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을 정한 다니엘"-김회권 목사 설교

김회권 목사님... 오랫만에 그분의 설교가 듣고 싶어졌다.

영문과 10년 선배...
1991년 어느 봄날 캠퍼스에서 "광진형제!"라고 이름을 부르시며 나에게 처음으로 다가 오셨던 그분...
나에게 기독교는 매우 매력적인 종교라는 것을 보여주신 그분...
멋도 모르고 따라간 1991년 여름수련회에서 설교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해 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도록 하신 분...
그리고 ESF라는 선교단체에서 오랜기간 동안 말씀으로 나를 가르쳐주시고 신앙의 거의 모든 기반을 닦아 주신 분...
프린스턴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로마서 일대일 성경공부를 가르쳐 주시고자 그토록 애쓰셨던 분...
지난 2007년 숭실대 연구실로 찾아 뵈었을 때, 책을 한 아름 안겨 주시면서, 책을 담아갈 가방까지 사 주시며 공부하는 설교자가 되어라고 격려하신 따뜻한 분...

나의 멘토.. 은인... 지금까지 내 신앙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치신 나의 스승...
그분은 언제나 내가 닮고 싶은 믿는자의 표상이다.

그분은 아직도 내 신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계시며, 내 평생에 언제든지 찾아가 배울 스승이다.
한국 기독교를 위해서 동분서주 열심히 사역하시는 그분을 보면서, 그분의 제자의 한 사람으로 내 자신의 모습을 볼 때 참으로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분이 매우 보고 싶은 오늘... 온라인을 뒤져서 여기저기에 있는 그분의 설교를 들었다...
5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열정적으로, 젊은이보다 더 젊음을 간직하신 그분을 만날 수 있었다. 거의 20년 전 처음 뵈었을 때와 비교했을 때 거의 변함이 없으신 그 모습...

김회권 목사님과 같은 이 시대의 스승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다는 것이 참으로 큰 축복임을 깨닫는다.

아래 설교는 내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처음으로 다니기 시작해서 오랫동안 다녔던 논현동의 서울영동교회의 아침예배 때 2008년 1월에 하신 설교말씀이다. 같이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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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여행2-Adventure 1

이번 동부여행을 요약하자면, 어려움(고생), 극기훈련, 만남 이 세 단어에 모두 집약된다. 계속해서 터지는 일련의 문제들... 그리고 헝그리 여행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발바닥에 불이나도록 걸어다니면서도 제대로 쉬지도 못한 일정, 그리고 진흙속의 보석과 같은 그 어려움 가운데서 있었던 믿음의 지체들과의 만남 그리고 교제...
오늘은 그 중 여행중에 겪었던 어려움들에 대해서 일부 나누고자 한다.

13일 여행 첫날... 주일 예배를 마치고, 목장 식구 중 한 분에게 부탁해서 공항으로 향했다. 3시 50분 출발 예정인 비행기를 타기 위해 적어도 한 시간 반 전에는 도착해야 했기 때문에, 예배가 끝나고 나서 밥을 급히 먹고 집에 들러 짐을 싣고 부랴부랴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여 작별인사를 나눈 후, 표를 끊고 들어간 Security Check... 모두 8개가 넘는 가방들 중에서 한 개가 보안 검색에 걸렸다.(이후로도 보안 검색에 안 걸리고 통과해 본 적이 없었다...-_-;;;;) 거기서 반찬으로 들고간 팩을 빼앗기고 검색을 무사히 통과했다. 빼앗긴 반찬 생각에 분하긴 했지만 여행을 시작한다는 들뜬 마음으로 게이트로 가서 기분 좋게 기다렸다. 하지지만 3시 50분에 출발한다던 비행기는 한번 연기 되었고, 또 연기되어 8시 정도에 그 비행기를 운항할지를 결정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원래 댈러스에서 필라델피아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고 가기로 했기 때문에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되어서, 항공사 고객센터에 여러번 전화를 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아보다가 결국에는 댈러스에서 하루 자고 그 다음날 6시 조금 넘어서 출발하는 첫 비행기로 필라델피아로 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문제는 숙소문제였는데, 게이트의 항공사 직원은 날씨 문제로 운항에 차질이 생겼다고 알렸지만, 전화로 확인해 본 결과 날씨가 아니라 정비 문제라고 말해 주었고, 그렇기 때문에 항공사에서 숙소와 아침식사를 무료로 제공해 주었다.

