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 간 둘째를 생각하며...

오늘 둘째가 학교에서 수련회 갔다. 평창으로 간다는데, 오늘 하루 종일 마음의 불안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방금 아내에게서 무사히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불안한 마음이 약간을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약 500일 전, 들뜬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꽃같은 아이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어른들이 수장되었다. 그 큰 배가 서서히 가라 앉는 것을 눈 앞에 보면서도 부모도, 그 누구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음을 찢어졌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 때의 그 공포감과 좌절감이 내 안에 깊은 상처를 남긴 것 같다. 객관적으로 보면 너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이 분명하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지 않다.

세월호 이후 무엇이 바뀌었는가? 세월호 유가족들은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며 필사적으로 싸우는데, 정부와 사회는 그들을 보상금을 노리는 자들로, 세상을 소란스럽게 만드는 자들로, 심지어 귀찮은 자들로 매도하지 않았는가? 그러는 사이에 진상규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모든 것은 조용히 덮인다. 정부는 물론이고 사회는 반성하지 않는다. 그래서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여객선과 화물선의 운항도 세월호 사태 이전에 비해서 그리 나아진 것이 없단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그토록 필사적으로 싸우는 이유는 그들의 자식들의 희생이 의미없는 것이 되지 않게하려는 것이다. 그 아이들은 이미 죽었지만, 그들의 죽음이 앞으로 올 비슷한 사고를 예방함으로 수 많은 인명을 구하는 데 기여했다는 그런 의미부여, 그로 인한 위안이 바로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것일터... 그렇다면 그들의 싸움으로 득을 보는 것은 사실 그들이 아니라 우리다. 그들이 아무리 싸운다고 아이들이 살아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으로 내 생명, 우리 아이들의 생명이 덜 위험해 지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들의 싸움은 그들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바로 내 싸움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싸움이 되어야 한다. 그들이 그냥 잠잠하게 있더라도...

그런데 그 싸움은 여전히 그들의 싸움이고, 사회는 그들을 잊어간다. 그리고 "아직도 그러고 있느냐"는 반응으로 싸늘한 시선을 그들에게 던진다. 이것보다 더 큰 부조리가 있을까?

둘째가 걱정되고 보고 싶은 오늘 나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노란리본 뱃지 두 개를 얻었다. 그것은 그간 기억은 하고 있지만 그들과 함께한다는 적극적 의사표명을 하지 않았던 내 자신을 반성하고, 세상에 그들을 잊으면 안된다는, 나도 결코 잊지 않겠다는 내 스스로의 반성의 고백이자 세상을 향한 항변이다.

모든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어른들인 우리가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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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 순종하려는 의지

어제 퇴근길에 들은 Ravi Zacharias의 질책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는 현대 교회의 문제가 말씀이 부족한 것, 혹은 말씀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진단하며 목소리를 높여 질책했다.

나는 그의 말에 100% 동의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 시대 교회에서 보이는 양상은 말씀에 대한 이해, 말씀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자세가 너무나 희박하기 때문이다.  Sola Scriptura가 개신교의 가장 중요한 모토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어느새 장식품이 되어 버렸고, 말씀은 설교단에서, 혹은 라디오에서 설교자에 의해 한 번 소화된 것을 듣는 것으로 끝인 세대가 바로 우리 세대이다. 일반 성도들 뿐만 아니라 장로 집사들, 그리고 심지어 수 많은 목회자들까지도 말씀에 얼마나 무지한지... 치가 떨릴 정도이다.

하지만 Zacharias가 지적한 것은 보다 근본적인 것이다. 말씀에 무지한 원인이 바로 말씀을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말씀을 많이 아는 자라 하더라도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것이 무서운 것이다.

내 자신을 생각해 보았다. 아침마다 말씀 앞에 무릎 꿇겠다고 다짐했지만, 바쁘고 급한 일이 생기면 그 시간이 대폭 줄어들기 있쑤이고, 그렇지 않고 말씀을 읽을 때에도 5-6 장 정도 읽는 그 시간, 30분에서 한 시간 밖에 안 되는 그 시간에 내 마음을 말씀 앞에 겸손히 하고, 온 마음을 다해 만군의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보다는 읽는 도중에 생각은 딴데로 흐르는 경우도 종종 있고, 눈은 말씀을 따라가고 있지만 생각은 다른 일을 떠올리면서 그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 급하면 빨리 해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고, 말씀 후에 기도할 때에도 전심을 다해 기도하기보다는 하나님께 드리는 하나의 인사치례로 후다닥 끝내고 밀려있는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 뿐만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관계에서, 하나님 중심을 외치고 살지만, 실제의 모습은 나 중심이고 세상 중심이며 하나님은 어느새 변방으로 밀려나버린 삶을 살기 일쑤이다. 그 와중에 짓는 죄악은 일일이 나열하기가 부끄러울 정도이다. 생각과 말은 성인의 삶을 지향하지만, 실제의 모습은 죄인 중의 괴수의 삶을 사는 위선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Zacharias는 그런 내 태도에 엄중한 경고를 던져준다. 하나님은 나에게 그런 대접을 받으실 분이 아니라는 것.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왕의 왕이 되시는 분이라는 것, 그분은 나를 구원하신 구원자이시고, 나의 아버지가 되시는 분이라는 것. 이 온 우주도 그분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데, 하물며 나같은 것은 눈에 띄지도 않을 것에 불과한데, 그런 나를 주목하시고 찾아 와 주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라는 것.

