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앞에 선 나의 태도...

얼마전 우연히 과거에 내가 쓴 묵상 노트를 본 적이 있다. 묵상 "노트"라고 해서 어떤 공책이나 수첩이나 다이어리 같은 것이 아니고, hwp 파일로 컴퓨터에 저장된 것이다. 나는 가능하면 모든 것을 디지털 포맷으로 보관한다. "묵상모음"이라는 하나의 파일 안에 내 묵상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오래 전 묵상부터 차근히 읽어 나갔다. 그 글을 쓸 당시 어떤 상태에 있었고, 어떤 마음으로 묵상을 정리했는지 분명하게 생각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아니 더 많았다.) 묵상할 당시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서 비교적 객관적으로 과거의 묵상들을 읽어 나가면서 한 가지 발견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말씀을 묵상하면서 평소에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거기에는 내 삶의 모습이 많이 부족했다.

묵상은 일기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내 개인사의 기록이 될 필요는 없다. 아니 내 개인사에 너무 치중하게 되면 "나" 중심의 묵상이 되고 "하나님" 중심의 말씀 묵상이 약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중할 필요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내가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께 시선을 두고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에 초점을 두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내 "삶"에, 내 인생 가운데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시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상적인 묵상이란 내 삶에 "적용"된 묵상, 다시 말해 내 삶에 침투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록이어야 한다. 내 삶의 핵심을 건드리시는 하나님이 드러나야 한다.

성경을 처음 접하던 1991년부터 나에게 성경은 "연구"대상이었다. 늘 성경을 공부하고, 분석하는 훈련을 받아 왔다. 그 훈련은 나로 하여금 성경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또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왔다. 하지만... 묵상 시간까지도 그런 자세를 견지한다면 참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묵상은 연구가 아니라 청취의 시간이다. 물론 본문을 분석하는 가운데 contextualize를 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들을 수 있지만, 그 후에 "나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고, 그 말씀은 보다 더 구체적인 삶의 문제/현장에 적용되어야 한다. 나에게 있어 아직까지 그 적용부분이 많이 약한 것을 본다.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것을 강하게 체험하기 위해서는 적용이 핵심이다.

내 스스로에게 훈련을 시킬 필요가 있다. 좀 더 구체적이고, 좀 더 삶에 맞닿아 있는 묵상이 필요하다.

아침(새벽)에 경건의 시간을 가져야만 하는 이유 1

(아침에 경건의 시간을 가져야 할 여덟 가지 이유)

1. 아침은 하루의 첫 부분이다. 따라서 가장 위에 계신 주님께서 첫 번째 자리에서, 처음으로 예배를 받으시는 것은 합당하다. 이방인들도 무엇을 하든지 신과 더불어 시작하라(A Jove Principium)고 말할 수 있었다. 세상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우리도 그렇다. 따라서 무슨 일을 시작하든지 그를 함께 모시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이성의 태양이 우리의 영혼에 솟아오르자마자 우리 인생의 나날을 하나님께 드리며 그에게 예배드려야 한다. 아침에 동이 틀 때부터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이 그리스도 앞에 나가기를 바란다.(시 110:3) 첫 열매와 짐승들의 첫 수확은 언제나 주님의 것이었다. 아침과 저녁기도로서 우리는 알파와 오메가 되시며 처음과 나중되시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와 더불어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 지어야 한다. 그는 시작이며 끝이 되시고 처음이시고 또한 나중이시기 때문이다.
젊어서부터 나를 찾으며, 아침 일찍부터 나를 찾는 자는 나를 만나리라고 지혜가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이로써 하나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것, 즉 무엇보다 좋은 것을 드리며, 우리가 그를 기쁘시게 하는 일과 그에게 인정받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우리가 주님을 진실하게 구하고 있음을 나타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지하게 행해야 하는 것은 아침 일찍이 하라고 성경에서도 말씀하고 있다.(시 101:8) 부지런한 사람은 아침 일찍 일어난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시 101:8)라고 하면서 다윗은 그 온 마음과 정성으로 주께 헌신함을 표현했다.
 
