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한 교회 청년부를 3년 정도 섬겨 오면서 나는 어떤 리더였는지를 되돌아 본다. 지난 기간 동안 나는 섬기는 리더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나의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먼저 무릎꿇는 Servant Leader가 되기 위해서 노력했다. 내 생각을 내려 놓고, 내 주인께서 보여주시는 길이라면 어떤 희생을 감내하고라도 순종함으로 그 길을 가려고 노력했다. 내 개인적인 욕심과 나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망을 최대한 거부하며, 겸손한 자세로 나를 낮추려고 부단한 노력을 경주했다. 말씀에 민감한 자가 되기를 원했고, 내 입술을 통해서 내 생각과 의견이 표출되는 것을 막고, 하나님의 말씀만 전달되도록 기도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함으로 섬기고자 부단히 노력했고,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그런 사랑을 허락하셨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지난 3년을 되돌아 볼 때 성공 여부를 떠나 적어도 그 진지성과 치열함에 있어서는 후회가 없다.
하지만, 지금 내가 섬기는 공동체에서 내가 어떤 리더가 되어 있는가? 나는 내가 종이 되기를 바랬고, 청년부의 진정한 리더가 예수님임을 고백했고, 그렇게 살았는데... 그분이 청년부 공동체 모든 지체들이 그분만이 진정한 리더이고, 그분께만 의지하며 사는 자들이 되기를 바랐는데, 그렇게 되었을까?
만약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청년부에서 사라진다면, 청년부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저 종으로 섬겼던 한 사람에 불과한 나였다면, 그 종 하나 사라진다고 공동체에 큰 타격이 있을 수 있을까? 청년부에 왔던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다. 그들 중에는 목자도 있고, 여러 모양으로 귀중하게 섬겼던 지체도 있고, 그렇지 않고 잠깐 왔다 떠난 지체들도 있다. 그 어떤 지체든지 간에 그들이 왔다 떠나갔다고 해서 공동체가 흔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말 솔직하게 말해서 내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우리 공동체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진정으로 주님이 리더이고, 그분이 우리 공동체의 존재 기반이라면, 내가 사라진다고 해서 특별히 타격을 받을 것이 없어야 마땅하지 않는가?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그리고 나만의 생각이기를 바라지만--현재로서는 내가 사라진 청년부가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교회 내 청년부 안팎의 많은 분들이 그 점을 염려하는 것이 그것을 반증해 준다. 그것은 내가 어느새 청년부에서 Charismatic Leadership을 가진 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내가 청년부 내에서 Charismatic Leader가 되어버렸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많이 있지만 그중에 두드러진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최근 교회 내에서 나에 대한 신앙적 평가들이다. 그 평가들의 대부분은 마치 내가 신앙적으로 뭔가 역량이 있거나 뭔가 하나님 앞에서 대단하게 쓰임을 받는, 다시 말해 신앙적으로 매우 성숙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어느새 사람들의 시선이 예수님께로 향하기보다는 내 자신에게로 향해 있는 것을 본다. 그것은 내 잘못이다. 내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의 시선을 나에게로 이끌어 왔던 것을 본다. 겉으로는 겸손한 척했지만, 내 자신을 드러낼 기회가 있을 때 서슴없이 나섰던 것을 본다. 진심으로 말하건데 그럴 의도는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어 버렸다. 아내가 그런 부분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지적하면서 자중할 것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섬김"과 "순종"이라는 명목으로 내 스스로를 높아지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내가 결국 Charismatic Leader의 자리로 나아가 버렸다. 그것은 죄악이다.
내가 청년부에서 Charismatic Leader가 되어버렸다고 판단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청년부 지체들의 부장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 동안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상담, 지혜, 지식, 가르침--를 최대한 활용하여 청년부 지체들 한 명 한 명을 만나서 돕는 일을 열심히 했었다. 물론 모든 지체들을 다 섬길 수는 없었지만, 리더들과 또 도움이 필요한 지체들에게는 전심을 다해 그들을 돕고 하나님 앞에 세워주는 일을 감당했었다. 그것을 통해 지체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는 것은 늘 큰 기쁨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하는 과정에서 지체들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기도함으로 나아가고, 그분으로부터 진정한 지혜와 힘을 얻는 것을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 나의 평가이다. 그들을 돕는다는 좋은 의도가 그들의 영적 자립심을 충분하게 길러 주지 못하고, 나에게 의존하게하는 결과가 되어 버린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모든 지체들이 그렇게 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부장으로 섬기는 동안 나에게 의존 정도가 심화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내가 속한 교회의 목사님의 사역방식을 다시 평가하게 된다. 우리 목사님은 성도들을 개별적으로 만나서 그들의 깊은 사정을 듣고 문제를 듣고 그것을 상담해주시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어떻게 보면 방치하는 것처럼 보일만큼 그냥 두시는 스타일이다. 나는 그것이 그분의 무관심과 사랑없음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분의 목회 철학이며,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바로 성도들이 어떤 문제로 힘들어 할 때, 진정한 해결자되시는 하나님을 만날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으로 직접 들고 나아가 그분과 해결하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그분 의존적인 신앙(영적인 리더 의존적인 신앙이 아니라)으로 자라가라는 것이라고 믿는다. 나 또한 그분의 그런 철학 덕분에 하나님을 더 깊게 만나고 그분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자라왔다.
