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지 꼭 18년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가장 어려운 것은 "믿음"이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과 현실과 상황은 어떤 관계일까? 내가 믿음에 대해서 바르게 알고 있고, 믿음의 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 내 안에서 절대 떠나지 않는 두려운 질문이다.
성경적으로 볼 때, 믿음의 예들은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하나님께서 거대한 방주를 산 꼭대기에 만들라고 명령하셨을 때, 노아는 믿음으로 순종했다.
본토친척 아비집을 떠나는 것이 생명의 보호막, 안전막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그 때에, 아브람은 알지도 못하는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따라 고향을 떠났다. 그리고 애를 낳을 수 없는 불가능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믿어야 했고, 귀하게 얻은 그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을 때, 그는 그대로 순종했다.
이삭은 팔레스타인 땅에서의 생존과 직결되는 우물을 세 번이나 양보하면서(빼앗기면서)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셔서 그를 생존하게 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었다.
기드온은 300명으로 수십만명의 군사들을 대적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나아갔고, 다윗은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역사를 믿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그와 맞서 싸웠다. 그리고 그는 사울을 제거할 만한 결정적인 상황이 두 번이나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을 하나님의 뜻으로 간주하지 않고, 그를 살려 두었다. 그에게는 그 상황보다도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자를 살해하는 것이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마음에 그 믿음을 두었다.
믿음 가운데 호세아는 한 개인의 인생을 완전히 망쳐 놓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창녀와 결혼을 하고 음란한 자식들을 낳고 가정파탄을 경험한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결코 그런 명령을 주실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성적인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말씀에 순종하였고, 그의 믿음에 의한 순종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두신 그 마음을 dramatic하게 온 세상에 알리는 데 쓰임을 받았다.
왕앞에 나아가는 것이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에스더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죽음을 무릎쓰고 왕 앞으로 나아가기를 감행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동포들에게 침략자인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그곳으로 포로로 잡혀가라고 눈물을 흘리며 선포하였던 예레미야에게는 조국이 닥친 "상황"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것이었고, 그 상황 가운데 순리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오히려 "믿음"으로 끝까지 항거하였던 유다의 애국주의자들은 분명히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었고, 그 믿음은 결국 믿음이 아니었다.
믿음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세상적으로 볼 때 저주의 길, 멸망의 길을 갔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임을 당했고, 바울은 로마에서 목이 잘려 죽었다. 야고보는 첫번 째 순교자가 되었으며, 요한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제자들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것은 그들의 믿음의 결과이며, 그들의 삶이 믿음의 삶이었다.
나는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하지만 "상황"이라는 것이 참으로 그 믿음의 삶을 견지하기 힘들게 만든다. 성경을 연구하는 자들에게 공유되는 maxim이 "Context is king."인데, 이 세상을 살다보면,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Situation is king."이라는 절대적인 믿음 가운데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믿음의 삶을 살고자 하는 나에게 가장 거세게 요구되는 것은 그것이 진리임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성경을 볼 때, 내 답은 분명해진다. No! 상황은 하나의 factor일 뿐 결코 절대적인 것도, 그리고 중요한 요소도 아니다. 하지만 현실을 볼 때, 상황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다가온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조차 고지식하고 교만한 믿음을 가진 자, 상황을 무시하는, 비현실적이고, 비뚤어진 개인의 신념에 불과한 믿음으로 매도 당하는 경우가 너무 자주 있다. 끊임없는 비판과 내 주위의 현실을 보면서 나는 심각하게 내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진정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바른 믿음을 가진 자인가? 내가 유대 애국주의자들처럼 상황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그 상황 가운데 굴복하며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지 못하고, 내가 세운 믿음의 원칙을 고수하며 고집부리고 있는, 사실 불순종하는 자가 아닌가?"
그 답은 간단하지 않다. 그리고 그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서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본다. 한없이 연약한 나.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가운데서 긿을 잃고 표류하는 작은 뗏목과 같이...
그런 상황에서 나는 나를 구원할 수 없다. 그리고 내가 그 답을 찾을 능력이 없다. 그저 표류하는 가운데 주님께 구할 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믿음을 좇아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주님만을 사랑하고 주님만을 의지하면서, 세상에 대해 담대하고 맞서는 것일 뿐... 혹시 내가 지금 무지하고 연약하여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내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내 손을 붙잡아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겠지... 만약 내가 바른 길을 가고 있지만,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면, 내 가는 길에 더 힘을 주시고, 나를 그 길로 더욱 인도해 주시겠지...
내 인생...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믿음의 길을 가는 것조차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그분을 향한 순도 100%의 사랑이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나머지는 그분께 맡겨도 된다. 폭풍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고, 평안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시 119:92)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사 5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