1. The morning is the first part of the day, and it is fit that he that is first should have the first, and be first served. The Heathen could say, A Jove Principium-Let your beginning bs with Jupiter. Whatever you do, begin with God. The world had its beginning from him, we had ours, and therefore whatever we begin, it concerns us to take him along with us in it. The days of our life, as soon as ever the sun of reason rises in the soul. should be devoted to God, and employed in his service; From the womb of the morning, let Christ have the dew of thy youth (Ps. cx. 3). The first-fruits were always to be the Lord's and the firstlings of the flock. By morning and evening prayer we give glory to him who is the Alpha and the Omega, the first and the last; with him we must begin and end the day, begin and end the night, who is the beginning and the end, the first cause and the last end.
Wisdom has said, Those that seek me early shall find me; early in their lives, early in the day; for hereby we give to God that which he ought to have, the preference above other things. Hereby we shew that we are in care to please him, and to approve ourselves to him, and that we seek him diligently. What we do earnestly we are said in Scripture to do early (Ps. ci. 8). Industrious men rise betimes; David expresses the strength and warmth of his devotion, when he says, O God, thou art my God; early will I seek thee (Ps. lxiii. 1).

아침(새벽)에 경건의 시간을 가져야만 하는 이유 - Matthew Henry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시 5:3)
 
본문에서 이 선한 일을 하기 위해 특별히 정해 놓은 시간은 아침이다. 그리고 시편 기자는 여기, 즉 아침이라는 것을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아침에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기도로 시작하라는 것이다. 아침 시간을 기도하는 시간의 하나로 삼으라. 율법 아래서는 아침마다 양이 제사로 드려진 것(출 20:39)과, 또한 아침마다 제사장이 향을 피웠던 것(출 30:7)을 알 수 있으며, 매일 아침 주께 감사드리며 찬송하는 자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대상 9:33) 에스겔의 성전에서도 아침마다 정해 놓고 제사 드리는 일이 있었다.(겔 46:13-15) 이것들을 통하여 영적인 제사는 영적인 제사장에 의하여 매일 아침, 아침이 탄생되는 것처럼 어김없이 드려져야 한다는 암시가 분명히 나타나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과 또한 모든 가정의 가장들은 그의 가족과 함께 매일 아침 은밀한 가운데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들이 충분히 있다.
 
My voice shalt thou hear in the Morning, O Lord; in the morning will I direct my prayer unto thee, and will look up. (Psalm 5:3)
 
The particular time fixed in the test for this good work is the morning; and the Psalmist seems to lay an emphasis upon this in the morning, and again in the morning; not then only, but then to begin with; let that be one of the hours of prayer. Under the law we find that every morning there was a lamb offered in sacrifice, (Exod. xxix. 39) and every morning the priests burned incense, (Exod. xxx. 7) and the singers stood every morning to thank the Lord, (Chron. xxiii. 30). And so it was appointed in Ezekiel's temple, (Ezek. xlvi. 13,14,15). By which intimation was plainly given, that the spiritual sacrifices should be offered by the spiritual priests every morning, as duly as the morning comes. Every Christian should pray in secret, and every master of a family, with his family, morning by morning; and there is good reason for it.

아침(새벽)에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에 대하여-2

아침 경건시간에 대한 권고의 말을 간직하도록 간곡히 부탁한다. 은밀한 가운데 계속해서 신실하게 예배드리는 것이 여러분의 영혼의 번영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정말 진지하게 여러분께 이 사실을 강조하려 한다. 즉 매일 아침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목소리를 들으실 수 있도록 기도하고 그를 바라라.

