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고후 7:5-6)

오늘 아침 이 말씀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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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고 싶다...


진득하게 앉아서 공부를 하고 싶은데...
많이 읽고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 벽돌을 쌓는 심정으로 천천히, 하지만 차근차근 한 글자씩 빈 종이에 쏟아 놓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우리 학교는 그나마 좀 낫지만, 요즘 대학에서는 연구실적이라는 숫자를 지표로 제시하고 그것에 무조건 맞추기를 원하기 때문에, 아직 숙성되지도 않은 아이디어들이 글이 되어 뿌려진다. 사회가, 대학이 그 숙성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마치 실험 결과가 나오면 뚝딱 글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전공을 불문하고 목표치를 제시한다.
열심히 살고 열심히 읽고 열심히 쓰지만, 내가 진정으로 관심이 있는 그런 공부는 요원하기만 하다.
내 인생에 단 한편의 논문을 쓰고 말더라도 진정으로 의미있는 그런 논문을 쓰고 싶은데...
언제까지나 이렇게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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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습

최근 오랫만에 한 사람의 사진을 볼 기회가 있었다.
반갑고 기뻤다.
하지만, 내 마음 가운데 생겨나는 슬픔 한 조각은 왜일까?

내가 사는 하루의 삶은 내 모습을 결정한다. 그 모습이 쌓이고 쌓여서 내가 외모로 풍기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인생에서 하루가 차지하는 분량 만큼의 영향력으로 내 하루 분의 삶은 내 모습을 바꾼다. 보이지 않게, 조금씩... 날마다 대하는 사람은 그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다. 날마다 그 변화를 대하는 가운데, 그 사람에 대한 기대도 변하기 때문에... 하지만 일정 기간 그 사람을 대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변화를 금새 감지한다.

어떤 사람은 그 분위기 속에서 지적인 향취가 나고,
어떤 사람은 거룩함이 묻어난다.
어떤 사람은 돈의 냄새가 때로는 은은하게, 때로는 강하게 나고,
어떤 사람은 악취가 난다.
어떤 사람은 너무 변해서 이 사람이 그 사람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경우도 있다.

10년 뒤, 그리고 20년 뒤 나에게서는 어떤 풍취가 느껴질까?
나를 오랫만에 만난 사람들이 내 모습 속에서 무엇을 발견할까?
내가 실망하고 슬퍼했던 것 만큼이나 그들도 나를 보고 실망하고 슬퍼할까?
아니면 변함없는 모습을 볼까?
그것도 아니면, 그 전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존경할 만한 그런 풍취가 느껴질까?

하루하루의 삶을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바로 내 자신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오늘 무엇을 위해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가, 아니 살고 있는가를 점검하지 않고 그냥 살아 간다면, 10년 뒤 내 모습은...

For we must all appear before the judgment seat of Christ, so that each one may receive what is due for what he has done in the body, whether good or evil. (2 Corinthians 5:10, ESV)

아련한 아픔 가운데, 내 자신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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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요즘...
진리의 선포는 있지만, 촉촉하게 영혼을 적시는 성령의 역사가 드물고, 수 많은 교인들이 열심히 봉사하고, 그 봉사가 조직적으로 매우 잘 되어 있지만, 섬김이 적은 그런 교회를 경험하고 있다.
바른 것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당연히 좋고, 그것이 없다면 절대로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바름이 매말라버린 바름이라면, 오히려 그것이 진짜 바름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소위 "무위도식"을 끔찍히 싫어하는 목회자의 명령을 따라 교인들의 열심으로 섬기는 것은 바른 것이다. 분명히 바른 교리 위에 서 있고, 그것을 실행함으로 순종하고자 열심히 하고, 교회도 조직적으로 그것을 권장하고 이루어 갈 때, 그것은 참 멋진 일이다. 하지만, 그것인 영혼에 대한 사랑과 관심, 그것도 온유와 겸손과 친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부담스럽기만 할 뿐이다. 그것은 그들의 열심일 뿐이지, 그 봉사의 대상인 영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잘 갖춰져 있지만, 핵심이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교회... 많은 면에서 부족하지만, 온유함과 겸손함 가운데 사랑이 있는 교회... 둘 중 어느 교회가 더 좋은 교회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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