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very careful about saying who would and wouldn't go to heaven. I don't know."-Joel Osteen
"I'm going to let God be the judge of who goes to heaven and hell."-Joel Osteen
Joel Osteen의 책에 나오는 두 구절이다... 이 두 문장의 핵심은 "careful"과 "judge"라는 두 단어에 있다. 그는 이 두 단어를 통해서 많은 비판을 하고 있고, 자기 의를 주장하고 있으며, 기존 교회에 많은 불만과 상처를 가진 사람들,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성경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들의 호감을 단번에 사는 효과를 얻고 있다.
그가 "careful"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이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면서 주는 메시지는 지옥과 천국, 죄와 구원에 대해서 말하는 (혹은 강조하는) 믿는 자들과 교회를 "careless"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생각이 없기 때문에, 혹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함부로 말들을 해 대는 것이고, 죄, 지옥, 형벌, 진노, 구원의 여부를 떠들어 대는 것이라는 강한 비판이 담겨 있는 말이다.
두 번째 문장에 있는 "judge"라는 단어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가 이 단어를 쓰는 맥락은 매우 성경적으로 보인다. 하나님 외에 누가 감히 사람의 영혼을 judge할 수 있겠는가? 그 권한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것은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그런데 세상의 많은 교회와 영적인 리더들은 주제넘게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고, 그것은 그들의 careless한 면을 한층 부각시켜 주는 것이 아닌가?
Osteen의 말이 맞다고 느껴지는가? 아니다! 그는 완전히 틀렸다. 그의 언어 수사의 특징은 모호함과 진리의 한 쪽 면만을 부각시킨 채 전체를 가리는 데 있다. 그것은 사탄의 수법이다. 사탄은 언제나 부분적인 진리로 전체 진리를 왜곡시키며, 그것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광야에서 예수님을 세 번 시험했던 사탄의 수법을 잘 분석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Osteen이 말한 한 구절을 예를 들어보자. "You may make some mistakes-but that doesn't make you a sinner. You've got the very nature of God on the inside of you." 언뜻 듣기에 참으로 encouraging하는 말이고 긍정적인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겉포장은 그럴듯하지만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 의미가 뭔지를 잘 알 수 없다. 그저 너무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활하라는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몇 가지 개념이 모호한 단어를 가져다 썼을 뿐이다. 예를 들어 "the very nature of God"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이 실수를 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또한 "mistakes"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죄와 어떻게 다른 것인가? 그의 말들은 이런 모호한 개념들, 피상적인 개념들을 가져다 씀으로써 다양한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하여 아전인수격의 해석을 원천적으로 가능하도록 도와준다. 거기에는 진리가 없다. 그저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긍정적/낙천적인 생각을 갖도록 도와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위에서 인용한 Osteen의 문장의 모호함은 careful이라는 단어와 saying이라는 단어를 연결시키는데 있다. 도대체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정확하게 무엇인가? 한 영혼이 구원을 받았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를 속으로는 판별해도 되지만, 겉으로 말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아예 판별을 하지 말라는 것인가? 왜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인가? 그것이 성경적으로 옳지 않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것을 "말하는 것"이 사람들의 기분을 나쁘게 하기 때문인가?
만약 성경적으로 옳지 않다면 그것은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들이 심판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외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에서 떠나지 않으면 형벌을 면할 수 없다고 외쳤고, 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질책하시며 그들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없음을 분명히 말씀하셨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전하면서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망할 수 밖에 없다고 선언했다. 그것은 때로는 집단에 대한 선언이기도 했고, 개인에 대한 분명한 말씀이기도 했다. 사도 바울은 서신서를 통해서 어떤 교회가 하나님의 칭찬을 받고 믿음 안에 있는지(예를 들어, 빌립보교회), 그렇지 않은지(예를 들어, 갈라디아교회, 고린도교회)를 분명하게 구별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교회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개인(데마)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말을 한다.
사실 성경적으로 볼 때, 교회의 영적인 리더로 세우심을 받은 모든 자들은 그 양들의 영적인 상태를 살피고,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을 가장 큰 임무로 부여받은 자들이다. 그들이 진리를 좇아 천국의 길을 가고 있는지, 아니면 세상과 마귀를 좇아 지옥의 길을 가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판단하여, 지옥으로 향하는 영혼들을 말씀과 기도로 권면함으로 돌이키게 하는 것이 그들이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위해 각 공동체마다 영적인 리더들을 세우셨다.
