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위하여만 살겠다고 결단할 때, 마귀는 옆에서 박수를 친다.
"훌륭해요!! 암~~ 그래야지!"
그리고나서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할 때, 옆에서 속삭인다.
"지금 좀 피곤하잖아... 조금만 쉬었다가 해. 그리고 다른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 일도 좀 신경 써야 되지 않겠어?"
그 가운데 나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헌신에 대한 개념만 아는 빈 껍데기 신앙으로 타락해 간다.
없는 시간을 내서 성경을 읽고 있을 때, 마귀는 옆에서 나를 매우 존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와~~. 그렇게 바쁜데도 이렇게 열심히 성경을 읽고 있어? 하나님은 좋겠다. 이렇게 충성스러운 종이 있어서... 대단한 희생을 이렇게 과감하게 드리다니..."
그리고 나를 우쭐하게 만든다. 기분이 업 되어 있는 나... 성경을 읽어 나가면서 말씀에 대한 지식이 더해질 때, 마귀는 옆에 와서 더 조용히 속삭인다.
"너처럼 성경 많이 읽는 사람... 거의 못봤다. 너는 성경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보다 많이 알고, 기도도 더 많이하고... 너 만한 그리스도인은 없지... 너 같이 훌륭한 그리스도인을 누가 함부로 무시하겠어? 너 스스로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져... 그건 교만이 아니야, 단지 자부심일 뿐..."
그렇게 해서 나를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심히 교만한 자로 서서히 인도한다.
마귀와의 싸움...
그것을 결코 나의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는 거창한 문제들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마귀는 참으로 교묘하다.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어느새 내 옆에 가까이 다가와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아주 작은 일에 대해서 조금씩 부추긴다.
사실상 마귀와의 싸움 중 가장 중요하고 가장 치열한 싸움은 바로 정말 사소해 보이는 그런 일들에서 발생한다. 겉으로는 사소해 보이지만, 그것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묵상하기 위해 아침에 눈뜨는 것, 기도하기 위해 무릎 꿇는 것, 그리고 꿇은 무릎을 좀 더 오래 지속시키는 것, 사소해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결코 가볍게 보지 않고 그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것...
'이 정도 쯤은 괜찮겠지...'라고 생각이 들 때, 그 때가 가장 경계를 해야할 때이며, 영적으로 긴장해야 할 때이다. 왜냐하면 그곳에 바로 사탄의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공격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삶이다. 일상의 삶의 작은 부분에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나는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이며, 그런 삶은 아무리 거창한 원칙과 비전을 가지고 사는 삶이라 할지라도, 결코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는 삶인 것이다.
manipulation
지난 10월 23일자 한겨레신문의 기사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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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경찰서는 23일 자신의 교회에 다니는 여성 신도 여러 명에게 “나와 성관계를 맺는 것은 신의 뜻”이라고 회유·압박해 이들을 상습 성폭행한 혐의(준강간)로 목사 조아무개(46)씨를구속했다고 밝혔다.
10여년 전 한 선교단체를 만들어 동작구에 교회를 차린 조씨는 자신을 찾아오는 여성신도들에게 “나와 성관계를 하면 모든 죄가 씻겨진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으로 행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구슬려내어 성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10여년동안 20대 미혼 여신도 6명을 수십차례에 걸쳐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조씨는 성관계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하느님의 뜻인 줄 알고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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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안되는 이런 일들...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단순히 무지에서, 혹은 뭔가에 씌워서 그런 것이었을까?
일반인들의 인식 속에 "학대"라는 단어에 연상되는 것은 언어적, 물리적 폭행이다. 말을 함부로 하거나, 때리거나 하는 것을 "학대"라고 생각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또 하나가 있다. 그것은 "manipulation"이다.