많이 늦게 출발한 비행기를 타고 댈러스로 향했다. 오랫만에 타본 비행기라서 그간 바뀐 분위기를 잘 몰랐었는데, 최근 바뀐 baggage 유료화 정책으로 인해, 비행기 안 짐 넣는 칸이 전에 비해서 훨씬 복잡했다. 원래 우리 가족 위의 짐칸이 비어 있어야 마땅한데, 이미 다 차 있었고, 비행기 앞좌석에만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아직도 타야할 승객들은 많은데... 어쨋든 짐을 그냥 들고 있을 수 없어서 비즈니스석 위의 짐칸에 가방 하나를 올려 두었다. 그게 문제였다. 내릴 때 보니, 그 자리에 가방이 있긴 한데, 색과 모양이 비슷할 뿐, 다른 사람 것이었다. 그 가방의 원래 주인이 자기 것인줄 알고 우리 가방을 그냥 들고 내린 것이었다. 그 짐에 아무런 표기도 없고, 우리 짐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고 있을 때, 마침 같은 비행기를 탔던 교회의 한 형제 한분이 발벗고 나서서 도와 주셨다. 나는 일단 그 가방 주인이 baggage claim에 나가 있을지 모르니 그곳에 가서 그 사람을 찾고, 그 동안에 그분은 항공사 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공항 전체에 안내방송을 내보냈다. 그분도 LA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해서 시간이 없었지만, 비행기를 놓칠 위험을 무릎쓰고 자신의 일처럼 적극적으로 도와 주셨다. 얼마나 감사한지...
baggage claim에서 짐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일일이 조사했지만, 내 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은 거기에 없었다. 그래서 가족들이 있는 내부로 들어가려고 하니, 이미 체크아웃 했기 때문에 들어갈 방법이 없다면서 guard가 나를 가로 막았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있는 사이에 그 형제는 공항과 항공사 관계자들과 때로는 전화로 때로는 직접 만나서 재촉하면서 동분서주 하였다. (만약 하연엄마만 있었더라면 어땠을지... 휴...) 마침내 가방을 가져간 사람이 나타났고, 나와 만나서 가방을 교환할 수 있었다.
한 바탕 야단법석을 떤 후에, 우리는 겨우 공항을 빠져 나왔고, 8개가 넘는 짐들을 들고 먼길을 걸어 가서 찾은 정류장에서 호텔셔틀을 타고 숙소에 들어갔다.
공항 바깥은 이미 늦은 밤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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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여행1-旅毒

지난 13일부터 24일까지 12일간 동부여행을 다녀왔다.
예정보다 하루가 늦은 24일 오스틴 공항에 도착하고, 라이드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도착한 순간, 장탄식이 터져 나왔다...

"휴~~"

