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누리는 최고의 길...
복음이 관념이 아니라 믿음이 되며 삶이되는 최고의 길...
복음의 감동을 늘 새롭게하며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만끽할 수 있는 길...
복음이 능력이 됨을 체험하는 길...
십자가로 인해, 십자가의 사랑 하나만으로 인해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는길...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을 나누는 것이다.
복음은 그것을 듣는 자에게도 복이지만, 전하는 자에게 더 큰 복이 된다.
복음을 전할 때마다 내 안에 샘솟는 하나님 사랑을 본다.
복음을 전할 때마다 내 안에서 솟구치는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본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상대를 설득하는 작업이 아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지식을 전하는 작업도 아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변호작업이 결코 아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내가 그 복음으로 얼마나 기뻐하는지를 증거하는 작업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내 삶이 복음에 얼마나 사로잡혀 있는지를 증거하는 작업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 복음으로 내 삶이 얼마나 변했는지,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즐거워하고 감사하는지를 display하는 작업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유일한 진리를 전하는 작업이다. 그 진리로 인해 자유케 되는 유일한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작업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십자가 앞에서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내스스로 얼마나 처절하게 느끼는지를 여과없이 보여주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 흉악한 죄인인 나를 구원하신 십자가, 내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하고 좋은 것인 그 십자가의 사랑을 전달하는 작업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가 복음을 전하는 상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내 가슴에 품음으로 그 열정을 전달하는 작업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구원만이 인생에 있서서 중요한 일임을 일깨우는 작업이다.
복음을 전하면서 나를 그/토/록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한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진정으로 복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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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익한 종... 악한 종...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것 뿐이라." 할찌니라.(눅 17:10)
나는 평소에 늘 입버릇처럼,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설 때, 주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말씀하시며 주님께서 품에 안아 주실 때, 예수님께 "저는 무익한 종일 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평생의 소망이고 삶의 목표라고 떠들고 다녔다.
그런데 요즘...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것은 무익한 종이 아니라 악한 종인 내 모습을 보게 하신다.
하나님 앞에 낯을 들 수가 없이 부끄러운 내 모습...
예수님께서 누가복음에서 말씀하신 "무익한 종"은 사실 엄청난 고백인 것을 알 수 있다. 그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자인 것이다. 스스로 무익하다고 한 것은 그 명령을 명령자이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실행에 옮겼을 뿐 스스로 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인 것이다. 모두 주인이 생각해 내신 것들, 그분이 명령하신 것을 그저 묵묵히 순종했을 뿐이기 때문에, 주님 앞에 "무익한 종"이라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고백은 사실 인간이 하나님께 할 수 있는 최고의 고백인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 외에 주님께 도움이 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해 드릴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 낸 하나님께 "좋은 것"은 결국 하나님께 손해가 되는 것들 뿐이다. 그러니 주님께 "유익한 종"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근 하나님께서는 지난 4년에 가까운 청년부 사역을 돌아보게 하셨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께 자신있게 들고 나아갈 수 있다고 여겨지는 열매들을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게 하시고 계신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열매들... 하나님께 바쳐드리며 자랑스러워 함 직하게 보이는 그 열매들이 모두 좋은 열매들은 아니라는 사실이 나에게는 큰 충격이다. 어떤 것들은 썩어 있고, 어떤 것들은 상해 있고, 어떤 것들은 온전한 것들이다. 온전한 것들은 모두 주님께서 친히 맺으신 열매들이다.
그리고 나머지들은 내가 "주님을 위해" 만든 것들이었고, 주님께 "자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내심 생각하는 것들이다. 그 열매들에는 내 인간적인 열정과 애정이 첨가된 것들이다. 그 어느 것들보다도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그것들의 대부분은 겉으로는 정말 온전하여 먹음직스러운 열매들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썩어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 주신 것은 내가 자랑할 만한 열매들이 얼마나 썩어있고 상해 있는지, 하나님께서 도저히 받으실 수 없는 열매들 뿐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겉모양만 보고 하나님께 으쓱하며 자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았다. 정말 낯이 뜨뜻하여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친히 맺으신 그 온전한 열매들조차 종인 나를 통해서, 혹은 나를 사용하셔서 맺은 것이 아니라, 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기어이 맺으신 것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 알게 되었다.
나는 무익한 종이 아니라 악한 종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하나님의 나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여러가지 모양으로 장애물 역할은 한 그런 악한 종...