(여기서 그가 신랄하게 비판하는 "judge"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을 때, 그 판단은 분명히 당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었다. 그들, 특히 바리새인들은 죄인들을 사랑으로 품으며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않고, 경멸과 멸시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들에 비해서 자신들의 의로운 존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자기 의에 충만한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판단"의 바른 정의이다. 우리가 영혼을 바라볼 때,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그 사람을 정죄하거나 멸시해서는 안된다. 다만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영혼이 잘되기를 기도하며 천국을 향해 갈 수 있도록 바르게 "분별"하고 도와야 한다. 이것은 절대 "판단"이 아니다. 오히려 이 단어를 쓰면서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있는 Osteen의 태도는 다른 버전의 바리새인이다. 그는 영혼을 사랑으로 섬기는 자들에 대해서 못마땅해하고 있으며 그들을 "비난"하고 정죄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을 그렇지 않다고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 있다. 언뜻 매우 겸손해 보이고 남을 배려하는 듯이 보이는 그의 태도의 이면에는 매우 심각한 정죄와 자기의가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한 말로 판단해 볼 때 Osteen은 그런 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님의 사명에 전적으로 무지한 자다. 만약 무지한 자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있는 자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 영적인 공동체의 리더는 한 영혼의 상태에 대해서 "I don't know."라고 말해서는 절대 안되는 자들이다. 그것은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가 된다.
그가 "I'm very careful about saying who would and wouldn't go to heaven."라고 말한 그 이면에서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영혼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는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것에 관심이 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이다. 유다가 멸망하기 직전에 곧 완전히 망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음을 당할 그 유다 백성들을 향해서 그들의 멸망과 회개를 눈물로 호소했던 예레미야와는 달리 "평안하다! 평안하다!"라고 외치며 긍정적 사고와 낙관적인 미래를 외쳤던 당시 많은 거짓 선지자들과 동일한 것을 추구하는 이 시대의 거짓 선지자이다.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은 말들을 하나님의 말처럼 떠들어 대며, 사람들의 관심을 이 세상의 물질과 자신의 번영과 안녕에만 초점을 맞추게 하는, 그러는 가운데 죽어 있는 영혼들이 지옥을 향해 열심히 달려 가고 있는 것을,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고 스스로도 그 가운데 있는 악한 자이다.
마지막 때에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 거짓 선지자들은 사탄의 도구를 사용하여 혹세무민하는 자들이다.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진정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때이다.
삶의 낙(樂)
초등학교 5학년 즈음, 나는 화투에 빠진 적이 있었다. 뭐, 본격적인 노름은 아니었지만, 전라도에서 많이 하는 "삼봉"이라는 화투를 매우 즐겼었다. 한 겨울 방학 때는 거의 삼봉으로 밤을 지새고 시간을 보냈었다. 삼봉은 나에게 삶의 낙이었다.
중학교 때에는 잠에 중독된 적이 있었다. 하루 22시간을 스트레이트로 잔 적도 있었다. (물론 방학 때...) 너무 오래 자고나면 잠 때문에 피곤해서 다시 잠들고, 밥도 한 끼만 먹으면서 다시 자고... 삶이 잠으로만 가득 채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때 경험했다.
오락에 빠진 적도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작은형을 따라 아침에 전자오락실에 갔다가 처음으로 학교에 지각하는 일이 있었다. 그 이후에 전자오락은 내 삶에서 빠뜨릴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재수시절에는 하루에 세 시간씩 꼬박꼬박 시간을 투자한 결과 많은 게임을 완전히 마스터 했었다. 심지어 대학 시험을 보기 위해서 서울 봉천동 여관에 머물렀을 때, 시험 전날 12시까지 근처 오락실에서 친구와 오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89년 겨울에는 당시 처음 나왔던 컴퓨터 게임인 삼국지를 하면서 중국을 통일하겠다는 일념하에 일주일을 아무 것도 안하고 잠도 거의 안 자고 게임에만 몰두하여 폐인이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게임은 내 삶의 소일거리였고, 때로는 큰 재미였고 의미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신문에 빠진 적이 있었다. 당시 열심히 보던 동아일보를 첫장 첫 단어부터 끝장 끝 단어까지 모두 읽었다. 광고, 사설, 뉴스 상관 없이 모두 읽고 반복해서 읽었다. 그러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을 정도였고, 심지어 담임선생님이 신문 때문에 공부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염려해서 개인상담시간에 신문을 보는 법(사설과 헤드라인 중심으로 보는 법)을 알려줬을 정도이다.
