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아픔, 아픔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종교)은,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야고보서 1장 27절)


오늘 아침 묵상 본문.


진정으로 경건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진정한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 삶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 그리고 세상적 가치관으로부터 자신을 정결하게 지키는 분투가 공존해야 한다.


소위 믿는 자가 사회정의와 분배의 문제에 무관심하고 개인 차원의 "믿음생활"에 머문다면, 그것은 기형적인 믿음이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해야할 것을 져버리는 것이다.


내가 작금의 사회를 보면서 가슴이 이토록 아픈 것은, 그리고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 기도하면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내 개인의 이익이나 미래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 그분의 최대 관심사인 "고아와 과부"들이 억압당하고 있는 그 현실이 하나님의 가슴을 얼마나 아프시게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내 아버지, 내 하나님의 그 아픔이 내 마음으로 전달된다. 그것이 나를 너무 고통스럽게 한다.

이런 악함을 그냥 지켜보고 있기만 한다면, 나는 비겁자이고, 죄악을 저지르는 것일 터이다. 세상의 방법은 아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해야할 역할, 행동을 찾아야 할 때이다.

정말... 아프다.

.

[펌]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유기성 목사님

유기성 목사님께서 페이스북에 남기신 글입니다. 요즘 그분의 묵상을 보면 깊이가 날로 더해가고 더 존경스러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반의 반의 반의 반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1. 어느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자신의 시험 실패담을 이야기하셨습니다.
대학 다닐 때, 전공 시험을 치렀는데, 시험지를 받아보니 논술형 문제 하나였답니다.
열심히 답안을 작성하였는데, 석장을 빼곡히 썼답니다.
시험을 보고 나오면서 ‘혹시 수석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했을 정도로 답안을 잘 썼는데, 낙제였습니다.

2. 교수님을 찾아가서 왜 낙제냐고 항의를 했더니, “네가 교수해라!” 하시면서 “시험 문제에 대한 대답을 써야지 네가 할 말만 잔뜩 썼지 않았느냐?” 하시며 야단을 치셨답니다.
시험지를 받아들었으나 질문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서 ‘정성이라도 다하자’ 하는 마음으로 아는 것을 다 썼답니다. 그리고 밑줄도 치고 중간 중간에 꽃도 그려 넣고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답안지를 작성하였답니다.
그러나 교수님이 제시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기에 낙제라는 것입니다.

3. 그러면서 목사님은 ‘우리가 인생을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닙니까?’ 하며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열심히 살지만 그렇게 살았다고 합격한 인생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목적대로 살아야 잘 사는 것입니다.
그러러면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고 인생의 목적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4. 제 목회의 삶을 돌아보면서 가장 반성이 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목회를 열심히는 했습니다. 저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파악했는지에 대하여는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5. 행 16장을 보면 사도 바울의 아시아 전도를 성령 하나님이 막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전도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러나 전도가 아무리 중요해도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하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을 깨우쳐 줍니다.

6. 사도 바울은 모든 길이 막힌 것 같은 때에 성령의 인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열린 문이 비로소 보였습니다. 동서남북이 다 막혔는데, 바다를 점프하여 유럽에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7. 사도 바울의 위대함은 성령께서 그 길을 막으실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보통은 성령께서도 못말립니다. 한다면 하고 안한다면 안합니다.
열심히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마음대로 목회하고 선교하고 사역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열심 보다 중요합니다.

8. 어느 집사님이 목회자로 부름을 느끼지만 주님의 확인이 없다고 상담을 왔습니다.
‘주님이 부르셨다면 왜 주님의 확인이 없을까?’ 생각하면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어떤 확인을 기대하십니까? 신대원에 갈 길이 열리지 않습니까? 아니면 고생할 걱정 때문입니까?”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하더니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는 것이었습니다.

9. 대부분 하나님의 확인을 구하는 이유는 고생하지 않을 길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가라” 하셨다는 확인을 그렇게 얻으려는 이유는 그러다가 어려워지면, 실패라고 여겨지면 하나님이 책임지라는 것입니다.

10.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분별받는 일에 용감해야 합니다.
합리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숨기지 말아야 합니다.

11.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기가 힘들다고 말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으셔서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뜻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12. 빌리그래함 목사에게 평생 세 번의 큰 유혹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큰 대학교의 총장으로 와달라는 청빙이었고, 한번은 상원의원에 출마하라는 제안이었고 한번은 부통령으로 출마하라는 제안이었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자기 영광을 위한 욕심임을 알고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름은 전도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빌리그래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13. 정말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데도 해결안되는 문제가 있습니까?
‘고생도 좋습니다. 죽음도 좋습니다’ 하면 이미 하나님의 뜻이 확실한 일이 많습니다.

14.우리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자’임을 분명히 하고,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은 나의 왕십니다” 고백하면 누구나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