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예루살렘에 데리고 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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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26:00
사탄은 마침내 복음을 선택했다.
90년대 초에 신상언씨가 "사탄은 마침내 문화를 선택했다"라는 책을 발간하여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었다. 당시 대학생으로 문화 연구에 관심이 있던 나에게는 흥미로운 책이었다.
2009년 12월 오늘... 그 책을 다시 생각해 볼 때, 이제는 더 이상 그 논지에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마침내"라는 단어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창세기 5장에는 분명하게 하나님을 떠나 죄악 가운데 있던 인간, 마귀의 종이 되어 버린 가인의 자손들이 이룬 업적에 대해서 소상히 밝히고 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들은 문화와 문명을 건설한 것이다. 사탄이 "마침내" 문화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타락 직후부터 문화는 사탄의 귀중한 전략적 도구였다.
"마침내"라는 단어가 좀 더 잘 들어 맞도록 사용하려면 "사탄은 마침내 복음을 선택했다!"라고 해야 한다. 그것은 사탄이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탄이 복음을 흐리게 하는 전략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이후 교회가 생기면서부터 늘 있어왔던 것이다. 수많은 이단들의 역사는 복음을 흐리게 하고 왜곡시키려는 마귀의 노력의 역사이다. 교회는 그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복음을 더욱 분명하고 날카롭게 해 왔다. 마귀의 도전이 오히려 교회 내에 교리를 더욱 분명히 하는 데 (결과적으로) 귀하게 쓰임을 받았다. 많은 경우, 교회는 그 복음을 지키기 위해서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 왔다.
그렇게 전해 받은 복음...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교회가 복음의 담지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 교회에서도 그 어느 때 못지 않게 "복음"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린다. 설교의 강단에서도, 성경공부에서도, 기도에서도, 심지어 교회 이름과 사람 이름에서도 "복음"이라는 단어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아니.. 홍수를 이룬다.
하지만 정작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선포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극히 드물다. 한국에서 교회를 소위 "열심히" "오랫동안" 다녔다는 사람들이 교회에 많이 오는데, 그들의 거의 대부분의 경우가 "복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거나 부분적으로만 답을 한다. 복음이라는 단어는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지만, 복음의 내용에 대해서 단 한 번도 분명하고 적확하게 들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생명의 근원이자 주인되시고,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떠나 죄악 가운데, 죄덩어리가 되어, 행하는 모든 것이 죄 밖에 없는 인간.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어 영적으로 죽어 있는 인간, 마귀의 종으로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버린 인간. 죄에 쩔어 있어서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 끝은 영원한 파멸의 심판 뿐이라는 것.
그런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이 땅가운데 육신을 입고 오셔서, 내가 달려 죽어야 할 심판의 자리,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할 그 저주의 자리인 십자가에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고 그분의 부활.
자신의 죄인됨을 통절히 회개하고, 십자가 앞에 온전이 무릎꿇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하나님이요 구원자로 받아 들이게 될 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가고, 내 안에 성령께서 임하셔서,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한 자로서의 삶으로 이끄신다는 것. 천국의 삶을 약속하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부터 그분의 통치를 받으며 천국을 맛보며 살 수 있는 존재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린다는 것.
너무나도 분명하고 간단한 이 진리를 분명히 아는 사람(온 존재로 체험하여 그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 사람을 둘째치고...)은 놀랍게도 생각보다 훨씬 드물다. 도대체 교회에서 복음을 가르치지 않으면 뭘 가르치는지 모르겠지만, 십자가의복음이 핵심이 되는 진리의 기독교가 일개의 종교로 전락하고 도덕적 가르침을 주는 곳으로 전락하는 가운데, 복음이 흐려지고, 복음에 대해서 무지한 소위 "교인들"을 양산해 내는 그런 교회로 타락시켜버린 것이 바로 사탄이 선택한 전략이다.