1. 여러분의 은밀한 예배를 반드시 사수하라. 여러분들의 선조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에 의한 관습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은 율법에 관련된 의무이기 때문에 이것을 지속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 정해 놓은 시간을 지키고 그 시간에 충실하라. 이제까지 은밀하게 기도드리는 일에 대해 전혀 무관심한 상태에서 살았거나 이 일을 종종 소홀히 한 사람들도 지금부터는 이것이 여러분들의 어떠한 일과보다도 가장 필요한 부분이며 그 날의 위로 중 가장 즐거운 부분으로 여기고, 끊임없는 주의와 끊임없는 기쁨을 가지고 이를 행해야 한다.
이성을 가진 사람이면 아무도 이 의무를 면하려고 핑계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야기 되었다면 그것은 곧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기도하고 기도하라. 계속해서 기도하고 주님을 바라라."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처럼 그들의 손이 일에 얽매여 있지 않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처럼 자선금을 많이 내지는 않지만,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간에 기도는 마찬가지로 해야 한다. 부자라고 해서 당연히 해야 할 이 일을 넘어 갈 수 없으며,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어린 사람이라도 기도를 시작하기에 이르지 않으며, 아무리 나이든 사람일지라도 이제는 더 이상 기도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말년에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이다.
아무도 기도할 수 없다고 변론하지 말라. 굶주려서 멸망케 되었거든 먹을 것을 위하여 기도하고 구하며, 죄로 말미암아 파멸케 되었거든 자비와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을 위해 기도할 수 있지 않은가?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인가? 그렇다면 기도할 수 없다는 부끄러운 말을 하지 말라. 이는 군인이 무기를 혹은 목수가 도끼를 다룰 줄 모른다고 함과 같이 어리석은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제 가운데 부르심을 입은 것은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교제를 갖기 위함이다. 여러분이 남들처럼 기도를 잘 할 수 없다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다.
아침에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변명하지 말라. 여러분이 그보다 더 중요하지 않은 일을 위해서는 시간을 낼 수 있다고 나는 감히 장담할 수 있다. 기도하는 시간을 원하기 보다는 잠자는 시간을 갖기를 더 바라는데, 어떻게 여러분 자신의 만족과 이익을 위하여 시간을 더 잘 사용할 수가 있겠는가? 하루의 모든 일과는 하나님과 더불어 시작할 때 더욱 번영할 것이다.
기도하기에 적합한 은밀한 장소가 없다고 변명하지 말라. 이삭은 기도하기 위해 들판으로 나갔으며, 시편기자는 지붕 꼭대기 한쪽 구석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할 수가 있었다. 여러분이 원하는 만큼 은밀한 중에 기도할 수 없다 해도 있는 그 상태에서 기도하라. 과시하기 위해서 보이는 가운데 기도하는 것이 나쁘지, 어찌 할 수 없는 경우에 주의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나는 내가 젊었을 당시, 제임스 왕 시대에 역마차를 타고 런던으로 올라 가면서 우연히 어떤 한 신사와 동행하게 되었을 때를 기억한다. 그는 예수회 소속의 (가톨릭) 신자임을 털어 놓기를 꺼려하지 않았다. 나는 그와 함께 가는 동안 많은 논쟁을 했는데 그 중 이런 것이 있었다. 그는 천주교에서 어느 때나 사람들이 와서 기도할 수 있도록 성당 문을 늘 열어 놓고 있는 것을 찬양했다. 그러나 그것은 바리새인들이 회당에 들어가 기도하는 것 같이, 너희는 기도할 때 문을 열어 놓고 회당에 들어가지 말고 네 골방에 들어가 은밀한 중에 기도하라신 주님의 가르치심에 어긋난다고 그에게 말하자, 그는 이 논증에 대하여 격정적으로 대답하기를 "나는 프로테스탄트들이 아무 곳에서도 기도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고 했다. "왜냐면 (그가 말하기를) 나는 신교도들과 함께 마차를 타고 여핸한 적이 많고, 때로는 그들과 함께 한 여관 방에서 지내기도 하면서 그들을 주의 깊게 관찰했지만 밤이는 아침이든 기도하는 사람은 장로교인이었던 단 한 사람 이외에는 찾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가 이야기한 것이 사실이기보다는 악의로 그런 말을 했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것을 일례로, 우리가 아침에 주님의 말씀을 보며 기도드릴 때,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은밀한 곳에 있지 못하더라도 빠뜨리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빠뜨리고  지나침으로써 죄를 드러낼 뿐 아니라, 불명예스러운 일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2. 여러분은 자진해서 은밀한 중에 예배를 드리며, 이 일에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이 일에 형식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며 예배드릴 때 관습적으로 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이 일에 진지하게 임하라. 단순한 기도를 드리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므로 하나님과 마음을 함께 하며, 엘리야가 기도했던 것처럼 기도드려야 한다(약 5:17). 에바브라가 기도했던 것 같이(골 4:12) 항상 애써 기도하는 것을 배우자. 그리하면 우리를 부요케 해주는 것은 바로 부지런히 이 의무를 행하는 손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가 얼마나 긴가에 관여하지 않으시며, 여러분이 유창하게 많은 말을 한다고 해서 기도를 들어 주시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실이며, 주님께 기쁨이 되는 것은 정직한 자들의 기도이다. 하나님을 섬기며 그를 의지하면서 기도드린다면, 여러분의 아침 경건시간을 통하여 오는 위로와 축복은 지나쳐 가버리는 아침 구름같지 않고, 점점 더 밝게 비치는 아침 햇살과 같을 것이다.

