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내가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어느모로 보면 복이다.
그것은 고통의 의미를 알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고통받는 자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고통받는 자들은 늘 소수자이고 그늘에 있는 자들이어서 세상이 눈여겨보지 않고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세상은 늘 성공하는 자들, 잘 나가는 자들, 건강하고 보기 아름다운 자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모든 관심을 쏟는다.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관심을 두는 경우에는 많은 경우 훈계를 한다. 그 고통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입바른 말들을 너무 많이 해댄다.. 그것이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을 더 고통스럽게 한다.

건강할 때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나는 참으로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더 관심을 두고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며 곁에 있어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무엇이든지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결코...

나는 무관심 아니면 훈계로 일관한 사람이다. 지체 가운데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참 안 됐다..'라고 혼자 생각하고는 그냥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관심을 갖더라도 '믿는 사람이 그런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힘들어하나'라는 정죄하는 마음으로 "옳바른 것"이 무엇인지를 훈계해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낯뜨거운 짓... 그래도 내 주위에 있는 지체들은 너무나 사람들이 좋아서, 그리고 믿음이 나보다 더 훌륭해서, 그런 무례함과 상처주는 훈계를 경청하고 잘 받아들여서 본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활용하곤 했다.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그리스도인... 그것도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연약한 자의 연약함과  고통받는 자의 고통을 공감하는 자이다. 정죄와 훈계를 뒤로하고 함께 아파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보살펴주고 도와주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그래야 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15)

사실... 이 말씀대로라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 즉 그 죄악 가운데 거하며, 그 죄악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그 연약함을 전혀 공유하지 않으시는, 죄가 없으신 완벽하게 정결하신 분이지만,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직접 경험하시고 공감하시고 이해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를 도우시는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 것이다.

공감과 이해 없이...
사랑 없이...
아픔을 그 마음에 담지 않고...

돕겠다고 나서는 것은 상처만 줄 뿐...
그나마 그것이 무관심보다는 낫겠지만...

그런데...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며 연약한 자들,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며 그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두고 손발로 그들을 돕는 그런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참으로... 드문 것 같다...

모두들 자기 문제, 자기 고통에, 그리고 타인의 성공과 아름다움에 모든 관심을 빼앗겨 버렸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은 그 마음 가운데 설 자리가 없는 듯 하다... 그나마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정죄하고 훈계하기에 바쁘고...

세상 사람들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래도 되는 건가?
그리스도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