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 예수의 이름으로...

지난 주 아이들 학교에서 event가 있었다. 어스틴 경찰서에서 주관하는 것으로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아이들 중에서 선발된 25명이 경찰들과 같이 쇼핑하고 피자 가게에서 피자를 먹는 Shop with a Cop이라는 프로그램을 위해서 아이들을 선발하는 event였다. 경찰들과 같이 Target에 가서 개인당 50불어치의 쇼핑을 하게 하고 경찰들이 그 비용을 대 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기대가 대단했다. 하연이와 예연이도 목요일 저녁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금요일에 추첨이 있었다. 결과는 하연이는 뽑혔고 예연이는 뽑히지 못했다. 확률이 매우 낮았기 때문에 하연이가 뽑혔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참고로 예연이가 속한 2학년 중에는 한 명도 뽑히지 못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서 예연이가 매우 상심했다. 하나님께서 언니의 기도는 들어 주시고, 자신의 기도는 들어 주지 않으셨다는 것 때문에 많이 울었다. 그날 오후, 예연이가 나에게 조용히 찾아와서 상담을 요청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거절하셨다면서 원망과 눈물이 섞인채로 서럽게 울었다.
예연이에게 기도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고, 기도하는 자세와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응답에 대해서 여러 비유를 들어가며 알아듣도록 설명하려 했지만, 예연이를 이해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끝내 울음과 원망을 그치지 않는 예연이를 보면서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할 도리가 없어서 조용히 예연이에게 현금으로 10불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 말을 듣고 예연이의 표정은 금새 밝아졌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비밀리 건넨 10불을 몰래 자신의 저금통에 고이 간직하고는 그 후로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

미봉책으로 10불이라는 눈에 보이는 현금으로 문제를 수습하긴 했지만, 아직도 예연이의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거절감에 대한 문제, 보다 더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오늘 새벽에 아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 예연이를 위해 특별히 기도를 많이했다. 하나님께서 그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쌓이도록...

예연이의 일이지만... 예연이를 보면서 나 또한 별로 다를 바가 없는 자임을 느낀다. 기도에 대해서 참으로 많은 것을 이론적으로 알고 있지만, 내가 간절히 기도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 기도대로 응답하지 않으실 때, 내 안에 생기는 하나님에 대한 쓴뿌리는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예연이를 보게 하심으로써 내 모습을 보여 주신다. 얼마나 유치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소치인가? 예연이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그것이 당연하다지만, 나는 왜 그 모양인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성숙한 기도는 주님 안에 거하는 기도,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함으로써 그 말씀에 따라 구하는 기도이다. 그것은 다른 표현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기도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첫번째로 우리가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이 없지만, 그분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구한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그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것들을 구한다는 것이다. 그분의 이름으로 구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을 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의미 외에 매우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내가 구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예수님 안에 두셨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간에, 그것은 결국 예수님을 더 소유하고 더 누리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2b-3)

기도는 나의 필요와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주님을 구하는 수단이며, 그분과 교제하고 그분을 더 누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다. 주님을 구하는 기도, 주님을 누리기를 갈망하는 것이 동기가 된 기도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여 주신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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