Manipulation이라는 것은 인간 안에 잠재 되어 있는 죄의식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을 성폭행한 뒤, 아이들에게 "너는 더러운 아이야." "네가 잘못해서 그래." 등등으로 자주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이 성폭행 당한 것을 자신의 죄, 자신의 더러움으로 인식하게 하여, 자기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듦으로써 그 죄를 은폐시키려고 하는 행위, 남편이 아내에게 폭행을 가하면서 "너는 그렇게 얻어 맞아 마땅한 덜떨어진 인간이야!"라고 폭행을 정당화 하는 행위, 남자에게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기어이 얻어내고자 남자의 약한 감정을 이용하여 그 마음에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함으로써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내는 행위 등이 manipulation에 해당한다. 말 그대로 상대방의 약점이나 죄의식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부당한 방식으로 얻어내는 것이다. 이 manipulation은 "학대"의 한 중요한 양상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위의 신문 기사는 영적 파워를 가진 목사가 자신의 욕구/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여성도들의 죄의식에 자신의 욕구를 교묘하게 연결시킨 결과이다. 그는 결국 manipulation을 사용하여 여성도들을 학대한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 죄의 노예가 되어 버린 모든 인간은 누구든지 그 영혼의 깊은 곳에 죄의식이 숨어 있다. 아담이 범죄하고 난 이후 하나님의 낯을 보기 두려워서 숨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깊은 곳에 죄의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죄의식이 바르게 사용되었을 때,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 사용되었을 때는 인간을 파멸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위에 인용된 신문 기사의 예가 바로 그런 예이다.
영적인 리더로서 섬기면서, 내 스스로가 manipulation의 가능성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기사에 나오는 것처럼 그런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나를 영적인 리더로 믿고 따르는 지체들에게 내가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여러 경우를 통해 경험하면서, 신문 기사에 나오는 것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실제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감으로 느끼게 된다.
영적인 리더의 역할은 인간 안에 있는 죄책감을 말씀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말씀으로 도전받고 죄책감을 느끼며, 그것으로 인해서 주님께 더 나아가고, 주님 앞에서 해결되며, 그로 인해서 더 정결하고 거룩한 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영적 리더의 역할이다.
그런데, 그 어떤 경우이든간에 그 죄책감을 자신의 욕구나 바램, 생각과 연결시킨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엄청난 죄를 짓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관철 시키기 위해서, 지체들이 내 생각대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그들 안에 있는 죄책감에 호소를 한다면, 그들이 나로 인해서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왕위를 찬탈하는 지극히 사악한 행위인 것이다.
만약 그것이 의도적으로 지속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성령을 훼방하는 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도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악독한 죄악인 것이다. 그런 죄를 짓는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몸서리쳐지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권위를 주신 자리에서 섬긴다는 것이 두려운 이유이다. 영적 리더들은 그들이 섬기는 지체들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타락할 여지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권위가 manipulation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것으로 다른 영혼들도 타락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참 두렵다.
내가 더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영적 리더로서 섬길 때, 내가 진정으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섬기고 있는지를 묻고 또 묻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 결코 거리낌이 없는 섬김을 해야 한다. 만약 내 것이 조금이라도 섞인다면,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그에 대해서 나를 매우 책망하실 것이다. 기쁨으로 맞이해야 할 주님 오시는 날이 저주와 슬픔의 날이 될 것이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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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경찰서는 23일 자신의 교회에 다니는 여성 신도 여러 명에게 “나와 성관계를 맺는 것은 신의 뜻”이라고 회유·압박해 이들을 상습 성폭행한 혐의(준강간)로 목사 조아무개(46)씨를구속했다고 밝혔다.
10여년 전 한 선교단체를 만들어 동작구에 교회를 차린 조씨는 자신을 찾아오는 여성신도들에게 “나와 성관계를 하면 모든 죄가 씻겨진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으로 행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구슬려내어 성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10여년동안 20대 미혼 여신도 6명을 수십차례에 걸쳐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조씨는 성관계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하느님의 뜻인 줄 알고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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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안되는 이런 일들...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단순히 무지에서, 혹은 뭔가에 씌워서 그런 것이었을까?
일반인들의 인식 속에 "학대"라는 단어에 연상되는 것은 언어적, 물리적 폭행이다. 말을 함부로 하거나, 때리거나 하는 것을 "학대"라고 생각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또 하나가 있다. 그것은 "manipulation"이다.
