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21일에 쓴 글)
내 성(姓)은 이(李)가이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경주 이가는 우리 나라 이씨의 원 뿌리라는 것이 "이씨연구"라는 책의 주장이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경주 이가이다. 삼성에서 워낙 돈을 많이 써서 대전에 최첨단 시설을 갖춘 경주 이가 족보 보관소가 있다고 하는데 가보지는 않았다.
경주 이씨의 유래를 잠깐 살펴보자면 경주 이씨(慶州 李氏) 시조 謁平(알평)은 진한 6촌장의 1인으로서 다른 5촌장과 함께 박혁거세를 신라 초대 왕으로 추대하고 개국원훈으로 아손의 벼슬을 지내고 유리왕 때 다른 다섯 촌장들과 함께 사성받았는데 알평이 바로 이씨였다. 그 후 세계를 이어 오다가 36세손 진골출신인 거명(소판공)을 중조(1세조)로 하여 대를 이어오고 있다. 본관은 시조의 발상지 양산촌이 경주로 바뀌었으므로 경주로 하였고 경주의 고호가 월성암으로 월성 이씨라고도 한다.
경주 이씨(慶州李氏)의 세계(世系)는 거명의 17세손(고려 말기)에서 8파로 대별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소(大小) 70여 파로 분파(分派)된다. 8대파는 평리공파(評理公派)·이암공파(怡庵公派)·익재공파(益齋公派)·호군공파(護軍公派)· 국당공파(菊堂公派)·부정공파(副正公派)·상서공파(尙書公派)·사인공파(舍人公派) 등이 있으며, 이 밖에 판전공파(判典公派)·월성군공파(月城君公派) ·시랑공파(侍郞公派)·석탄공파(石灘公派)가 그에 버금간다.전통의 명문거족인 경주 이씨는 고려 말에 크게 세력을 떨쳤고, 조선조에 와서도 수많은 공신·학자·명신을 배출하여 명문의 대를 이었다.
나는 8대파 중의 첫번째인 평리공파에 속해있고 41대 (즉 42세)손이다. 이 대수는 중시조인 성암공(고려시대 평리벼슬을 한 평리공파의 중시조)을 1대로 한 대수이기 때문에 시조까지 올라가면 80대에 가까이 된다고 들었다.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딛 3:9)
어렸을 때에는 이 족보에 대한 교육을 많이 받았고, 내 개인적으로도 두꺼운 족보를 들고 많은 연구를 하며 내 뿌리에 대해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거족인 경주 이가의 가문에 속해 있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을 느낀다. 물론 내 육신의 조상에 대한 공경과 그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내 육신의 부모님께 최선을 다해 효도하며 그분을 섬기는 것은 마땅한 도리이지만, 육신의 계보보다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천국백성이라는 것이, 그리고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어 내려온 믿음의 계보에 내가 속해 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 내가 그 믿음의 계보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 그리고 나로 인해서 그 대를 이을 믿음의 후손들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나를 기쁘게 한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를 통해 영적으로 거듭난 믿음의 계보에 속한 자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이 글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