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여행1-旅毒

지난 13일부터 24일까지 12일간 동부여행을 다녀왔다.
예정보다 하루가 늦은 24일 오스틴 공항에 도착하고, 라이드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도착한 순간, 장탄식이 터져 나왔다...

"휴~~"

많은 의미를 갖는 그 탄식 이후 그 동안 쌓였던 여독(旅毒)이 몰려왔다.
24일 저녁, 그리고 25일 거의 하루 종일 잠에 취해 있었다. 저녁에 있었던 목장모임도 간신히 다녀왔다. 물론 목장모임을 통해서 영혼의 피로 뿐만 아니라 몸의 피로까지 많이 풀리고 회복되긴 했지만... 여독은 그 이후에도 상당기간 지속되어 지금까지도 온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22일 저녁... 워싱턴 DC 여행을 마치고 밤 11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필라델피아의 숙소에 도착했다. 나름 대로 좋은 호텔을 미리 예약했었고, 그 호텔에서 푹 쉴 생각을 하며 깊은 잠에 빠져있는 아이들을 깨워 호텔 로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직원이 하는 말은 그날 overbooking이 되어서 방이 없다는 것이다.
한참을 기다리게 한 후, 호텔에서 다른 곳의 방을 잡아 줘서 거의 12시가 다 되어서야 그 호텔로 이동할 수 있었다. 약 23분 정도 북쪽에 위치한 Chestnut Hill Hotel... 직원의 말로는 view가 정말 좋은 곳이라고 해서 기대하며 갔는데... 기대와는 달리 호텔은 매우 위험해 보이는 동네에 위치한 허름한 여관, 아니 그보다도 못한 여인숙 같은 곳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허둥대는 프론트 직원... 한참 후에야 방을 배정받고, 건물 뒤에 주차한 뒤, 들어간 방... 냄새.. 허름함... 위험해 보이는 동네임에도 창문 잠금장치는 아예 없어서, 2층에 위치한 방으로 외부에서 누군가 들어 오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들어 올 수 있는 허술한 보안...
가장으로서 위험을 느끼며, 진심으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을 보호해 달라고...
가족들의 안전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거리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그 다음날 아침... 그날은 바로 내 생일날이었다. 음력 5월 12일...
허름한 여인숙같은 호텔에서 제공하는 허름한 아침식사로 대충 때우고, 정리한 뒤 Rent Car 회사로 향했다. 12시까지 차를 돌려 줘야 했기 때문에 20분 정도의 여유를 두고 출발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산이었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1차로의 길... 어디를 보나 2차로를 찾을 수 없는 필라델피아의 도로 상태를 잘 몰랐던 것이다. 내 앞에 달려가는 버스 한 대가 거의 모든 정류장마다 멈춰서며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는 그 길... 반대편에서 오는 차도 많고, 시야도 확보가 되지 않아서 졸졸 따라가야 했던 그 답답함...
Rent Car 회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12시 11분이 다 되어 있었다. (예정 시각보다 30분 지나서까지는 Grace time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하루치의 렌트비를 추가로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그 때는 모르고 있었다.) 얼마나 가슴이 졸였는지...
다행히 추가비용 없이 무사히 반납하고, 거기서 만나기로한 후배와 조우했다. 원래는 비행기 타기 전까지 후배와 교제하기를 원했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 출발 예정시간은 4시 50분...
후배의 도움으로 무사히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너무 일찍 도착한 공항... 정시에 출발한다 하더라도 몇 시간의 여유가 있었던 터라 나는 책을 읽으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 갑자기 말도 없이 Gate가 바뀌더니, 출발시간이 5시 30분으로 미뤄지고, 나중에는 8시 30분으로 연장되었다. 원래 8시에 시카고에서 오스틴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로 되었었는데, 불가능해졌다. American Airline 고객센터에 전화를 여러번 하고, 수많은 경우수 수 가운데서 결정을 해야하는 어려운 상황이 연속되었고, 급기야 8시 반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에 가서 하룻밤을 지낸 후 다음날 한시 반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면, 토요일 오후까지 오스틴에 갈 방법이 없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는 결국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급히 공항근처의 호텔을 알아봤고, 너무 비싼 가격에 놀라 가장 싼 (그렇지만 기존에 머물렀던 좋은 호텔보다 결코 가격이 낮지 않은) 호텔을 잡았다.
다행히 8시 반에 비행기는 출발했고, 시카고에 10시에 도착해서 호텔에서 나온 셔틀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오면서 바로 직전에 토네이도가 휩쓸고간 도시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멀쩡한 공항 주변의 경치를 봤다... '진짜 토네이도가 오긴 왔었나?' (그 다음날 공항 직원으로부터 얼마나 무시무시한 토네이도가 불어 닥쳤는지... 그래서 거의 모든 비행기가 취소되었었는지... 그 전날 비행기로 시카고에 올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운이 좋은 것이었는지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시카고의 호텔은 그 전날 호텔보다 더 열악했다. 내 평생에 그런 호텔에 머무르리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한 그런 싸구려 호텔... 목이 아플 정도로 냄새가 진동하는 방, 너무나 허름한 그 방과 건물. 뭔가 축축한 것이 느껴지는 카펫... 그런 곳에 내 가족을 머물게 한다는 것이 참으로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감사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내 41번째 생일이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잔 후 다행히 정시에 출발한 비행기를 타고 오스틴으로 돌아왔다.

동부여행... 대부분 도시들을 돌아 봤던 그 시간들... 그 여행은 adventure였고, 극기훈련이었다. 서부를 여행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힘든 광야의 길을 걷는 것 같은 어려운 여정이었다. 그 여정 가운데 축적되어 간 여독은 나를 참으로 힘들게 했다.

하지만, 즐거움도 없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지체들을 만났다는 것, 그리고 가족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도 모든 순간 함께했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 과정을 통해서 여전히 신실하게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무사히 오스틴으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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