종교개혁 직전의 교회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한 모습이 되어 버린 것이다. 중세시대에는 평신도들에게 성경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성경이 넘쳐나는 시대이고, 누구나 그 진리를 쉽게 알 수 있는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성경에 무식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 구원의 기본 도리인 복음이 뭔지조차 설명하지 못하는 무식한 "교회출석자"를 양산해 내는, 마귀의 계략에 완전히 놀아나는, 현대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징벌을 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부흥... 그것은 회개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진정한 회개는, 진정한 복음의 역사가 있을 때에, 그 복음을 통해서 퍼부어지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가능해 진다. 성령께서는 복음이 진정으로 복음이 되게 하시고, 생명이 되게 하시고, 그 앞에 완전히 무릎꿇게 하신다. 십자가가 아니면 저주받을 인생이라는 것을 가슴 깊이 깨닫고, 모든 것을 버리고 십자가만을 취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역사를 주심으로써 교회가 교회답도록 하신다.
복음을 그 삶으로 체험한 자들. 십자가의 복음이 그 삶에 중심에 분명히 선 자들. 세상의 모든 우상을 내려 놓고, 십자가 앞에 무릎꿇은 자들. 성경말씀이 생명이자 삶의 유일한 근거요 힘이 되는 자들에게는 사탄의 도구가 되는 문화는 아무것도 아니다. 문화 따위가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
이 시대에 사탄은 마침내 복음을 선택했다! 그것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내가 복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2009년 12월 오늘... 그 책을 다시 생각해 볼 때, 이제는 더 이상 그 논지에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마침내"라는 단어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창세기 5장에는 분명하게 하나님을 떠나 죄악 가운데 있던 인간, 마귀의 종이 되어 버린 가인의 자손들이 이룬 업적에 대해서 소상히 밝히고 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들은 문화와 문명을 건설한 것이다. 사탄이 "마침내" 문화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타락 직후부터 문화는 사탄의 귀중한 전략적 도구였다.
"마침내"라는 단어가 좀 더 잘 들어 맞도록 사용하려면 "사탄은 마침내 복음을 선택했다!"라고 해야 한다. 그것은 사탄이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탄이 복음을 흐리게 하는 전략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이후 교회가 생기면서부터 늘 있어왔던 것이다. 수많은 이단들의 역사는 복음을 흐리게 하고 왜곡시키려는 마귀의 노력의 역사이다. 교회는 그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복음을 더욱 분명하고 날카롭게 해 왔다. 마귀의 도전이 오히려 교회 내에 교리를 더욱 분명히 하는 데 (결과적으로) 귀하게 쓰임을 받았다. 많은 경우, 교회는 그 복음을 지키기 위해서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 왔다.
그렇게 전해 받은 복음...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교회가 복음의 담지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 교회에서도 그 어느 때 못지 않게 "복음"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린다. 설교의 강단에서도, 성경공부에서도, 기도에서도, 심지어 교회 이름과 사람 이름에서도 "복음"이라는 단어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아니.. 홍수를 이룬다.
하지만 정작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선포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극히 드물다. 한국에서 교회를 소위 "열심히" "오랫동안" 다녔다는 사람들이 교회에 많이 오는데, 그들의 거의 대부분의 경우가 "복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거나 부분적으로만 답을 한다. 복음이라는 단어는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지만, 복음의 내용에 대해서 단 한 번도 분명하고 적확하게 들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생명의 근원이자 주인되시고,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떠나 죄악 가운데, 죄덩어리가 되어, 행하는 모든 것이 죄 밖에 없는 인간.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어 영적으로 죽어 있는 인간, 마귀의 종으로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버린 인간. 죄에 쩔어 있어서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 끝은 영원한 파멸의 심판 뿐이라는 것.
그런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이 땅가운데 육신을 입고 오셔서, 내가 달려 죽어야 할 심판의 자리,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할 그 저주의 자리인 십자가에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고 그분의 부활.
자신의 죄인됨을 통절히 회개하고, 십자가 앞에 온전이 무릎꿇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하나님이요 구원자로 받아 들이게 될 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가고, 내 안에 성령께서 임하셔서,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한 자로서의 삶으로 이끄신다는 것. 천국의 삶을 약속하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부터 그분의 통치를 받으며 천국을 맛보며 살 수 있는 존재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린다는 것.