Manipulation이라는 것은 인간 안에 잠재 되어 있는 죄의식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을 성폭행한 뒤, 아이들에게 "너는 더러운 아이야." "네가 잘못해서 그래." 등등으로 자주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이 성폭행 당한 것을 자신의 죄, 자신의 더러움으로 인식하게 하여, 자기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듦으로써 그 죄를 은폐시키려고 하는 행위, 남편이 아내에게 폭행을 가하면서 "너는 그렇게 얻어 맞아 마땅한 덜떨어진 인간이야!"라고 폭행을 정당화 하는 행위, 남자에게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기어이 얻어내고자 남자의 약한 감정을 이용하여 그 마음에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함으로써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내는 행위 등이 manipulation에 해당한다. 말 그대로 상대방의 약점이나 죄의식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부당한 방식으로 얻어내는 것이다. 이 manipulation은 "학대"의 한 중요한 양상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위의 신문 기사는 영적 파워를 가진 목사가 자신의 욕구/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여성도들의 죄의식에 자신의 욕구를 교묘하게 연결시킨 결과이다. 그는 결국 manipulation을 사용하여 여성도들을 학대한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 죄의 노예가 되어 버린 모든 인간은 누구든지 그 영혼의 깊은 곳에 죄의식이 숨어 있다. 아담이 범죄하고 난 이후 하나님의 낯을 보기 두려워서 숨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깊은 곳에 죄의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죄의식이 바르게 사용되었을 때,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 사용되었을 때는 인간을 파멸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위에 인용된 신문 기사의 예가 바로 그런 예이다.
영적인 리더로서 섬기면서, 내 스스로가 manipulation의 가능성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기사에 나오는 것처럼 그런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나를 영적인 리더로 믿고 따르는 지체들에게 내가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여러 경우를 통해 경험하면서, 신문 기사에 나오는 것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실제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감으로 느끼게 된다.
영적인 리더의 역할은 인간 안에 있는 죄책감을 말씀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말씀으로 도전받고 죄책감을 느끼며, 그것으로 인해서 주님께 더 나아가고, 주님 앞에서 해결되며, 그로 인해서 더 정결하고 거룩한 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영적 리더의 역할이다.
그런데, 그 어떤 경우이든간에 그 죄책감을 자신의 욕구나 바램, 생각과 연결시킨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엄청난 죄를 짓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관철 시키기 위해서, 지체들이 내 생각대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그들 안에 있는 죄책감에 호소를 한다면, 그들이 나로 인해서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왕위를 찬탈하는 지극히 사악한 행위인 것이다.
만약 그것이 의도적으로 지속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성령을 훼방하는 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도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악독한 죄악인 것이다. 그런 죄를 짓는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몸서리쳐지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권위를 주신 자리에서 섬긴다는 것이 두려운 이유이다. 영적 리더들은 그들이 섬기는 지체들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타락할 여지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권위가 manipulation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것으로 다른 영혼들도 타락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참 두렵다.
내가 더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영적 리더로서 섬길 때, 내가 진정으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섬기고 있는지를 묻고 또 묻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 결코 거리낌이 없는 섬김을 해야 한다. 만약 내 것이 조금이라도 섞인다면,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그에 대해서 나를 매우 책망하실 것이다. 기쁨으로 맞이해야 할 주님 오시는 날이 저주와 슬픔의 날이 될 것이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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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44:00
[펌] 미국 생활의 즐거움 하나...
(2006.01.31에 다른 곳에 썼던 내 글)
미국 생활, 특히 미국에서의 유학생활은 그리 넉넉치 못한 경제적 형편과 공부의 고달픔, 그리고 장래의 불안 때문에 그리 녹록치는 않은 경험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도 어려운 삶은 이겨내도록 돕는, 그리고 나중에 공부가 끝나고 나서도 그리울 그런 작은 기쁨들이 있다. 예를 들어 같은 학생 아파트에서 생활하면서 아이들이 있는 집은 또래 아이들끼리 이리 저리 몰려 다니며 마냥 즐겁게 놀면서 마음대로 이 집 저 집을 드나드는 것, 급히 도움이 필요할 때, 이웃에 쉽게 손벌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것 등이 그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 보다는 훨씬 더 개방적인 한국 학생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어 그 안에서 맛보는 인간적인 즐거움은 참으로 인상적인 것이다.