I beseech you, suffer a word of exhortation concerning this. I know what an influence it would have upon the prosperity of your souls to be constant and sincere in your secret worship, and, therefore give me leave to press it upon you with all earnestness; let God hear from you every morning, every morning let your prayer be directed to him, and look up.

(1) Make conscience of your secret worship; keep it up, not only because it has been a custom you have received by tradition from your fathers, but because it is a duty, concerning which you have received commandments from tho Lord. Keep up stated times for it, and be true to them. Let those who have hitherto lived in the total neglect, or in the frequent omission of secret prayer, be persuaded henceforward to look upon it as the most needful part of thoir daily business, and the most delightful part of their daily comfort, and do it accordingly with a constant care, and, yet, with a constant pleasure.
No persons who have the use of their reason, can pretend to an exemption from this duty; what is said to some is said to all, "Pray, pray, continue in prayer, and watch in the same." Rich people are not so much bound to labour with their hands as the poor; poor people are not so much bound to give alms as the rich,--but both are equally bound to pray. The rich are not above the necessity of the duty, nor the poor below acceptance with God in it. I t is not too soon for the youngest to begin to pray; and those whom the multitude of years has taught wisdom, yet at their end will be fools, if they think they have no further occasion for prayer. Let none plead they cannot pray; for if you are ready to perish with hunger, you could beg and pray for food; and if you see yourselves undone by reason of sin, can you not beg and pray for mercy and grace? Art thou a christian? Never for shame say, thou canst not pray, for that is as absurd as for a soldier to say, he knows not how to handle a sword, or a carpenter an axe. What are you called for into the fellowship of Christ, but that by him you may have fellowship with God? You cannot pray so well as others, pray as well as you can, and God will accept of you. Let none plead that they have not time in a morning for prayer; I dare say you can find time for other things that are less needful; you had better take time from sleep, than want time for prayer; and how can you spend time better, and more to your satisfaction and advantage ? All the business of the day will prosper the better, for your beginning it thus with God.
Let none plead that they have not a convenient place to be private in for this work; Isaac retired into the field to pray; and the Psalmist could be alone with God in a corner of the house-top. If you cannot perform it with so much secrecy as you would, yet perform it; it is doing it with ostentation that is the fault, not doing it under observation, when it cannot be avoided. I remember, when I was a young man, coming up hither to London in the stage-coach, in King James' time, there happened to be a gentleman in the company, who then was not afraid to own himself a Jesuit; many rencounters he and I had upon the road, and this was one; he was praising the custom in popish countries of keeping the church doors always open, for people to go into at any time to say their prayers: I told him it looked too much like the practice of the Pharisees, that prayed in the synagogues; and did not agree with Christ's command, Thou, when thou prayest thyself, enter not into the church with the doors open, but into tiny closet and shut thy door; when he was pressed with that argument, he replied with some vehemence, "I believe you Protestants say your prayers no where; for" (said he) "I have travelled a great deal in the coach in company with Protestants, have often lain in inns in the same room with them, and have carefully watched them, and could never perceive that any of them said his prayers, night or morning, but one, and he was a presbyterian." I hope there was more malice than truth in what he said: but I mention it as an intimation, that though we cannot be so private as we would be in our devotions, yet we must not omit them, lest the omission should prove not a sin only but a scandal.

(2) Make a business of your secret worship, and be not slothful in this business, but fervent in spirit, serving the Lord. Take heed lest it degenerate into a formality, and you grow customary in your accustomed services. Go about the duty solemnly: be inward with God in it; it is not enough to say your prayers, but you must pray your prayers, must pray in praying, as Elijah did (James 5:17). Let us learn to labour fervently in prayer, as Epaphras did, (Col. 4:12) and we shall find that it is the hand of the diligent in this duty that makes rich. God looks not at the length of your prayers, nor shall you be heard for your much speaking, or fine speaking; but God requires truth in the inward part, and it is the prayer of the upright that is his delight. When yon have prayed look upon yourselves as thereby engaged and encouraged, both to serve God and to trust in him; that the comfort and benefit of your morning devotions may not be as the morning cloud which passes away, but as the morning light which shines more and more.