최근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던 매우 중대한 기도제목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런 방식으로 답을 하셨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그 진실을 보면서 어젯밤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안타까움과 아픔과 부끄러움이 나로하여금 심한 수치를 느끼게 했고 마음을 정말 아프게 했다.
하지만 악한 종의 모습을 지금이나마 보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마지막 날... 그 심판의 날...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그날...
그날 만큼은 진정으로 주님께 "무익한 종"이라는 고백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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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에 늘 입버릇처럼,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설 때, 주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말씀하시며 주님께서 품에 안아 주실 때, 예수님께 "저는 무익한 종일 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평생의 소망이고 삶의 목표라고 떠들고 다녔다.
그런데 요즘...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것은 무익한 종이 아니라 악한 종인 내 모습을 보게 하신다.
하나님 앞에 낯을 들 수가 없이 부끄러운 내 모습...
예수님께서 누가복음에서 말씀하신 "무익한 종"은 사실 엄청난 고백인 것을 알 수 있다. 그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자인 것이다. 스스로 무익하다고 한 것은 그 명령을 명령자이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실행에 옮겼을 뿐 스스로 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인 것이다. 모두 주인이 생각해 내신 것들, 그분이 명령하신 것을 그저 묵묵히 순종했을 뿐이기 때문에, 주님 앞에 "무익한 종"이라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고백은 사실 인간이 하나님께 할 수 있는 최고의 고백인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 외에 주님께 도움이 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해 드릴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 낸 하나님께 "좋은 것"은 결국 하나님께 손해가 되는 것들 뿐이다. 그러니 주님께 "유익한 종"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근 하나님께서는 지난 4년에 가까운 청년부 사역을 돌아보게 하셨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께 자신있게 들고 나아갈 수 있다고 여겨지는 열매들을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게 하시고 계신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열매들... 하나님께 바쳐드리며 자랑스러워 함 직하게 보이는 그 열매들이 모두 좋은 열매들은 아니라는 사실이 나에게는 큰 충격이다. 어떤 것들은 썩어 있고, 어떤 것들은 상해 있고, 어떤 것들은 온전한 것들이다. 온전한 것들은 모두 주님께서 친히 맺으신 열매들이다.
그리고 나머지들은 내가 "주님을 위해" 만든 것들이었고, 주님께 "자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내심 생각하는 것들이다. 그 열매들에는 내 인간적인 열정과 애정이 첨가된 것들이다. 그 어느 것들보다도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그것들의 대부분은 겉으로는 정말 온전하여 먹음직스러운 열매들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썩어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 주신 것은 내가 자랑할 만한 열매들이 얼마나 썩어있고 상해 있는지, 하나님께서 도저히 받으실 수 없는 열매들 뿐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겉모양만 보고 하나님께 으쓱하며 자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았다. 정말 낯이 뜨뜻하여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친히 맺으신 그 온전한 열매들조차 종인 나를 통해서, 혹은 나를 사용하셔서 맺은 것이 아니라, 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기어이 맺으신 것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 알게 되었다.
나는 무익한 종이 아니라 악한 종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하나님의 나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여러가지 모양으로 장애물 역할은 한 그런 악한 종...
최근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던 매우 중대한 기도제목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런 방식으로 답을 하셨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그 진실을 보면서 어젯밤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안타까움과 아픔과 부끄러움이 나로하여금 심한 수치를 느끼게 했고 마음을 정말 아프게 했다.
하지만 악한 종의 모습을 지금이나마 보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마지막 날... 그 심판의 날...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그날...
그날 만큼은 진정으로 주님께 "무익한 종"이라는 고백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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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7:00
아버지를 기억하며...
지금으로부터 꼭 3년 전인 2007년 7월 7일 (한국시간으로 7월 8일) 저녁 7시 30분경...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청년부에서 설교를 하고 있었다.
그 2주 전에 한국을 떠나온 터였다.
약 한 달 동안 폐암으로 치료를 받으시는 아버지와 함께 하며, 병원에 같이 다니고, 입원하셨을 때도 늘 같이 있었다. 너무 정정하셨고, 전보다 약간 야위셨다는 느낌 외에는 암환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그런 상태에 계셨다.
