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잊지 맙시다!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귀한 생명의 사연을 모아 놓은 곳.

한겨레 신문사 추모 웹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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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을 바라보며..,

대학들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되어 간다는 증거는 대학본부에서 "돈"에 대한 강조가 너무 많다는 것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소위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서 진정한 교육에 대한 논의는 이미 사라졌고, 등록금 동결 혹은 인하와 신입생 감소에 따른 적자를 해결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으로 모든 것을 돈의 문제로 환언해서 말하는 그런 논리가 지배적이다. 이윤추구가 최고의 목적인 기업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 되어 버렸다.
문제는 백번 양보해서 생존이 최고의 가치가 된 대학간 무한 경쟁 구도 속에서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이 최상의 가치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돈을 버는 것으로 조직을 살리는 기업의 경험이 없는 교수출신의 본부 관계자들이 보이는 너무나 아마추어적이고 기업 운영의 ABC도 모르는 행태는 가히 장탄식을 불러 일으킬만 하다. 기업으로서의 대학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 조직이 가진 가장 핵심역량을 증대시키며, 비핵심부문의 효율화를 도모하는 것이 가장 기본인데도 불구하고, 요즘 대학의 행태는 그에 대한 무지로 값을 톡톡하게 치렀던 1980년대의 기업들이 보인 행태의 답습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핵심부문의 역량을 지키는 것이 시장의 변동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이고, 그것이 손상되었을 때 기업의 생명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음으로 인해서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는 것을 대학을 운영하는 관계자들은 완전히 무지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구나 대학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고 교육과 연구를 통해서 사회에 공헌하는 기관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핵심역량인 학생교육과 교수의 연구환경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작금의 상황은 대학들로 하여금 경쟁에서 생존하게는 할지 몰라도 궁극에는 대학무용론의 폭탄을 맞을 것이다.
대학이 대학다움을 잃어버린다면, 대학의 존재 이유가 없이 않겠는가?
학생은 고객이나 머리수로 따지는 돈이 아니라, 그리고 기업에서 일시적으로 쓰고 버릴 부품이 아니라, 이 사회의 미래이다. 이들을 바르게 가르치는 것은 국가와 세계를 위한 일이다. 이들에게 비판적 사고, 종합적 사고, 치밀한 사고, 방대한 독서에서 나오는 넓은 관점을 가지도록 돕는 것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확실한 길이다.
그것이 대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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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태 101일째를 맞는 아침에

새누리당의 최근 행태에도 불구하고, 그 당의 지지율이 크게 변함이 없다는 것 자체에 절망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에는 작은 실수 하나에도 그렇게 요동을 치던 지지율, 그렇게 날선 비난을 날리던 한국 국민들이, 그와는 비교되지 않는 큰 악행을 서슴지 않는 새누리당에 대해서 그렇게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서 우리 한국 사회의 문제를 봅니다.

얼마전 유시민씨가 새누리당의 지지는 물질에 대한 욕망과 안정을 향한 욕구 두 가지의 기둥에 지탱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정말 맞는 분석이라고 봅니다. 더 잘 살고자하는 욕망과 불안에 대한 공포만큼 끈질긴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물론 잘 살고자 하는 욕망과 안정에 대한 욕구는 잘 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상식과 도덕과 법을 무시하고라도 더 많이 물질적으로 누리겠다는 욕구(강남에 편입되고자 하는 욕망)는 잘 못된 것입니다. 안정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약한 자의 희생이나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레이블링(대표적으로 "빨갱이")하고 제거함으로써 얻어지는 안정이라면, 그것은 안정이 아니라 폭거입니다.

새누리당의 지지는 긍정적인 의미의 잘 살고자 하는 욕망과 안정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심히 왜곡되고 부패한의미의 잘 살고자 하는 욕망과 안정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내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양심을 걸고, 이는 반 성경적이고, 반 하나님적임을 믿습니다. 내 종교적 양심이 그것이 내가 이 악과 맞서 싸워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적어도 내가 읽는 성경은 법과 원칙이 바로 서는 것, 약자의 권리가 무시당하지 않는 것, 생명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는 것, 아픈 자와 함께 아파하고 고통받는 자와 함께 고통받는 것, 강자가 약자를 무릎꿇고 섬기는 것,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그 어느 때보다도 배고프고 목마릅니다.
애통하는 마음이 제 마음을 가득한 것이 지금보다 더 한 때는 없었습니다.
심령이 지금처럼 가난해져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배부르게 하시고, 위로하시고, 부요하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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