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숙명여대 사학과 교수님으로 재직하셨던 존경하는 이만열 교수님께서 페이스북에 올리신 글을 허락 없이 무단으로 복사한 것입니다. 교수님의 말씀에 100% 공감하며 한국의 대학사회에 대해 심히 걱정이 많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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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6,대학 평가에 대한 단상]: 최근 몇 몇 후배 교수들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다. 대화를 나눌 때마다 대학의 변화에 대해서 실감하게 되었다. 그 변화는 우리의 재직 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어서 놀랍기도 하고 한편 걱정스럽기도 했다. 10여년 전 은퇴할 때만 해도 변화를 어렴풋이 감지했지만, 이렇게 급격하게 변화될 줄은 미처 몰랐다.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중세 이래 지속되어 온 전통적인 대학이념이 유지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전통적인 대학상이 존속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마저 갖게 되었다.
대학이 변하고 있다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시대변화에 따라 대학도 변화되어야 한다. 가끔 나의 걱정이 시대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편견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대학을 두고 걱정하는 내 생각이 얼마나 객관적인가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사람 저사람으로부터 거의 공통되는 우려를 들었을 때, 그런 걱정이 단순히 어떤 개인의 생각이 아니고 대학사회가 공동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그들이 대학을 두고 걱정하는 것 중 대학 평가 하나만 언급하겠다. 교육부에서 행해 오던 대학 평가는 최근에는 모 언론매체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들었다. 교육부와 언론기관은 나름대로 전문가에 의해 다듬어진 평가시스템을 가지고 전국의 대학을 평가할 것으로 안다. 교육부는 대학평가에 따라 막대한 인센티브와 제재를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대학은 교육부의 이런 전횡에 대해서 주눅이 들어 있고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평가는 교육부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모 언론기관에서도 최근 수년간 그 평가의 노하우를 축적하고 나름대로 그 평가기준을 개선시켜 가면서 지속적으로 계속해 왔다. 직접적인 인센티브나 제재는 없지만 언론의 영향력 또한 교육부 못지않다. 대학들은 교육부나 언론기관의 평가에 크게 신경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 대학에 진학할 학생수가 축소됨에 따라 대학구조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고 보니, 이런 평가는 대학의 생존문제와도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평가의 기준 가운데는 졸업생들의 취업률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취업률을 올리고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그렇게 되다보니 연구와 교수에 힘을 쏟아야 할 교수들이 졸업생들의 취업에 더 신경을 쓰면서 그 방면에 노력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한편 이해됨직 하면서도 한편 서글프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이 전문직업학교로서 기능해야 할 때가 머지 않았고 아울러 지성인으로서의 대학 교수가 거간꾼쯤으로 전락되는 현상이 오지 않을까 두렵다.
졸업생들의 취직의 문제는 곧 연구와 교수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몇 몇 재벌이 인수한 대학에서 사회수요에 따라 학과와 강의를 구조조정한다는 것은 이미 상식화되어 있다. 실용적이지 않은 학문이 퇴출되고 그런 학과는 폐쇄당한다. 그 희생의 대상은 결국 인문학으로 거의 귀결된다. 철학과가 문을 닫고 철학 강의가 사라진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인 철학을 퇴출시키는 형국이라면, 대학이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 세계관과 상상력 등과 관련되어 있는 인문학이 봉쇄당하게 된다면, 실용적인 분야가 양적으로 팽창된다고 해서 질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될 수 없다. 사립대학과 함께 국공립대학에서도 일어나는 이런 현상마저 좌시해야 할까. 최근 어느 기업에서 실용적인 분야를 담당한 부서에 그 분야와는 거의 관련성이 없는 인문학 전공자를 선출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깊은 속은 알 수 없지만 세계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나 인문학적 상상력이 없이는 실용적인 분야도 병진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대학 평가는 곧 교수 개개인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 교수에게 주어진 임무는 결국 연구와 교수(가르침)일 것이다. 가르치는 문제는 학생들에 의한 강의평가 등으로도 이뤄지기 때문에 여기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문제는 연구다. 대학이 연구의 산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오늘날 시행되고 있는 연구평가시스템으로써 대학 연구의 질을 어느 정도 담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외국 저널에 게재하여 세계학계의 평가를 중요시한다고 하지만, 국내의 경우는 대부분 평가의 일차적인 기준을 연구의 양에 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논문을 양산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양이 질을 유도할 수 있다는 말도 있지만, 이렇게 다작의 연구가 평가에 그대로 흡수되고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논문의 양산에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연계는 그렇다 치더라도, 인문 사회계에서 1년에 10편 이상의 논문을 쓴 경우가 있다니 이것은 한마디로 놀랍다. 이게 한국 대학의 현실이다.
논문의 양산에는 결국 피상적인 리서치를 통해 통계수치에 의한 간단한 현장 조사 같은 것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그런 간단한 조사에 의한 리서치가 논문으로 좋은 구실을 할 경우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연구 분위기가 대학사회를 휩쓸게 되면 이론적인 연구는 거의 어렵게 될 것이다. 수십편의 자료를 이용하여 숙성시킨 논문은, 논문의 양으로 교수의 연구업적을 평가하는 분위기하에서는 쉽게 자라잡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사회의 병리를 찾아내고 그 근원적 치유에 연구시간을 쏟는 그런 심원한 연구가 쉽게 자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연구평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온당한가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양적 기준으로 연구를 평가한다면 일생을 그 한권의 저술을 위해 고민하는 교수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대학이 그렇게 된다면, 우리 사회의 지도이념을 고민하는 아카데미즘은 사라질 것이 뻔하고, 대학의 존재이유도 다시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재래할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대학에서는 이런 문제를 지양하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에서 뿌리는 막대한 지원금은 이렇게 대학의 자율성을 마비시키고 건전한 상식마저 폐쇄시키려 하고 있다. 그 많은 프로젝트로 대학의 자구적 발전을 위한 연구에 투자하라. 지성인들 사이에서는 가장 먼저 퇴출시켜야 할 정부의 부처로 교육부를 지목해 왔는데, 대학이 그 평가에 목을 매고 있다면 대학의 질적인 발전은 더 이상 기할 수 없을 것이다. 또 대학이 가장 시장친화적인 언론사에서 하는 평가에 눈치를 본다면 그 또한 대학을 시장논리에 내 맡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학이 교육부와 언론사의 평가를 벗어나야 할 이유는 이 밖에도 있을 것이다.
양산체제로 연구평가를 전환시킨 결과, 연구에 긴 시간을 투자한 연구가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또한, 대학의 학문적 고민을 통해 생산된 지성․사상이 치유해야 할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단기적이고 단견적인 처방 밖에는 내놓을 수 없다. 양산체제 하에서 생산된 연구가 강의의 주조를 이루게 된다면, 거기서 배우는 학생들의 지성과 인격이 어떻게 될 것인지 불문이가지(不問而可知)다. 단견적이고 경쟁적이며 이기적인 인간으로 배양할 것이 틀림없다. 얼마전 후배 교수들에게 대들듯이 말했다. 오늘날 학생들이 스펙쌓기에 바쁘고 찰나적인 인간으로 화하고 정의감이 무디어지는 것은 바로 대학 강단의 책임이 크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MB정권 기간, 저 거짓되고 사악한 행태를 보면서도 한번도 제대로 항거하지 못한 그런 대학생들을 양산한 것은 바로 이런 대학의 존재 행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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