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 30:11-14)

하나님께서는 신명기에서 구약의 율법을 재정립하신다. 예수님식으로 간단히 요약하면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눅 10:27)는 것이다. 그 율법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하시고 나서 하신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나에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나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래서 나를 너무나 잘 아시는 그분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나는 그 명령 정도는 가볍게 지킬 수 있도록 창조된 피조물인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볼 때 이 명령은 그리 녹록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본문의 말씀대로 저 하늘 끝에 있어서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왜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내가 죄로 인해 완전히 망가졌기 때문이다. 죄는 암덩어리처럼 온 세포에 퍼져서 내 몸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죄라는 암덩어리가 없었다면 너끈히 이룰 수 있는 그 일을, 이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구약의 명령은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죄에 찌들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내 몸에 퍼져있는 암덩어리를 성령의 능력으로 제거해가는 작업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온전하지는 않더라도 내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영역들이 늘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원의 증거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정도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구원받은 기쁨 중의 하나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는 것.
그렇게 평생을 살다보면 율법에의 순종이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닌" 정도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지금보다는 훨씬 편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순종의 제사를 드리게 되지 않을까? 하루라도 빨리 백발 노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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