아침(새벽)에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에 대하여-1

아래 글은 18세기 영국의 유명한 주석가인 Matthew Henry의 Directions for Daily Communion With God(날마다 하나님과)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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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만한(omissions, 즉 개인 경건시간을 쉽게 빼먹는 것) 마음 속에 이런 말을 새겨두자. 태만은 죄이며 심판을 받아야 한다. 아침에 성경보고 기도하는 일(아침 경건시간)을 게을리 하고 소홀히 행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전혀 하지 않거나 거짓되게 행한다. 전혀 제사를 드리지 않거나 혹은 드린다 해도 상처난 것, 절름발이거나 병든 것이었다. 기도를 전혀 하지 않거나, 한다 해도 올바르게 하나님께 우러러 드리는 기도가 아니었다. 주님께서는 아침에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우리들의 아버지로서 사랑과 관심을 표하시기에 인색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우리는 아침에 제사도 드리지 않았고, 부끄럽게도 그의 자녀로서의 해야 할 바를 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며, 우리 자신들이 아침 경건시간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유익을 잃어버린 어리석음과 죄를 인하여, 오늘 아침 진정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자. 하나님께서 이러한 열매를 찾으시며 우리의 골방에 오셨으나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셨고 혹 발견하셨더라도 전혀 주님께 기도하고 있지 않거나 올바르게 기도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찮은 것을 핑계로 삼아 아침 경건시간을 제쳐 놓고, 좋은 구실이 없을 때는 양심에 상처를 입게 되고 뼈가 쇠잔하여지며, 점점 더 그에 대해 냉담해지고 점차적으로 멀리 떠나버리게 된다.

Let this word put us in mind of our omissions; for omissions are sins, and must come into judgment: how often has our morning-worship been either neglected or negligently performed. The work has been either not done at all, or done deceitfully; either no sacrifice at all brought, or it has been the torn, and the lame, and the sick; either no prayer, or the prayer not directed aright, nor lifted up. We have had the morning's mercies, God has not been wanting in the compassion and care of a Father for us, yet we have not done the morning's service, but have been shamefully wanting in the duty of children to him.
Let us be truly humbled before God this morning for our sin and folly herein, that we have so often robbed God of the honour, and ourselves of the benefit of our morning-worship. God has come into our closets seeking this fruit, but has found none, or next to none; has hearkened and heard, but either we spake not to him at all, or spake not right. Some trifling thing or other has served for an excuse to put it by once, and when once the good usage has been broken in upon, conscience has been wounded, and its bonds weakened, and we have grown more and more cool to it, and perhaps by degrees it has been quite left off.

나의 뿌리...

(2004년 10월 21일에 쓴 글)

내 성(姓)은 이(李)가이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경주 이가는 우리 나라 이씨의 원 뿌리라는 것이 "이씨연구"라는 책의 주장이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경주 이가이다. 삼성에서 워낙 돈을 많이 써서 대전에 최첨단 시설을 갖춘 경주 이가 족보 보관소가 있다고 하는데 가보지는 않았다.

경주 이씨의 유래를 잠깐 살펴보자면 경주 이씨(慶州 李氏) 시조 謁平(알평)은 진한 6촌장의 1인으로서 다른 5촌장과 함께 박혁거세를 신라 초대 왕으로 추대하고 개국원훈으로 아손의 벼슬을 지내고 유리왕 때 다른 다섯 촌장들과 함께 사성받았는데 알평이 바로 이씨였다. 그 후 세계를 이어 오다가 36세손 진골출신인 거명(소판공)을 중조(1세조)로 하여 대를 이어오고 있다. 본관은 시조의 발상지 양산촌이 경주로 바뀌었으므로 경주로 하였고 경주의 고호가 월성암으로 월성 이씨라고도 한다.

경주 이씨(慶州李氏)의 세계(世系)는 거명의 17세손(고려 말기)에서 8파로 대별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소(大小) 70여 파로 분파(分派)된다. 8대파는 평리공파(評理公派)·이암공파(怡庵公派)·익재공파(益齋公派)·호군공파(護軍公派)· 국당공파(菊堂公派)·부정공파(副正公派)·상서공파(尙書公派)·사인공파(舍人公派) 등이 있으며, 이 밖에 판전공파(判典公派)·월성군공파(月城君公派) ·시랑공파(侍郞公派)·석탄공파(石灘公派)가 그에 버금간다.전통의 명문거족인 경주 이씨는 고려 말에 크게 세력을 떨쳤고, 조선조에 와서도 수많은 공신·학자·명신을 배출하여 명문의 대를 이었다.