너무나도 분명하고 간단한 이 진리를 분명히 아는 사람(온 존재로 체험하여 그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 사람을 둘째치고...)은 놀랍게도 생각보다 훨씬 드물다. 도대체 교회에서 복음을 가르치지 않으면 뭘 가르치는지 모르겠지만, 십자가의복음이 핵심이 되는 진리의 기독교가 일개의 종교로 전락하고 도덕적 가르침을 주는 곳으로 전락하는 가운데, 복음이 흐려지고, 복음에 대해서 무지한 소위 "교인들"을 양산해 내는 그런 교회로 타락시켜버린 것이 바로 사탄이 선택한 전략이다.
종교개혁 직전의 교회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한 모습이 되어 버린 것이다. 중세시대에는 평신도들에게 성경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성경이 넘쳐나는 시대이고, 누구나 그 진리를 쉽게 알 수 있는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성경에 무식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 구원의 기본 도리인 복음이 뭔지조차 설명하지 못하는 무식한 "교회출석자"를 양산해 내는, 마귀의 계략에 완전히 놀아나는, 현대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징벌을 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부흥... 그것은 회개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진정한 회개는, 진정한 복음의 역사가 있을 때에, 그 복음을 통해서 퍼부어지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가능해 진다. 성령께서는 복음이 진정으로 복음이 되게 하시고, 생명이 되게 하시고, 그 앞에 완전히 무릎꿇게 하신다. 십자가가 아니면 저주받을 인생이라는 것을 가슴 깊이 깨닫고, 모든 것을 버리고 십자가만을 취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역사를 주심으로써 교회가 교회답도록 하신다.
복음을 그 삶으로 체험한 자들. 십자가의 복음이 그 삶에 중심에 분명히 선 자들. 세상의 모든 우상을 내려 놓고, 십자가 앞에 무릎꿇은 자들. 성경말씀이 생명이자 삶의 유일한 근거요 힘이 되는 자들에게는 사탄의 도구가 되는 문화는 아무것도 아니다. 문화 따위가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
이 시대에 사탄은 마침내 복음을 선택했다! 그것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내가 복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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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5:41:00
보물14
(2006.02.14에 쓴 글)
지난 토요일 오후... 목장 식구들 중 한 가정이 우리 가정을 식사 대접해 주었다. 우리 집에서 잘 해 주는 것도 없이 은혜로 받는 대접이라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식구된 자들로서 함께 식사하면서 섬김을 받는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복부팽만감으로 행복감과 만족감, 그리고 약간의 거북스러움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조용히 있던 예연이가 갑자기 물었다.
"아빠! 남자는 왜 오줌을 서서싸요?"
"........"
갑작스러운 질문에 일단 할 말을 잃고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답을 찾고 있을 때, 아내가 물었다.
"ㅎㅎ.. 왜? 누가 서서싸는 것 봤어?"
"전번에 하민이(하연이와 Play group하는 동갑내기 남자애)가 서서 오줌싸는 것 봤잖아요... 문열어 놓고 오줌 쌌어요."
"그래~~~?"
그 때 하연이가 나섰다.
"나는 왜 그런지 알아요~~~. 남자는 오줌이 앞으로 나오니까 서서싸는 거잖아요~~ ㅋㅋ"
아내가 물었다.
"하연이도 봤어?"
"학교에서 남자애가 서서 오줌싸는 것 봤어요. ㅋㅋㅋ"
"그렇구나~~~..."
우리 아이들... 이제 철없던 아기의 수준을 벗어나서 점차 이성에 대해서 자각하는 것이 보인다. 이제부터 그들의 마음 속에 "남자"에 대한 이미지가 그려지겠지...
남자란 아빠 밖에 없는 우리 가정. 당분간 아이들이 이성에 대한 궁금증은 주로 나를 통해서 해결하겠지? 그러면서 남성에 대한 그들의 시각이 형성될 것이다.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다. 남자라는 존재가 "왕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지"도 아닌... 한 "인간"이라는 것. 그들이 섬겨야 할 "폭군"도 아니고, 그들이 부려야 할 "종"도 아니라는 것. 여자와 다른 부분도 분명히 많이 있지만 같이 공유하는 부분도 있고, 강한 것 같지만 때로는 연약하기도 하여 감싸주고 보살펴 주는 것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 같은 인간으로서 서로 섬기고 섬김을 받으며 서로 세워주고, 함께 동역해 가는 동역자라는 것.
