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함민복 시인의 추모시

창비 페이스북에 실린 함민복 시인의 세월호 추모시

함민복

배가 더 기울까봐 끝까지
솟아 오르는 쪽을 누르고 있으려
옷장에 매달려서도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믿으며
나 혼자를 버리고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갈등을 물리쳤을, 공포를 견디었을
바보같이 착한 생명들아!
이학년들아!

그대들 앞에
이런 어처구니 없음을 가능케 한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시간은, 우리들의 세월은
침묵도, 반성도 부끄러운
죄다

쏟아져 들어 오는 깜깜한 물을 밀어냈을
가녀린 손가락들
나는 괜찮다고 바깥 세상을 안심시켜 주던
가족들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은
핸드폰을 다급히 품고
물 속에서 마지막으로 불러 보았을
공기방울 글씨

엄마,
아빠,
사랑해!

아, 이 공기, 숨 쉬기도 미안한 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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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잃어버린 교회

온 나라가 세월호의 슬픔 때문에 고통당하고 우울해 하고 있는 요즘. 일부의 말대로 국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언제까지나 아파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하지만 개인이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것과는 별도로 지도자들, 특별히 영적 지도자들은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을 통해서 "의미"를 도출해 내고 그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이 이 땅에 존재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니까...
그런데, 최근 내가 듣는 대부분의 설교(한 설교를 제외한 모든 설교)에서 이 참사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거의 언급이 없거나, 아니면 지나가면서 안타깝다는 정도의 의사표현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가운데서 전해지는 성경 말씀은 왠지 공허하게 들린다. 오늘 내가 다니는 주일설교에서 복음이 전해졌다. 전도를 위한 새가족 초청잔치이기 때문에 복음을 설명하는 내용이었지만, 그 참사와는 (혹은 현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저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복음의 설교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공허해 보였다.
치열한 고민이 없이 전해지는 복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타락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이 소식이 이처럼 의미없게 들린 적은 내 인생에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실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복음이 필요할 때이다. 믿는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위대한 복음은 진정한 소망이 된다. 아니 유일한 소망이다. 온 나라를 비통하게 만들었던 이 사건을 해석해 내고,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근거도 복음에 있다. 그 복음으로 아파하는 자와 함께 아파하며, 고통하는 자와 함께 고통하는 가운데,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참된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 아닌가?
그런 메시지를 줄 수 없는 교회는 이미 능력이 없는 교회이며, 이 땅에 존재 이유가 없는 그런 교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뒤집어 생각해 본다면, 그런 메시지를 도출할 능력이 없는 교회이기 때문에 그런 참사를 막을 사회적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소금으로서의 짠 맛을 잃어버리고, 그 비극의 탄생에 동참한, 혹은 그것을 주도한 세력이 되어 버린 것 아닌가?

안타깝고 비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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