앞으로 1년 밖에는 더 사실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머나먼 미국으로 떠나 오면서, 혹시나 생전에 마지막 인사가 되지 않을까하는 불안한 마음에,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께 큰절로 작별인사를 드렸다. 당신 자신의 건강 상태가 그렇게까지 나쁜 것을 알지 못하셨던 아버지께서는 난데없는 셋째아들의 큰절에 흠칫 놀라셨다. 그런 아버지를 더 가슴아프게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아버지 앞에서 약간의 눈물을 보이고 말았고, 뒤돌아 떠나 오면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사실상 그것이 내 생애에 마지막 작별이었던 것이다. 정말... 그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줄은...
미국으로 떠나기 바로 직전에 아버지께서 기침을 하시다가 피를 토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의사의 말이 앞으로 일 년이라고 했으니 갑자기 나빠지시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고 아내와 아이들은 한국에 더 머물게 하고 혼자서 미국으로 향했다.
내가 미국에 온 직후, 아버지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하셨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셨다. 그리고 나서 바로 얼마 후인 토요일 오전,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하고 비행기편을 알아 봤지만, 주일 새벽에 떠나는 것 외에는 더 일찍 떠나는 것을 찾을 수가 없어서, 일단 청년부 토요예배는 정상적으로 드리고 그 다음날 새벽에 떠나기로 했다.
예배 시작 전... 당시 목자로 있던 정봉수 형제에게 교회로 전화가 온다면 꼭 받아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기도하며 예배를 시작했다.
말씀 도중 교회 사무실 전화벨이 울렸다. 봉수형제가 전화를 받으려고 뛰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의 임종을 알리는 전화일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고, 마음은 한 없이 슬펐지만, 전하던 말씀은 그대로 모두 전했다.
예배가 모두 마치고, 봉수형제가 다가왔다. 그리고 한국으로부터 아버지께서 임종하셨다는 연락을 받았음을 알려 주었다.
다음날 새벽...
비행기를 타고 가는 내내 아버지에 대해서, 그리고 죽음과 삶에 대해서 생각했다.
한국에 도착해서 바로 고속전철을 타고 광주로 내려가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영정--내가 떠나기 직전에 가족들과 함께 가서 찍은 그 사진, 장례식용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도 그것을 잘 알지 못하셨던 아버지를 보면서 가슴 아파 밖에 나가서 울었던 그 사진--앞에 무릎꿇고 통곡했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자의 아픔에 내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
평생 단 5분도 같이 앉아 다정한 말을 주고 받은 적이 없었던 아버지...
집안의 독재자, 고독자로 늘 혼자이셨던 아버지...
Next의 "아버지와 나"의 가사처럼, 아들과 다정하게 대화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셨던 전통적인 아버지...
평생 정이 없을 것 같았던 그 아버지의 임종이 나에게 그렇게 큰 충격으로, 그리고 상실로 다가오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역시 아버지는 아버지이셨다...
다행히 임종하시기 6개월 전에 그토록 싫어하시던 교회에 참석하시고, 세례를 받으시고, 믿음을 고백하셨다. 아버지 살아 생전에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내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그렇게 말리시고, 싫어하셨던 그 아버지와 함께 동생 교회에 앉아서 예배드린 장면이다. 나로서는 평생의 기도제목이요, 평생의 소원이었는데, 그 소원이 아버지께서 임종하시기 얼마 전에 이루어졌다. 기도하는 순서에도 아버지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고자 눈을 감을 수가 없었고, 찬송을 부르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주님께서 이루어주신 내 기도의 응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
가끔씩 하늘을 보며 아버지를 생각한다.
믿음의 고백이 분명하셨다면, 주님의 품에 안기셨을 그 아버지...
살아계실 때 보다도 더 가까이 느껴지고, 더 친숙해지신 아버지...
천국에서 반드시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는 아버지...
옛적 우리 선조들은 부친상을 당했을 때, 부친의 무덤가에 초막을 짓고 3년동안 무덤을 지키며 슬퍼하며 마지막으로 봉양하는 것을 자식의 도리로 삼았다. 현대를 사는 지금... 아버지의 무덤가에서 3년상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지난 3년 동안 동일한 마음으로 싸이 미니홈피 대문에 걸어 놓았던 아버지의 임종을 기억하는 글을 이제 내리며,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가슴에 담는다.
아버지께 생전에는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고백... 3년 상을 맞이한 오늘... 내 가슴에서 울린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청년부에서 설교를 하고 있었다.
그 2주 전에 한국을 떠나온 터였다.
약 한 달 동안 폐암으로 치료를 받으시는 아버지와 함께 하며, 병원에 같이 다니고, 입원하셨을 때도 늘 같이 있었다. 너무 정정하셨고, 전보다 약간 야위셨다는 느낌 외에는 암환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그런 상태에 계셨다.