또 중학교 때 언젠가는 TV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온종일 TV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저녁 6시부터 12시까지만 나왔다. 애국가로 시작해서 애국가로 끝나고, 채널은 3개(광주는..) 밖에 없었다. 나는 모든 방송사의 모든 프로그램을 꿰고 있었고, 단 한 번도 눈을 떼지 못하고 모든 프로그램을 다 본 적이 있었다. 그 때는 TV보는 재미에 몰두했었다. 다른 어떤 것에도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TV를 통해서만 재미를 느꼈다.
한 때는 (보는) 스포츠에 한참 몰두했었다.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모든 종목의 스포츠 중계를 다 봤던 것 같다. 야구, 축구, 농구는 물론 육상, 핸드볼, 양궁, 수영, 하키, 역도, 유도 등등 모든 종목(격투기만 빼고)의 중계를 보면서 즐겼다.
어린시절... 나에게 있어서 인생의 낙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참 많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는 완전히 단절 되었다. 그것은 예수님을 알고 난 후 내 삶에 진정한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리다. 그 모든 것들은 자연스럽게 내 삶에서 떨어져 나갔고, 복음 안에서 주어지는 진정한 기쁨, 구원의 기쁨, 말씀의 기쁨, 믿음의 지체들과 나누는 기쁨이 그 자리를 가득 채웠다.
요즘 내 삶에는 TV는 거의 사라졌다. 일 주일에 두 세번 CNN 뉴스를 잠깐 볼 때를 제외하고는 TV를 켤 일이 없다. 공부에 필요한 자료를 보는 것 외에 비디오는 거의 보지 않는다. 컴퓨터 게임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다만 어린시절 향수에 젖어 그 때를 생각하며 전자오락실에서 하던 게임을 가끔씩 하곤 하지만, 더 이상 의미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시간 낭비일 뿐이다. 신문을 열심히 보지만, 그것은 말씀을 준비할 자료를 얻거나, 공부에 필요한 자료를 얻기 위한 것, 혹은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술, 담배 등은 아예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의미를 차지한 적이 없었다.
예수님을 더 알고, 그분과 교제하며 그분의 사역에 동참하며 이 세상에 주어진 일을 감당해 나가는 데도 내 인생에 주어진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다른 의미없는 것들에 내 인생을 허비할 이유가 없다. 내 삶은 말씀과 공부와 교제로 가득 차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다. 다른 뭔가가 전혀 필요가 없다.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며, 그분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진정으로 맛본다면, 세상의 돈도, 명예도, 직위도, 오락도, 그 무엇도 그 앞에서는 의미를 잃고 만다.
그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복음... 그것은 진정한 기쁨의 원천이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필요 없다.
중학교 때에는 잠에 중독된 적이 있었다. 하루 22시간을 스트레이트로 잔 적도 있었다. (물론 방학 때...) 너무 오래 자고나면 잠 때문에 피곤해서 다시 잠들고, 밥도 한 끼만 먹으면서 다시 자고... 삶이 잠으로만 가득 채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때 경험했다.
오락에 빠진 적도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작은형을 따라 아침에 전자오락실에 갔다가 처음으로 학교에 지각하는 일이 있었다. 그 이후에 전자오락은 내 삶에서 빠뜨릴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재수시절에는 하루에 세 시간씩 꼬박꼬박 시간을 투자한 결과 많은 게임을 완전히 마스터 했었다. 심지어 대학 시험을 보기 위해서 서울 봉천동 여관에 머물렀을 때, 시험 전날 12시까지 근처 오락실에서 친구와 오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89년 겨울에는 당시 처음 나왔던 컴퓨터 게임인 삼국지를 하면서 중국을 통일하겠다는 일념하에 일주일을 아무 것도 안하고 잠도 거의 안 자고 게임에만 몰두하여 폐인이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게임은 내 삶의 소일거리였고, 때로는 큰 재미였고 의미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신문에 빠진 적이 있었다. 당시 열심히 보던 동아일보를 첫장 첫 단어부터 끝장 끝 단어까지 모두 읽었다. 광고, 사설, 뉴스 상관 없이 모두 읽고 반복해서 읽었다. 그러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을 정도였고, 심지어 담임선생님이 신문 때문에 공부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염려해서 개인상담시간에 신문을 보는 법(사설과 헤드라인 중심으로 보는 법)을 알려줬을 정도이다.