많은 의미를 갖는 그 탄식 이후 그 동안 쌓였던 여독(旅毒)이 몰려왔다.
24일 저녁, 그리고 25일 거의 하루 종일 잠에 취해 있었다. 저녁에 있었던 목장모임도 간신히 다녀왔다. 물론 목장모임을 통해서 영혼의 피로 뿐만 아니라 몸의 피로까지 많이 풀리고 회복되긴 했지만... 여독은 그 이후에도 상당기간 지속되어 지금까지도 온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22일 저녁... 워싱턴 DC 여행을 마치고 밤 11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필라델피아의 숙소에 도착했다. 나름 대로 좋은 호텔을 미리 예약했었고, 그 호텔에서 푹 쉴 생각을 하며 깊은 잠에 빠져있는 아이들을 깨워 호텔 로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직원이 하는 말은 그날 overbooking이 되어서 방이 없다는 것이다.
한참을 기다리게 한 후, 호텔에서 다른 곳의 방을 잡아 줘서 거의 12시가 다 되어서야 그 호텔로 이동할 수 있었다. 약 23분 정도 북쪽에 위치한 Chestnut Hill Hotel... 직원의 말로는 view가 정말 좋은 곳이라고 해서 기대하며 갔는데... 기대와는 달리 호텔은 매우 위험해 보이는 동네에 위치한 허름한 여관, 아니 그보다도 못한 여인숙 같은 곳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허둥대는 프론트 직원... 한참 후에야 방을 배정받고, 건물 뒤에 주차한 뒤, 들어간 방... 냄새.. 허름함... 위험해 보이는 동네임에도 창문 잠금장치는 아예 없어서, 2층에 위치한 방으로 외부에서 누군가 들어 오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들어 올 수 있는 허술한 보안...
가장으로서 위험을 느끼며, 진심으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을 보호해 달라고...
가족들의 안전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거리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그 다음날 아침... 그날은 바로 내 생일날이었다. 음력 5월 12일...
허름한 여인숙같은 호텔에서 제공하는 허름한 아침식사로 대충 때우고, 정리한 뒤 Rent Car 회사로 향했다. 12시까지 차를 돌려 줘야 했기 때문에 20분 정도의 여유를 두고 출발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산이었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1차로의 길... 어디를 보나 2차로를 찾을 수 없는 필라델피아의 도로 상태를 잘 몰랐던 것이다. 내 앞에 달려가는 버스 한 대가 거의 모든 정류장마다 멈춰서며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는 그 길... 반대편에서 오는 차도 많고, 시야도 확보가 되지 않아서 졸졸 따라가야 했던 그 답답함...
Rent Car 회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12시 11분이 다 되어 있었다. (예정 시각보다 30분 지나서까지는 Grace time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하루치의 렌트비를 추가로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그 때는 모르고 있었다.) 얼마나 가슴이 졸였는지...
다행히 추가비용 없이 무사히 반납하고, 거기서 만나기로한 후배와 조우했다. 원래는 비행기 타기 전까지 후배와 교제하기를 원했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 출발 예정시간은 4시 50분...
후배의 도움으로 무사히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너무 일찍 도착한 공항... 정시에 출발한다 하더라도 몇 시간의 여유가 있었던 터라 나는 책을 읽으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 갑자기 말도 없이 Gate가 바뀌더니, 출발시간이 5시 30분으로 미뤄지고, 나중에는 8시 30분으로 연장되었다. 원래 8시에 시카고에서 오스틴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로 되었었는데, 불가능해졌다. American Airline 고객센터에 전화를 여러번 하고, 수많은 경우수 수 가운데서 결정을 해야하는 어려운 상황이 연속되었고, 급기야 8시 반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에 가서 하룻밤을 지낸 후 다음날 한시 반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면, 토요일 오후까지 오스틴에 갈 방법이 없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는 결국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급히 공항근처의 호텔을 알아봤고, 너무 비싼 가격에 놀라 가장 싼 (그렇지만 기존에 머물렀던 좋은 호텔보다 결코 가격이 낮지 않은) 호텔을 잡았다.
다행히 8시 반에 비행기는 출발했고, 시카고에 10시에 도착해서 호텔에서 나온 셔틀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오면서 바로 직전에 토네이도가 휩쓸고간 도시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멀쩡한 공항 주변의 경치를 봤다... '진짜 토네이도가 오긴 왔었나?' (그 다음날 공항 직원으로부터 얼마나 무시무시한 토네이도가 불어 닥쳤는지... 그래서 거의 모든 비행기가 취소되었었는지... 그 전날 비행기로 시카고에 올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운이 좋은 것이었는지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시카고의 호텔은 그 전날 호텔보다 더 열악했다. 내 평생에 그런 호텔에 머무르리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한 그런 싸구려 호텔... 목이 아플 정도로 냄새가 진동하는 방, 너무나 허름한 그 방과 건물. 뭔가 축축한 것이 느껴지는 카펫... 그런 곳에 내 가족을 머물게 한다는 것이 참으로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감사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내 41번째 생일이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잔 후 다행히 정시에 출발한 비행기를 타고 오스틴으로 돌아왔다.

동부여행... 대부분 도시들을 돌아 봤던 그 시간들... 그 여행은 adventure였고, 극기훈련이었다. 서부를 여행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힘든 광야의 길을 걷는 것 같은 어려운 여정이었다. 그 여정 가운데 축적되어 간 여독은 나를 참으로 힘들게 했다.

하지만, 즐거움도 없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지체들을 만났다는 것, 그리고 가족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도 모든 순간 함께했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 과정을 통해서 여전히 신실하게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무사히 오스틴으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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