앞으로 1년 밖에는 더 사실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머나먼 미국으로 떠나 오면서, 혹시나 생전에 마지막 인사가 되지 않을까하는 불안한 마음에,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께 큰절로 작별인사를 드렸다. 당신 자신의 건강 상태가 그렇게까지 나쁜 것을 알지 못하셨던 아버지께서는 난데없는 셋째아들의 큰절에 흠칫 놀라셨다. 그런 아버지를 더 가슴아프게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아버지 앞에서 약간의 눈물을 보이고 말았고, 뒤돌아 떠나 오면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사실상 그것이 내 생애에 마지막 작별이었던 것이다. 정말... 그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줄은...
미국으로 떠나기 바로 직전에 아버지께서 기침을 하시다가 피를 토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의사의 말이 앞으로 일 년이라고 했으니 갑자기 나빠지시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고 아내와 아이들은 한국에 더 머물게 하고 혼자서 미국으로 향했다.
내가 미국에 온 직후, 아버지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하셨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셨다. 그리고 나서 바로 얼마 후인 토요일 오전,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하고 비행기편을 알아 봤지만, 주일 새벽에 떠나는 것 외에는 더 일찍 떠나는 것을 찾을 수가 없어서, 일단 청년부 토요예배는 정상적으로 드리고 그 다음날 새벽에 떠나기로 했다.
예배 시작 전... 당시 목자로 있던 정봉수 형제에게 교회로 전화가 온다면 꼭 받아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기도하며 예배를 시작했다.
말씀 도중 교회 사무실 전화벨이 울렸다. 봉수형제가 전화를 받으려고 뛰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의 임종을 알리는 전화일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고, 마음은 한 없이 슬펐지만, 전하던 말씀은 그대로 모두 전했다.
예배가 모두 마치고, 봉수형제가 다가왔다. 그리고 한국으로부터 아버지께서 임종하셨다는 연락을 받았음을 알려 주었다.
다음날 새벽...
비행기를 타고 가는 내내 아버지에 대해서, 그리고 죽음과 삶에 대해서 생각했다.
한국에 도착해서 바로 고속전철을 타고 광주로 내려가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영정--내가 떠나기 직전에 가족들과 함께 가서 찍은 그 사진, 장례식용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도 그것을 잘 알지 못하셨던 아버지를 보면서 가슴 아파 밖에 나가서 울었던 그 사진--앞에 무릎꿇고 통곡했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자의 아픔에 내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
평생 단 5분도 같이 앉아 다정한 말을 주고 받은 적이 없었던 아버지...
집안의 독재자, 고독자로 늘 혼자이셨던 아버지...
Next의 "아버지와 나"의 가사처럼, 아들과 다정하게 대화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셨던 전통적인 아버지...
평생 정이 없을 것 같았던 그 아버지의 임종이 나에게 그렇게 큰 충격으로, 그리고 상실로 다가오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역시 아버지는 아버지이셨다...
다행히 임종하시기 6개월 전에 그토록 싫어하시던 교회에 참석하시고, 세례를 받으시고, 믿음을 고백하셨다. 아버지 살아 생전에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내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그렇게 말리시고, 싫어하셨던 그 아버지와 함께 동생 교회에 앉아서 예배드린 장면이다. 나로서는 평생의 기도제목이요, 평생의 소원이었는데, 그 소원이 아버지께서 임종하시기 얼마 전에 이루어졌다. 기도하는 순서에도 아버지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고자 눈을 감을 수가 없었고, 찬송을 부르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주님께서 이루어주신 내 기도의 응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
가끔씩 하늘을 보며 아버지를 생각한다.
믿음의 고백이 분명하셨다면, 주님의 품에 안기셨을 그 아버지...
살아계실 때 보다도 더 가까이 느껴지고, 더 친숙해지신 아버지...
천국에서 반드시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는 아버지...
옛적 우리 선조들은 부친상을 당했을 때, 부친의 무덤가에 초막을 짓고 3년동안 무덤을 지키며 슬퍼하며 마지막으로 봉양하는 것을 자식의 도리로 삼았다. 현대를 사는 지금... 아버지의 무덤가에서 3년상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지난 3년 동안 동일한 마음으로 싸이 미니홈피 대문에 걸어 놓았던 아버지의 임종을 기억하는 글을 이제 내리며,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가슴에 담는다.