또 중학교 때 언젠가는 TV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온종일 TV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저녁 6시부터 12시까지만 나왔다. 애국가로 시작해서 애국가로 끝나고, 채널은 3개(광주는..) 밖에 없었다. 나는 모든 방송사의 모든 프로그램을 꿰고 있었고, 단 한 번도 눈을 떼지 못하고 모든 프로그램을 다 본 적이 있었다. 그 때는 TV보는 재미에 몰두했었다. 다른 어떤 것에도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TV를 통해서만 재미를 느꼈다.
한 때는 (보는) 스포츠에 한참 몰두했었다.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모든 종목의 스포츠 중계를 다 봤던 것 같다. 야구, 축구, 농구는 물론 육상, 핸드볼, 양궁, 수영, 하키, 역도, 유도 등등 모든 종목(격투기만 빼고)의 중계를 보면서 즐겼다.
어린시절... 나에게 있어서 인생의 낙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참 많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는 완전히 단절 되었다. 그것은 예수님을 알고 난 후 내 삶에 진정한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리다. 그 모든 것들은 자연스럽게 내 삶에서 떨어져 나갔고, 복음 안에서 주어지는 진정한 기쁨, 구원의 기쁨, 말씀의 기쁨, 믿음의 지체들과 나누는 기쁨이 그 자리를 가득 채웠다.
요즘 내 삶에는 TV는 거의 사라졌다. 일 주일에 두 세번 CNN 뉴스를 잠깐 볼 때를 제외하고는 TV를 켤 일이 없다. 공부에 필요한 자료를 보는 것 외에 비디오는 거의 보지 않는다. 컴퓨터 게임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다만 어린시절 향수에 젖어 그 때를 생각하며 전자오락실에서 하던 게임을 가끔씩 하곤 하지만, 더 이상 의미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시간 낭비일 뿐이다. 신문을 열심히 보지만, 그것은 말씀을 준비할 자료를 얻거나, 공부에 필요한 자료를 얻기 위한 것, 혹은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술, 담배 등은 아예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의미를 차지한 적이 없었다.
예수님을 더 알고, 그분과 교제하며 그분의 사역에 동참하며 이 세상에 주어진 일을 감당해 나가는 데도 내 인생에 주어진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다른 의미없는 것들에 내 인생을 허비할 이유가 없다. 내 삶은 말씀과 공부와 교제로 가득 차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다. 다른 뭔가가 전혀 필요가 없다.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며, 그분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진정으로 맛본다면, 세상의 돈도, 명예도, 직위도, 오락도, 그 무엇도 그 앞에서는 의미를 잃고 만다.
그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복음... 그것은 진정한 기쁨의 원천이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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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49:00
보물 12
이뻐요?
(2005.12.06.에 쓴 글)
토요일 아침은 하연이 엄마, 하연이, 그리고 예연이가 모두 한글학교에 가는 날이다. 보통은 한글학교에서 교사로 있는 애 엄마가 애들을 차로 데리고 가서 애들과 같이 있다가 온다. 나는 그 동안 다른 사람의 차를 빌려타고 교회에가서 일을 한다.
지난 토요일은 한글학교에서 각 반별 아이들 발표회가 있었다. 자기 반에서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나와 자신이 쓴 한글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특히 예연이 반에서는 애들이 제일 어린 관계로 부모와 같이 발표를 하게 되어 있어서, 내가 같이 한글학교에 가게 되었다.
오랫만에 네 가족이 모두 차를 같이 타고 학교에 도착했다. 조금 늦게 도착한 탓에 엄마는 후다닥 교사회의에 먼저 가고 내가 아이들을 차에서 내리고 교사회의가 끝날 때까지 같이 있기로 했다.
차에서 하연이와 예연이를 내리고 막 들어가려고 하는데, 하연이가 아주 빠르게 낮은 소리로 뭔가 중얼거렸다. 나에게 뭔가를 물어보는듯.. 두세번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게 빠르게 아빠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뭐라고?"