그분을 홀대하는 내 자신을 깨달았고, 그 근저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려고 하는 내 자신의 죄악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것에 몸서리가 쳐졌다.

나는 그런 자인 것이다.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의지적으로 그분을 거역하고 그분을 멀리하고자 하는 본성을 가진 자가 바로 나라는 것. 적어도 나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혐오하고, 내 자신을 앞세우고자 하는 욕망이 바다처럼 거대한, 흉악한 자라는 그의 지적이 딱 들어 맞는 지적이다.

그 진노의 설교를 들으면서 참 슬펐다. 나라는 존재가 그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것이 슬펐고, 그런 나에게 그렇게 푸대접을 받는 하나님께 죄송해서 슬펐다.

그런 나를 보게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하나님께 내 죄악을 자복한다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셔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내 안에서 만들어 주시지 않을까? 참 그렇게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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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o

2013년 1월인가? 처가댁을 방문했다가 태어난 지 한 달 밖에 안 되는 강아지 두 마리를 집으로 데려왔다. 강아지들을 데려올 것인가를 고민할 때, 나와 둘째는 적극 찬성, 첫째는 유보, 아내는 반대했었다. 찬성이 많았기 때문에 결국 데려 오기로 했고, 그 중 한 마리는 강아지를 키우기를 원하시는 둘째 친구의 할머니 댁으로 보냈다(지금도 대접 잘 받고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강아지는 어릴 때는 키우기가 재미있지만 커가면서 어려움이 점점 늘어난다. Bruno라고 이름붙인 우리 애도 그랬다. 강아지 때는 똥오줌 가리게 하는 것 빼놓고는 다른 문제는 없었다. 물론 그것도 쉽지는 않았지만...

강아지가 커서 개의 모습이 점점 드러나면서 가장 큰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는데, 털이 너무나 많이 빠진다는 것이다. 봄과 가을 털갈이 할 때 무지막지하게 빠지는 것을 차치하고도 그 외에도 상당히 많은 양의 털이 빠진다. Bruno가 잠시 놀다간 자리를 진공청소기로 청소하면 턱이 수북히 싸이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고, 음식, 옷 등 모든 곳에서 Bruno의 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야 집에 거의 없고 밖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니 크게 신경쓰이지 않지만, 아내의 스트레스는 대단했다. 원래 강아지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에다 털관리에 먹이고 똥오줌 치우는 것을 떠맡아야 했기 때문에 참 힘들어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베란다에서 키우기로 했다.

문제는 베란다로 내 보내면서 Bruno의 성격이 거칠어진 것. 그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베란다에서 생활하면서부터 외부 사람들을 보면 낯설어 하면서 심하게 짖어댔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밖에 산책할 때만 생기는 문제라서 그나마 좀 나은 것이었고,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우렁찬 목소리. Bruno는 큰 개가 아니고 중간에서 작은 축에 속하는 크기이지만, 목소리만으로 본다면 대형개 못지 않은 소리를 낸다. Bruno가 자주 짖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짖을 때면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퍼질 정도이다.




그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개들이 많아서 그런지 그런 큰 목소리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온 동네에 개짖는 소리가 많이 들렸기 때문에 거기에 묻힌 것이다. 하지만 새로 이사온 동네는 그 전보다 훨씬 조용한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Bruno 때문에 민원이 많이 들어 온 모양이다. 근처 사는 사람이 찾아오기도 했었다.

그런 불만을 접수하고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했다. 덕분에 적어도 우리가 보기에는 짖는 횟수가 전보다 현저하게 줄었다. 하지만 이웃들이 보기에는 부족했나보다. 며칠 전 저녁에 갑자기 경찰 두 명이 찾아왔다. 공손하고 좋게 말하긴 했지만 이 동네 주변 사람들의 민원이 경찰서로 들어 오고 있으니 조치를 취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제안한 것이 성대수술.
평생 처음 경찰의 방문을 받고 온 가족들이 비상대책회의를 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옵션은 짖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성대수술이나 마스크 착용)과 처가댁으로 돌려 보내는 것.
일단 마스크 착용에 대해서 알아 봤지만, Bruno의 성격상 더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것, 그리고 효과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남은 것은 둘 중 하나: 성대수술 아니면 돌려 보내는 것.