아버지께 생전에는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고백... 3년 상을 맞이한 오늘... 내 가슴에서 울린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Posted at
오전 3:22:00
무제...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대로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롭도소이다.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인하여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스 9:5-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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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at
오후 9:20:00
예수님의 거룩...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마 9:10-12)
거룩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
죄가 없으시고 완전하신 예수님...
거룩 그 자체이신 예수님...
그분이 죄인이라 손가락질 받고 있던 마태에게 다가가셨고, 그를 제자로 부르셨고, 그의 집에서 식사를 하셨다.
죄인의 집에서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소문들 듣고, 주변에 살던 "죄인" "불가촉천민" "더러운 자들"이라고 낙인이 찍혔던 자들이 우루루 몰려 왔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는 상관 없이 사는 자들...
세상적 기준으로 봤을 때도 용납이 안되는 인생을 사는 사회의 쓰레기 같은 자들...
목숨이 파리 목숨과 같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들...
멸시받는 자들...
그런 자들이 예수님께 몰려 왔고, 예수께서는 한 사람도 물리치지 않고, 그들과 같이 식사를 하신다. 그들과 코이노니아를 가지시는 것이다. 그들의 친구가 되는 것이고,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신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의 거룩이다.
그분의 거룩함은 죄를 미워하며, 죄를 거부하며, 죄와 끝까지 싸우며, 결코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그런 거룩함이지만, 죄인들에 대해서는 용납하며 너그러우며, 마음으로 그들을 받아 들이는 사랑의 거룩함인 것이다.
예수님의 거룩함은 그 거룩함을 잃어버린 자들로 하여금, 거북하여 피하고 싶게 만드는 거룩함이 아니라, 그 거룩에로 이끌리게 만들고, 거룩을 닮고 싶게 만들고, 그래서 거룩함을 소망하게 만드는 그런 거룩함이다.
예수님의 그 거룩함에 이끌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감행한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죄인들인 것이다.
당시 거룩함의 대표주자로 꼽혔던 바리새인들...
그들의 거룩함은 예수님과는 정반대였다. 속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온갖 죄를 지으며 죄와 함께 뒹굴며 살아가는 그들이었지만, 겉으로는 종교의 허위로 전락한 거룩함을 과시하며 살았다.
그들의 거룩함은 죄는 미워하지 않되, 죄인을 미워하는 거룩함이었다.
그들의 거룩함은 종교적으로 자신들보다 못해보이는 자들에 대해서 한 없은 비판과 멸시를 퍼부어 댐으로, 자신들에게 결코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선을 긋는 거룩함이었다.
그들의 거룩은 결코 그 거룩성을 전염시키지 못하는 거룩이었고, 본인과 다른 사람들을 파멸로 이끄는 거룩이었다.
한 마디로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사랑이 없었던 것이다. 죄인들로 넘쳐나는 이 세상을 보시며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마 9:36)라고 가슴 아파 하시는 예수님의 긍휼이 없었던 것이다.
거룩... 하지만 그 거룩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거룩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에 바탕을 둬야 한다.
사랑으로 한 영혼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안타까움과 가슴에 품음으로 하나님의 거룩을 전염시켜, 그 거룩을 세상에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거룩은 쉽게 파멸적인 거룩, 껍데기만 남은 거룩이 되어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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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
죄가 없으시고 완전하신 예수님...
거룩 그 자체이신 예수님...
그분이 죄인이라 손가락질 받고 있던 마태에게 다가가셨고, 그를 제자로 부르셨고, 그의 집에서 식사를 하셨다.
죄인의 집에서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소문들 듣고, 주변에 살던 "죄인" "불가촉천민" "더러운 자들"이라고 낙인이 찍혔던 자들이 우루루 몰려 왔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는 상관 없이 사는 자들...
세상적 기준으로 봤을 때도 용납이 안되는 인생을 사는 사회의 쓰레기 같은 자들...
목숨이 파리 목숨과 같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들...
멸시받는 자들...
그런 자들이 예수님께 몰려 왔고, 예수께서는 한 사람도 물리치지 않고, 그들과 같이 식사를 하신다. 그들과 코이노니아를 가지시는 것이다. 그들의 친구가 되는 것이고,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신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의 거룩이다.
그분의 거룩함은 죄를 미워하며, 죄를 거부하며, 죄와 끝까지 싸우며, 결코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그런 거룩함이지만, 죄인들에 대해서는 용납하며 너그러우며, 마음으로 그들을 받아 들이는 사랑의 거룩함인 것이다.