그 중에 나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다. 그것은 목장모임... 목장이라는 것은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구역 대신에 붙인 이름으로 세 가정에서 일곱 가정 정도가 한 목장을 이루어 매 주마다 정해진 시간에 만나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보는 소그룹 모임이다. 내가 속해 있는 목장에는 여덟 가정 정도가 소속되어 있고 그 중 여섯 가정 정도가 정기적으로 모여서 교재를 나눈다. 나는 거기서 목장을 인도하는 목자로 섬기고 있다.
목장모임... 이는 그저 교회에서 정해준 소그룹 모임의 수준을 훨씬 벗어나는 가족과 같은 관계이다. 어려운 미국생활을 하고 있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서, 같은 신앙을 가지고 서로 격려하며 한 모임을 이루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마음 씀씀이가 참 아름답다.
얼마전에 가정의 문제 때문에 한국에 방문해야 했던 한 지체가 있었다. 모두들 그를 위해 얼마나 기도했는지... 얼마나 마음 졸이면서 한국에서 날라오는 소식을 기다렸는지... 또 한 가정에서는 태어난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아기를 학업 때문에 한국에 보내야 했는데, 그 아기를 보내는 목장 식구를 보면서 내 마음이 왜 그리도 쓰린지... 그리고 애를 보내 놓고 힘들어 하는 그 엄마를 보면서 얼마나 안쓰럽고 가슴 아픈지... 목장 식구들 중에 한 사람이 알레르기로 무척 고생하여 목장 모임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집에 드러 누워 있었을 때, 그 먼거리를 길도 익숙치 않으면서도 밥과 반찬을 해 들고 찾아가 위로하는 또 다른 식구, 그리고 예연이가 아파서 교회에 못간 아내가 식사도 제대로 못했을까 염려해서 감자탕을 준비한 가정... 한국에서 돌아온 형제가 시차 적응이 안되었을까봐서 밥과 김치, 반찬을 해들고 와서 밥 꼭 챙겨먹으라면서 건네주었던 자매...
작은 마음씀씀이... 작은 정성... 마치 내 일인양 신경쓰고 마음... 모두가 우리 목장을 영적인 가족으로 묶어주는 참으로 아름답고, 결코 작지 않은 섬김이고 사랑의 모습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인정하시리라 믿는다. 이런 공동체에 속해있고, 이런 공동체를 섬기는 나는 참으로 축복받은 존재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 목장의 리더로 세워 주셨지만, 나는 오히려 우리 목장의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그 안에서 유학생활의 힘과 기쁨을 얻는다.
미국 생활, 특히 미국에서의 유학생활은 그리 넉넉치 못한 경제적 형편과 공부의 고달픔, 그리고 장래의 불안 때문에 그리 녹록치는 않은 경험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도 어려운 삶은 이겨내도록 돕는, 그리고 나중에 공부가 끝나고 나서도 그리울 그런 작은 기쁨들이 있다. 예를 들어 같은 학생 아파트에서 생활하면서 아이들이 있는 집은 또래 아이들끼리 이리 저리 몰려 다니며 마냥 즐겁게 놀면서 마음대로 이 집 저 집을 드나드는 것, 급히 도움이 필요할 때, 이웃에 쉽게 손벌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것 등이 그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 보다는 훨씬 더 개방적인 한국 학생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어 그 안에서 맛보는 인간적인 즐거움은 참으로 인상적인 것이다.
그 중에 나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다. 그것은 목장모임... 목장이라는 것은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구역 대신에 붙인 이름으로 세 가정에서 일곱 가정 정도가 한 목장을 이루어 매 주마다 정해진 시간에 만나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보는 소그룹 모임이다. 내가 속해 있는 목장에는 여덟 가정 정도가 소속되어 있고 그 중 여섯 가정 정도가 정기적으로 모여서 교재를 나눈다. 나는 거기서 목장을 인도하는 목자로 섬기고 있다.