많은 토론을 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특히 첫째가 많이 힘들어 했다. 처음에 데려올 때는 유보 입장을 보이던 아이. 강아지가 싫어서가 아니라 데려 올 경우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성숙한 태도를 견지했던 아이(그 때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Bruno를 데려 오고 성장해 가면서 Bruno에 대해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가장 성실하게 챙기고 마치 동생처럼 아끼고 사랑한 사람은 바로 첫째였다. 밖을 나갈 때면 언제나 Bruno걱정이 먼저였고, 아무리 힘들어도 Bruno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세상구경시키면서 산책시키는 것을 거르지 않았고, 그를 위해서라면 평소에 잘 않던 청소하기를 마당하지 않았고, 집에 있을 때면 늘 먹을 것 챙겨주고 똥오줌 치워주고, 놀아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Bruno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늘 그를 아끼던 아이가 첫째였다. 이런 첫째를 보면서 서 내 딸이지만 존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그런 첫째에게 Bruno 문제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였다. 논의를 하면서 눈물을 멈추지 않는 첫째. 나는 그런 첫째를 위해 성대수술을 생각했지만, 첫째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성대수술을 하는 것은 적어도 그 애 생각에는 인간을 위해 동물을 희생시키는 것이라는 것. 인간이 개를 데리고 있고 싶은 마음에 개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는 주장. 물로 성대수술을 하더라도 목소리를 완전히 잃지는 않고, 일부 사람들은 개가 그것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자신을 위해 Bruno에게 그런 희생을 강요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단다. 그래서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시골에 있는 처가댁으로 보내서 거기서 마음껏 짖으며 살도록 하고 싶다고 마음을 토로했다.

'이런 것이 사랑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Bruno를 자주 보지 못하는 아픔을 자기가 떠 안으면서도 Bruno를 온전히 지켜주고 싶은 마음.

이제 걱정은 어떻게 Bruno가 외가집에서 잘 적응하도록 할 것인가였다. 자주 가서 보는 것이 Bruno의 마음을 안정시킬 것인지, 아니면 자주 안 가는 것이 Bruno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더 도움이 될지... 오로지 Bruno를 위하는 마음.

어젯밤에 집에 늦게 들어 갔는데, 첫째가 말한다. "I can't believe that Bruno has to go..."

완전한 이별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Bruno와 떨어져야 하는 그 고통을 첫째가 잘 이겨내기를... 아빠로서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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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st

"If this be so, our God whom we serve is able to deliver us from the burning fiery furnace, and he will deliver us out of your hand, O king. But if not, be it known to you, O king, that we will not serve your gods or worship the golden image that you have set up." (Daniel 3:17-18)

Daniel and his three friends' story always challenges me to check if I'm courageous enough or faithful enough to confront the world like them to preserve my faith and trust in God.

In this short answer of Daniel's friends, I tend to focus more on their firm belief in God's miraculous work that will deliver them who struggle keep faith from the attack of the world. But what is the most important here is the phrase "but if not". I trust in Him and don't betray Him not because He will save me from all the trials and lead me to a victorious life in this world, but because He is my creator, god, savor, and father. In His providence He may deliver me from sufferings, but He may not. The decision is up to Him, not to me. As a creature, son, and worshipper, all I can do is just go the way that will please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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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의 단상

어제 저녁 어버이날을 맞이해서 두 딸들이 사진첩을 만들어서 선물로 줬다. 지금까지 받아 본 선물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정성이 느껴지는 선물이었다.

그 사진들 중 하나. 동네 길모퉁이 작은 찻집에서 핫코코아를 먹는 사진.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아이들의 설명.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내용은 소소한 일상에서의 작은 이벤트가 많은 돈을 들인 것보다 더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다는 말.

그 사진을 한참 보고도 그 때의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어렴풋이 그 때 거기에 온 가족이 갔었다는 것은 기억하지만 왜 갔는지, 뭘 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일을 아이들은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세상에서 크게 성공하거나 돈을 많이 벌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다행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는 그런 아빠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내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나누고, 세상을 더 아름답게 가꾸고 의미있게 사는 법에 대해서 가르치며,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어주는 그런 아빠가 되고 싶다. 아무리 바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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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단상.

저녁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지금...
발걸음을 집으로 향하는 것, 저녁을 가족들과 같이 하는 것, 저녁 식사 후 아내와 동네를 산책하는 것, 아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것, 읽고 싶었던 책을 꺼내 읽다가 잠에 드는 것...
그런 것들이 먼 나라의 꿈같은 이야기로만 느껴지는 것은... 결코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특히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 아닐까? 적어도 내가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저녁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아니라 일하는 시간이다.
경쟁은 생산적인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지 못 한 채 경쟁으로 내 몰리는 삶은 참으로 비극적이다.
저녁이 있는 삶은 이 시대에는 정치적 구호로나 등장할 정도로 우리 일상의 삶에서 멀어져 있다. 소중한 것을 잃고 살아가는, 아니 살아가기를 강요당하는 이 시대... 암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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