아직은 낯설기만한 "남자"라는 존재를 아빠를 통해 조금씩 알아갈 그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그런 내가 되어야할 책임을 느낀다.
지난 토요일 오후... 목장 식구들 중 한 가정이 우리 가정을 식사 대접해 주었다. 우리 집에서 잘 해 주는 것도 없이 은혜로 받는 대접이라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식구된 자들로서 함께 식사하면서 섬김을 받는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복부팽만감으로 행복감과 만족감, 그리고 약간의 거북스러움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조용히 있던 예연이가 갑자기 물었다.
"아빠! 남자는 왜 오줌을 서서싸요?"
"........"
갑작스러운 질문에 일단 할 말을 잃고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답을 찾고 있을 때, 아내가 물었다.
"ㅎㅎ.. 왜? 누가 서서싸는 것 봤어?"
"전번에 하민이(하연이와 Play group하는 동갑내기 남자애)가 서서 오줌싸는 것 봤잖아요... 문열어 놓고 오줌 쌌어요."
"그래~~~?"
그 때 하연이가 나섰다.
"나는 왜 그런지 알아요~~~. 남자는 오줌이 앞으로 나오니까 서서싸는 거잖아요~~ ㅋㅋ"
아내가 물었다.
"하연이도 봤어?"
"학교에서 남자애가 서서 오줌싸는 것 봤어요. ㅋㅋㅋ"
"그렇구나~~~..."
우리 아이들... 이제 철없던 아기의 수준을 벗어나서 점차 이성에 대해서 자각하는 것이 보인다. 이제부터 그들의 마음 속에 "남자"에 대한 이미지가 그려지겠지...
남자란 아빠 밖에 없는 우리 가정. 당분간 아이들이 이성에 대한 궁금증은 주로 나를 통해서 해결하겠지? 그러면서 남성에 대한 그들의 시각이 형성될 것이다.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다. 남자라는 존재가 "왕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지"도 아닌... 한 "인간"이라는 것. 그들이 섬겨야 할 "폭군"도 아니고, 그들이 부려야 할 "종"도 아니라는 것. 여자와 다른 부분도 분명히 많이 있지만 같이 공유하는 부분도 있고, 강한 것 같지만 때로는 연약하기도 하여 감싸주고 보살펴 주는 것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 같은 인간으로서 서로 섬기고 섬김을 받으며 서로 세워주고, 함께 동역해 가는 동역자라는 것.
아직은 낯설기만한 "남자"라는 존재를 아빠를 통해 조금씩 알아갈 그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그런 내가 되어야할 책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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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29:00
주 안에서의 수고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8)
주 안에서 하는 모든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는다.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비록, 나의 수로고 인해 아무 것도 건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나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더욱 악해져만 가는 것처럼 보이고,
최선을 다했지만 주님 앞에 너무나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나의 수고로 인해 하나님 앞에 절망하더라도...
그것이 진심을 담아 드린 나의 최선이었다면,
나와 동행하시는 성령님께 드리는 기도 가운데 드린 나의 제사였다면,
그분의 능력을 의지해서 드리는 나의 신앙 고백이었다면...
그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쓰실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 언젠가... 생명의 열매가 맺힐 것이다.
아멘...
주 안에서 하는 모든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는다.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비록, 나의 수로고 인해 아무 것도 건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나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더욱 악해져만 가는 것처럼 보이고,
최선을 다했지만 주님 앞에 너무나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나의 수고로 인해 하나님 앞에 절망하더라도...
그것이 진심을 담아 드린 나의 최선이었다면,
나와 동행하시는 성령님께 드리는 기도 가운데 드린 나의 제사였다면,
그분의 능력을 의지해서 드리는 나의 신앙 고백이었다면...
그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쓰실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 언젠가... 생명의 열매가 맺힐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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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