목장모임... 이는 그저 교회에서 정해준 소그룹 모임의 수준을 훨씬 벗어나는 가족과 같은 관계이다. 어려운 미국생활을 하고 있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서, 같은 신앙을 가지고 서로 격려하며 한 모임을 이루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마음 씀씀이가 참 아름답다.
얼마전에 가정의 문제 때문에 한국에 방문해야 했던 한 지체가 있었다. 모두들 그를 위해 얼마나 기도했는지... 얼마나 마음 졸이면서 한국에서 날라오는 소식을 기다렸는지... 또 한 가정에서는 태어난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아기를 학업 때문에 한국에 보내야 했는데, 그 아기를 보내는 목장 식구를 보면서 내 마음이 왜 그리도 쓰린지... 그리고 애를 보내 놓고 힘들어 하는 그 엄마를 보면서 얼마나 안쓰럽고 가슴 아픈지... 목장 식구들 중에 한 사람이 알레르기로 무척 고생하여 목장 모임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집에 드러 누워 있었을 때, 그 먼거리를 길도 익숙치 않으면서도 밥과 반찬을 해 들고 찾아가 위로하는 또 다른 식구, 그리고 예연이가 아파서 교회에 못간 아내가 식사도 제대로 못했을까 염려해서 감자탕을 준비한 가정... 한국에서 돌아온 형제가 시차 적응이 안되었을까봐서 밥과 김치, 반찬을 해들고 와서 밥 꼭 챙겨먹으라면서 건네주었던 자매...
작은 마음씀씀이... 작은 정성... 마치 내 일인양 신경쓰고 마음... 모두가 우리 목장을 영적인 가족으로 묶어주는 참으로 아름답고, 결코 작지 않은 섬김이고 사랑의 모습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인정하시리라 믿는다. 이런 공동체에 속해있고, 이런 공동체를 섬기는 나는 참으로 축복받은 존재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 목장의 리더로 세워 주셨지만, 나는 오히려 우리 목장의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그 안에서 유학생활의 힘과 기쁨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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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2:49:00
주님...
"그런데, 너 그 때 왜 나를 신뢰하지 못하고, 너 혼자 그렇게 힘들어 했니?"
"죄송해요. 예수님.. 그 때는 제가 믿음이 약해졌었어요.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분명히 알고는 있었는데, 상황과 제 자신을 보니, 그 약속을 신뢰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 그래서 내가 아버지 옆에서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 아버지께서 너를 지켜 주셔서 결국은 모든 것이 잘 되었지."
"그래요... 그 때 정말 감사했었어요. 저 혼자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분명히 갈 길을 알려 주셨지요. 그런데, 예수님...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혼자 기도하실 때, 얼마나 외로우셨어요? 예수님 당시 그 어느 누구도, 심지어 제자들마저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도대체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 가슴 안의 번민과 고뇌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고 있었으니..."
"그래.. 그때 참 외롭고 힘들었지... 십자가의 고통보다는 오히려 아무와도 그 아픔을 나눌 방법이 없다는 것이 더 힘들었지.. 하지만 아버지께서 늘 나와 함께 계시면서, 나를 잘 붙잡아 주셨어... 그나저나 네가 내 마음을 이해한다니, 너도 어지간히 힘들었는가 보구나."
"예... 주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주님 따라 살면서, 특별히 영혼들을 섬기면서, 많이 외로왔지요... 주님에 비하면 저에게는 믿음의 동역자들도 있고 그래서 형편이 훨씬 더 나았는데도... 어려운 결정을 내리거나, 주님의 일을 위해 깊이 고민할 때는 참으로 외로왔어요... 그 때 정말 힘이 들었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어요..."
"그래.. 내가 그 마음 알지..."
"주님이 마음을 알아 주실 거라 믿었어요. 그래도 이렇게 막상 예수님을 만나서 옛날 이야기를 하니, 그 때 힘들었던 것도 이제는 추억이네요.."