예수님의 거룩함은 그 거룩함을 잃어버린 자들로 하여금, 거북하여 피하고 싶게 만드는 거룩함이 아니라, 그 거룩에로 이끌리게 만들고, 거룩을 닮고 싶게 만들고, 그래서 거룩함을 소망하게 만드는 그런 거룩함이다.
예수님의 그 거룩함에 이끌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감행한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죄인들인 것이다.
당시 거룩함의 대표주자로 꼽혔던 바리새인들...
그들의 거룩함은 예수님과는 정반대였다. 속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온갖 죄를 지으며 죄와 함께 뒹굴며 살아가는 그들이었지만, 겉으로는 종교의 허위로 전락한 거룩함을 과시하며 살았다.
그들의 거룩함은 죄는 미워하지 않되, 죄인을 미워하는 거룩함이었다.
그들의 거룩함은 종교적으로 자신들보다 못해보이는 자들에 대해서 한 없은 비판과 멸시를 퍼부어 댐으로, 자신들에게 결코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선을 긋는 거룩함이었다.
그들의 거룩은 결코 그 거룩성을 전염시키지 못하는 거룩이었고, 본인과 다른 사람들을 파멸로 이끄는 거룩이었다.
한 마디로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사랑이 없었던 것이다. 죄인들로 넘쳐나는 이 세상을 보시며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마 9:36)라고 가슴 아파 하시는 예수님의 긍휼이 없었던 것이다.
거룩... 하지만 그 거룩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거룩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에 바탕을 둬야 한다.
사랑으로 한 영혼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안타까움과 가슴에 품음으로 하나님의 거룩을 전염시켜, 그 거룩을 세상에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거룩은 쉽게 파멸적인 거룩, 껍데기만 남은 거룩이 되어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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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05:00
그리스도의 피, 근신, 회개...
어제 설교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게 되었다. 히브리서 기자가 그토록 알려주고 싶어했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제사... 그리고 그 결정체인 그분의 보혈...
오늘 아침 말씀 묵상을 시작할 때, 공교롭게도 묵상 찬송이 찬송가 184장이었고, 아침에 학교에 오는 차에서 우연히 들려온 영어 찬양도 역시 똑 같이 184장이었다.
찬송가 184장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다시 성케 하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를 정케 하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사죄하는 증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의 죄속하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는 공로 없도다 예수의 피밖에 없네
평안함과 소망은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의 의는 이것뿐 예수의 피밖에 없네
영원토록 내할말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의 찬미 제목은 예수의 피밖에 없네
[후렴] 예수의 흘린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밖에 없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에 명하시는 것을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근신하며, 절제하며, 철저한 회개의 기도를 드리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 주는 근신의 기간이다... 나를 즐거워하는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만남 외에 어떤 만남이나 모든 연락을 끊고, 다른 어떤 일체의 행동을 하지 않고, 주님 앞에 단독으로 서는 가운데, 그분께 무릎꿇고, 지존자 되신 그분과 그분 앞에 단독자로 선 나의 모습을 보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로 스스로에게 선포했다.
그리고 내 인생에 있어 너무나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하는 상황에서 주님 앞에 정결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가운데, 내 인생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잡음없이 선명하게 듣기로 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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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말씀 묵상을 시작할 때, 공교롭게도 묵상 찬송이 찬송가 184장이었고, 아침에 학교에 오는 차에서 우연히 들려온 영어 찬양도 역시 똑 같이 184장이었다.
찬송가 184장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다시 성케 하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를 정케 하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사죄하는 증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의 죄속하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는 공로 없도다 예수의 피밖에 없네
평안함과 소망은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의 의는 이것뿐 예수의 피밖에 없네
영원토록 내할말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의 찬미 제목은 예수의 피밖에 없네
[후렴] 예수의 흘린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밖에 없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에 명하시는 것을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근신하며, 절제하며, 철저한 회개의 기도를 드리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 주는 근신의 기간이다... 나를 즐거워하는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만남 외에 어떤 만남이나 모든 연락을 끊고, 다른 어떤 일체의 행동을 하지 않고, 주님 앞에 단독으로 서는 가운데, 그분께 무릎꿇고, 지존자 되신 그분과 그분 앞에 단독자로 선 나의 모습을 보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로 스스로에게 선포했다.
그리고 내 인생에 있어 너무나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하는 상황에서 주님 앞에 정결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가운데, 내 인생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잡음없이 선명하게 듣기로 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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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5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