나는 8대파 중의 첫번째인 평리공파에 속해있고 41대 (즉 42세)손이다. 이 대수는 중시조인 성암공(고려시대 평리벼슬을 한 평리공파의 중시조)을 1대로 한 대수이기 때문에 시조까지 올라가면 80대에 가까이 된다고 들었다.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딛 3:9)

어렸을 때에는 이 족보에 대한 교육을 많이 받았고, 내 개인적으로도 두꺼운 족보를 들고 많은 연구를 하며 내 뿌리에 대해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거족인 경주 이가의 가문에 속해 있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을 느낀다. 물론 내 육신의 조상에 대한 공경과 그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내 육신의 부모님께 최선을 다해 효도하며 그분을 섬기는 것은 마땅한 도리이지만, 육신의 계보보다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천국백성이라는 것이, 그리고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어 내려온 믿음의 계보에 내가 속해 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 내가 그 믿음의 계보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 그리고 나로 인해서 그 대를 이을 믿음의 후손들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나를 기쁘게 한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를 통해 영적으로 거듭난 믿음의 계보에 속한 자이다.

보물10

(2005년 6월 3일에 쓴 글)

오늘은 좀 특별한 날이었다. 텍사스에만 있는 제도일 것 같은데, 여기서는 만 네살이 되면 유치원 전단계인 Pre-Kindergarten (Pre-K)를 다닌다. 이것으로 시작해서 공교육이 시작되는 셈이다. 대부분의 학교는 Pre-K부터 시작해서 Kinder 그리고 Elementary가 같이 있다.Pre-K는 주로 영어가 Native가 아닌 애들이나 미국인들 중에서 소득이 일정액 이하인 집의 애들이 주로 다닌다.
지난 1년 동안 하연이가 Pre-K를 다니고 얼마전에 졸업했다. 방학을 한 것이다. 그런데 방학이라고 마냥 노는 것이 아니다. 이제 Kinder부터는 본격적이 교육이 시작되기 때문에, non-native speaker인 애들은 방학 때 한 달간 집중적으로 영어 (쓰기와 대화)와 수학 교육을 받는다. 이 때는 그 동안 다니던 학교에서가 아니라 한 학교를 지정해서 그 일대에 있는 같은 처지의 학생들을 모아 놓고 가르친다.
오늘은 그 여름학기 수업의 첫째날이었다. 선생님들 중에선 한국인 선생님 한 분이 있고, 대부분의 경우가 Hispanic이었다. 그것은 이 지역에 Hispanic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연이는 많은 한국 애들이 한국 선생님의 반에 편성된 것과는 달리 멕시코계 미국인 선생님 반으로 편성이 되었다. 그 반에는 멕시코계 아이들이 많고, 한국 애들은 하연이를 포함해 세 명이었다.
오늘 저녁식사를 하는데, 학교 생활에 대해서 물어봤더니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하연이는 대단히 만족해 했다. 너무 재미 있다는 것이다. 안도를 하는 순간 하연이가 말했다.

"오늘 테스트 봤어요."
"그래?"
"근데, 선생님이 내가 Best래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너무 기뻤다. 하연이가 그렇게 훌륭하게 시험을 통과하다니... 너무 장했다.

"전체 학생들에게 물어본 것이었어?"
"아니. 한명씩 불러서 테스트 했어요."
"와, 대단하다! 하연이~~~"

한 참을 기뻐하다 물었다.

"무슨 테스트를 했는데?"
"숫자 세는 거요.."
"뭐?"
"One부터 Nine까지 셌어요..."
"... ... ..."
"내가 제일 잘했대요.."
"(실망)그럼 딴애들은 그것도 못해?"
"예.. 민희(하연이 친구)도 Nine까지 셀수 있어요.."

(사실 하연이는 영어로 100이상을 셀 수 있다... 아마 대부분의 한국애들은 비슷할 껄...)

"그리고, 오늘은 Five까지 쓰는 것 배웠어요.."
"(애써 실망한 표정을 감추며) 그래 대단하다.. :--:"

그 이후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반편성이 잘 된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