마지막 때...
주님을 만난 뒤... 주님과 나 사이에 끊임없는 대화가 오갈 그날... 주님께 책망도 듣고, 위로도 받고, 궁금했던 것을 질문하고 가르침을 받는 그 대화 속에서 그분과 더 깊은 사랑을 나눌 그날...
그 날을 위해 오늘 그분과 대화할 꺼리들을 많이 만들어야겠다. 그분과 지금 이 시간에 동행하면서 같이 일을 해나갈 때, 예수님과 할 말이 많아지겠지...
주님을 따르느라 겪었던 외롭고 힘든 모든 것도 주님께 털어 놓으면서 하소연할 때, 주님께서 내 마음을 아시고 어루 만져 주시겠지...
그 분을 만날 그 날을 생각할 때, 내 안에 모든 어려움을 이길 힘이 솟는다. 주님만을 의지하며, 주님께만 모든 것을 걸어야지...
"죄송해요. 예수님.. 그 때는 제가 믿음이 약해졌었어요.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분명히 알고는 있었는데, 상황과 제 자신을 보니, 그 약속을 신뢰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 그래서 내가 아버지 옆에서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 아버지께서 너를 지켜 주셔서 결국은 모든 것이 잘 되었지."
"그래요... 그 때 정말 감사했었어요. 저 혼자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분명히 갈 길을 알려 주셨지요. 그런데, 예수님...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혼자 기도하실 때, 얼마나 외로우셨어요? 예수님 당시 그 어느 누구도, 심지어 제자들마저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도대체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 가슴 안의 번민과 고뇌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고 있었으니..."
"그래.. 그때 참 외롭고 힘들었지... 십자가의 고통보다는 오히려 아무와도 그 아픔을 나눌 방법이 없다는 것이 더 힘들었지.. 하지만 아버지께서 늘 나와 함께 계시면서, 나를 잘 붙잡아 주셨어... 그나저나 네가 내 마음을 이해한다니, 너도 어지간히 힘들었는가 보구나."
"예... 주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주님 따라 살면서, 특별히 영혼들을 섬기면서, 많이 외로왔지요... 주님에 비하면 저에게는 믿음의 동역자들도 있고 그래서 형편이 훨씬 더 나았는데도... 어려운 결정을 내리거나, 주님의 일을 위해 깊이 고민할 때는 참으로 외로왔어요... 그 때 정말 힘이 들었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어요..."
"그래.. 내가 그 마음 알지..."
"주님이 마음을 알아 주실 거라 믿었어요. 그래도 이렇게 막상 예수님을 만나서 옛날 이야기를 하니, 그 때 힘들었던 것도 이제는 추억이네요.."
마지막 때...
주님을 만난 뒤... 주님과 나 사이에 끊임없는 대화가 오갈 그날... 주님께 책망도 듣고, 위로도 받고, 궁금했던 것을 질문하고 가르침을 받는 그 대화 속에서 그분과 더 깊은 사랑을 나눌 그날...
그 날을 위해 오늘 그분과 대화할 꺼리들을 많이 만들어야겠다. 그분과 지금 이 시간에 동행하면서 같이 일을 해나갈 때, 예수님과 할 말이 많아지겠지...
주님을 따르느라 겪었던 외롭고 힘든 모든 것도 주님께 털어 놓으면서 하소연할 때, 주님께서 내 마음을 아시고 어루 만져 주시겠지...
그 분을 만날 그 날을 생각할 때, 내 안에 모든 어려움을 이길 힘이 솟는다. 주님만을 의지하며, 주님께만 모든 것을 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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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2:32:00
What I think you were this year
하연이가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하며 올해 그들이 자신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단어들로 표현했다.
평가가 많이 짜긴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매우 예리한 것 같다...
맨 위부터 예연, 아빠, 엄마 순으로 카드를 세 장 작성했다.
평가가 많이 짜긴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매우 예리한 것 같다...
맨 위부터 예연, 아빠, 엄마 순으로 카드를 세 장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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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5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