나는 지금 이 시점에서 내 섬김의 오류를 보게 된다. 사실 한 영혼을 붙들고 깊이 이야기를 나누며 아픔을 들어주고, 분석해주고, 말씀을 적용시켜주고, 거기서 다시 일어서서 나아가도록 돕는 그 섬김을 하는 것이, 그렇지 않고 그냥 지켜 보며 기도해주는 것보다 나에게는 훨씬 쉽다. 내 본성에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잘하는 대로 섬기는 과정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Charismatic Leader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지금 분명히 깨닫는다. 그리고 그것이 영혼들을 위한 진정한 섬김이 아닐 수 있다는 자각이 이제야 들기 시작한다.
내가 미국으로 공부하러 오기 전에 있던 컨설팅 회사에서 나는 한 컨설팅 파트 책임자였다. 그 회사에서는 최첨단의 컨설팅 기법을 미국, 호주, 영국으로부터 도입했고, 그 지식과 기술을 나로 하여금 모두 흡수하도록 많은 투자를 했었다. 나는 그 사업분야를 맡았었고, 그 사업은 어느 정도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유학을 결정했다. 그리고 내가 그 회사를 떠나 미국으로 올 때까지 내 자리를 감당할 후임자를 찾지 못했다. 몇 명의 컨설턴트들이 팀을 이루어 나로부터 지식을 전수 받고 그 일을 감당하기로 했었으나, 실패했다. 결국 그 사업은 유명무실해졌고, 내가 있던 자리는 너무나 큰 구멍이 나버렸다. 물론 유학을 결정하기 전에 회사 사장님과 미리 논의를 했고, 허락을 받고 진행한 것지만, 그 일로 인해 나는 회사에 큰 누를 끼친 셈이 되어버렸다.
내가 청년부와 이별할 날이 언제인지는 잘 모른다. 앞으로 몇 년을 더 섬기게 될지, 아니면 단 몇 일을 더 섬길 수 있을지... 그것은 내 소관이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이고, 작게 본다면 나의 영적인 리더이신 담임목사님의 소관이다. 하지만 그 때가 언제이든 나는 이별을 준비해야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그 준비란 청년부 공동체가 내가 없이도 (아니, 내가 없어야)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가는 공동체가 되도록 준비를 시키는 것이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공동체이고, 사랑하는 지체들이다. 내가 그들과 작별하는 그 순간... 그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선 공동체로서, 나 한 사람 빠지더라도 끄떡 없는, 아니 오히려 더 잘되는 공동체가 되어 있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실 이 작업은 얼마 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그것은 청년부장과 인간 이광진이 하나로 되어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그 둘을 완전히 별개의 존재로 분리시켜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청년부장만 남고 인간 이광진이 사라지게 되더라도 전혀 무리가 없는 (그래서 어떤 분이 와서 그 자리를 채우든 상관 없는) 그런 준비를 해 가는 것이 바로 내가 그들과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진정한 Charismatic Leader로 인정받아야 할 분인 예수님, 그 분께 우리 공동체의 리더십을 돌려드리는 것이다. 내가 나도 모르게 저질렀던 죄를 회개하는 일이다. 돌이키는 일이고, 회복시키는 일이다. 그것은 더 내려놓는 것, 더 겸손해지는 것, 내 자신을 더 철저하게 부인하는 작업이다. 진정한 종의 자리로 돌아가는 작업이다.
그것은 단기간에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조금씩 진행되어 가야 할 과제이다.
그것은 나에게 아픔과 고통과 인내의 작업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서 내가 져야할 십자가이다.-----------------------
postscript:
내 신앙에 대한 교회의 평가에 대한 솔직한 내 의견을 잠깐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내가 보기에 너무나 과도한 평가이다. 그 평가는 진정한 나의 모습과 상관 없는 거품이 대부분이다. 참으로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그 이유 하나는 단순히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그 안의 실재는 항상 차이가 난다. 문제는 그 차이가 너무 과도할 때는 그것이 본인에게도, 그리고 공동체에게도 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내가 떠난 자리에 후임자를 찾을 때, 교회 내에 다른 집사들(대부분은 나보다 더 훌륭한 섬기는 일꾼들인데)이 과대평가된 나로 인해서 청년부를 섬기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그 자리--너무나 은혜로운 자리이고, 하나님께서 직접 일하시기 때문에 그냥 자리만 지키면 되는 그 자리임에도--에 섬기는 자로 나서는 것을 거부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 거품으로 과대포장된 내 자신의 평가에 대해서 내 자신도 부담스러운데, 다른 분들은 얼마나 더 부담스럽겠는가? 만약 아무도 섬기겠다고 나서는 자가 없다면, 청년부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