"~&^%$^&****&^%$$"
"응?"
이제서야 약간은 쑥스럽다는 듯이 또박또박 (하지만 여전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내 머리 예뻐요?"
순간 하연이가 이제는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가서 많은 사람들을 대할텐데, 자신의 외모를 다시 점검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그~~~~럼~~~. 예~~~뿌지..."
내 말에 만족해 하는 하연이...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즐거워하기만 하는 예연이...
하나님이 주신 내 보물들이, 이제는 아빠 엄마의 딸에서 점차 그 역할을 확장해서 여자아이로 자라는 것을 보면서 한 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한 묘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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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18:00
[펌]Secret Sin
Three pastors went to the pastor convention and were all sharing one room.
The first pastor said, "Let's confess our secret sins one to another. I'll start - my secret sin is I just love to gamble. When I go out of town, it's cha-ching cha-ching, let the machines ring."
The second pastor said, "My secret sin is that I just hate working. I copy all my sermons from those given by other pastors."
The third pastor said, "My secret sin is gossiping and, oh boy, I just can't wait to get out of this room!"
The first pastor said, "Let's confess our secret sins one to another. I'll start - my secret sin is I just love to gamble. When I go out of town, it's cha-ching cha-ching, let the machines ring."
The second pastor said, "My secret sin is that I just hate working. I copy all my sermons from those given by other pastors."
The third pastor said, "My secret sin is gossiping and, oh boy, I just can't wait to get out of this 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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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20:00
내 고향을 추억하며...
이번 주 주말이 추석 연휴이다. 한국을 떠나 와서 8번째 추석이다. 추석에 즈음하여 이육사의 시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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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 주절이 열리고
먼데 하늘이 알알이 꿈꾸며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우리 가족의 조상 묘는 산을 두 개 정도 넘어 가야 있었다. 길도 없는 숲속을 맨 앞에 선 선발대가 큰 칼을 들고 길을 내면서 우리 가족 일행은 3시간이 넘는 강행군을 해야 했다. 땀으로 온통 범벅을 한 산행 후, 몇 대를 걸쳐 있는 가족묘인 산소 맨 위부터 차례대로 차례를 지내고 모든 차례가 끝나고 나면, 우리 가족은 숲속에서 소풍하듯이 고기도 구워먹고, 나름 대로 가족만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 후 산에서 내려오면 어느덧 해가 지는 저녁 즈음이 되고, 산에서 내려다보는 시골풍경은 정겹기만 했다. 아버지께서는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 친척들과 함께 밤새 노시고 그 다음날 광주로 올라 오셨고, 나머지 가족은 친지들과 잠깐 인사를 나눈 뒤 당일에 바로 광주로 올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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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 주절이 열리고
먼데 하늘이 알알이 꿈꾸며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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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추석이 되면 우리 가족은 시골로 성묘를 떠났다. 아버지께서는 늘 고향에 가신다는 생각에 들떠 계셨고, 추석 당일은 아버지의 고향 방문과 성묘로 하루를 보냈다.
우리 가족의 조상 묘는 산을 두 개 정도 넘어 가야 있었다. 길도 없는 숲속을 맨 앞에 선 선발대가 큰 칼을 들고 길을 내면서 우리 가족 일행은 3시간이 넘는 강행군을 해야 했다. 땀으로 온통 범벅을 한 산행 후, 몇 대를 걸쳐 있는 가족묘인 산소 맨 위부터 차례대로 차례를 지내고 모든 차례가 끝나고 나면, 우리 가족은 숲속에서 소풍하듯이 고기도 구워먹고, 나름 대로 가족만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 후 산에서 내려오면 어느덧 해가 지는 저녁 즈음이 되고, 산에서 내려다보는 시골풍경은 정겹기만 했다. 아버지께서는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 친척들과 함께 밤새 노시고 그 다음날 광주로 올라 오셨고, 나머지 가족은 친지들과 잠깐 인사를 나눈 뒤 당일에 바로 광주로 올라 왔다.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청포도를 노래했던 시인의 의도와는 영 딴판의 감상이긴 하지만, 먼 타국에서 이 시가 생각나는 것은 바로 추석 때마다 보았던 시골의 정겨운 풍경 때문이리라... 언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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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9:2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