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루 종일 논문을 썼다. 그래 봐야 얼마 쓰지 못하긴 했지만, 그래도 논문에 약간의 진척이 있었다.
나는 논문을 쓰는데, 나만의 방법을 사용한다. 글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 글자를 최대한 작게하고, 줄간격을 다닥다닥 붙인 후 한 페이지를 두 단으로 나뉘게 해서 한 페이지에 최대한 많은 글이 들어가도록 해서 글을 쓴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표준적인 틀이 있지만, 그 틀을 사용하다보면 논문이 한눈에 들어 오지 않아서,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다니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오늘 불현듯 생각이 떠올라 계산을 해 보니, 내가 쓰는 포맷으로 할 때, 30페이지에서 50페이지를 작성하면 박사 논문이 완성되는 것으로 계산이 되었다. 학교의 박사논문 포맷으로 할 때, 지금 한 페이지가 약 8-9페이지 정도가 되기 때문이다. 30페이지를 작성하면 240-270페이지가 되는 것이고 50페이지를 작성하면 400-450페이지 정도가 된다. 우리 과에서는 졸업생들이 주로 400페이지 정도를 작성하는 것을 생각할 때, 나도 그 정도로 하고 싶지만, 최대한 빨리 졸업해야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250페이지 선에서 끝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게 하면, 졸업하고 나서 책으로 출판할 때까지 훨씬 더 많은 작업이 필요하고 고생하겠지만, 그래도 졸업을 늦추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생각된다.
250페이지를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앞이 막막해 지고, 언제나 끝을 보려나하는 생각에 힘들어지는데, 지금 내가 쓰고 있는 포맷으로 30페이지만 넘기면 된다고 생각하니,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거나 저거나 사실 같은데, 느낌이 다르다. 조삼모사의 착각인줄은 알지만, 마음 상태가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다.
30 장만 쓰면 되는데...
사실 지금 쓰는 글의 포맷으로 볼 때, 두 장이 한 수업의 term paper에 맞먹는다. 그렇다면, term paper를 15개 쓰는 것과 맞먹고, 그것은 5학기의 term paper의 분량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장난이 아닌 분량이고, 또 그 15개의 term paper를 하나의 논지 하에서 일관되게 작성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더 어려워진다. 그리고... 오늘은 글이 특이하게 매우 잘 써지는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 페이지를 채우는데 그쳤다.
하지만, 30페이지만 생각하련다. letter size 30 장만 채우면 졸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그 페이지들을 채워 주실 것을 기도하며 열심히 써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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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목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1-15)
선한 목자... 우리 주님... 그분은 양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며 그들에게 꼴을 얻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위험이 닥칠 때, 목숨을 걸고 그들을 지키며 종국에 그들을 진정한 생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스스로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시는 분이다.
삯군 목자... 영혼에 대해 책임의식이 없는 자... 자신의 양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위험이 닥칠 때면 언제든지 자신의 안위가 우선순위에 떠오르는 자. 이리가 와서 양들을 늑탈하며 죽이는 그 때에, 양을 버리고 달아나는 자. 결국 목자라는 타이틀은 가지고 있지만 진정한 목자가 아닌 자이다.
나는 어떤가?
예수님은 진정한 목자로서 모든 영혼들의 선한 목자가 되신다. 그분만이 목자이시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예수님만이 진정한 목자라면, 나는?
예수님만이 진정한 목자이기 때문에 나는 운명적으로 진정한 목자가 될 수 없고, 따라서 삯군 목자일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없는 자로 태어난 운명을 가진 자인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도 없고, 버릴 필요도 없이, 위험이 닥칠 때, 양을 버리고 달아날 수 밖에 없는 자인가?
진정한 목자는 예수님 한 분 뿐이시다. 교회의 진정한 머리가 되시고, 영혼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는 없다. 그분만이 진정한 목자가 되시고, 그분만이 진정한 주인이 되신다.
선한 목자... 우리 주님... 그분은 양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며 그들에게 꼴을 얻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위험이 닥칠 때, 목숨을 걸고 그들을 지키며 종국에 그들을 진정한 생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스스로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시는 분이다.
삯군 목자... 영혼에 대해 책임의식이 없는 자... 자신의 양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위험이 닥칠 때면 언제든지 자신의 안위가 우선순위에 떠오르는 자. 이리가 와서 양들을 늑탈하며 죽이는 그 때에, 양을 버리고 달아나는 자. 결국 목자라는 타이틀은 가지고 있지만 진정한 목자가 아닌 자이다.
나는 어떤가?
예수님은 진정한 목자로서 모든 영혼들의 선한 목자가 되신다. 그분만이 목자이시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예수님만이 진정한 목자라면, 나는?
예수님만이 진정한 목자이기 때문에 나는 운명적으로 진정한 목자가 될 수 없고, 따라서 삯군 목자일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없는 자로 태어난 운명을 가진 자인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도 없고, 버릴 필요도 없이, 위험이 닥칠 때, 양을 버리고 달아날 수 밖에 없는 자인가?
진정한 목자는 예수님 한 분 뿐이시다. 교회의 진정한 머리가 되시고, 영혼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는 없다. 그분만이 진정한 목자가 되시고, 그분만이 진정한 주인이 되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동역자로 부르심을 받는 자로서, 영혼을 섬기는 일로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삯군 목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내 목숨을 내어주어 양들을 섬길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양들에 대해서 무책임한 목자가 되는 것만이 나에게 남아있는 옵션은 아니다. 분명 예수님께서 삯군 목자에 대해서 말씀하셨을 때,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리더들을 겨냥하신 말씀이고, 그들이 영혼들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감이 없이,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그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시는 것이다.
나는 선한 목자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삯군 목자처럼 양들에 대해 무책임하며, 위기의 순간에 양들을 버리고 도망하는 일은 더더욱 할 수 없는 일이다. 주님은 그 무책임함에 대해서 엄하게 질책하신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4:45-51)
나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 그들을 보호하는 선한 목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삯군 목자도 될 수 없다. 내 위치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종이다. 선한 목자이신 나의 주인님의 종으로서, 예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얼마 전에 묵상한 내용인) 바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것이다. 그것을 "주인이 올 때"까지 하는 것이다.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오실 그 때까지 하는 것이다.
그 때는 주인이 정한다. 종이 정하는 것이 아니다. 종에게 요구되는 것은 성실함과 인내이다. 이리가 와서 양들을 덥칠 때, 주인과 함께 이리들과 맞서 싸우는 자이다. 도망가는 자가 아니다. 어려운 상황을 피해 도망가는 자는 예수님의 제자라 할 수 없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마 12:30)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 6:67-68)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충성된 종이 되어 "주인이" 정하신 그 때까지 그분과 함께하는 자...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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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18:00
비빔툰...
나는 한겨레신문의 "비빔툰"을 좋아한다. 집에 비빔툰 만화책이 세권이나 있다. 아이들도 무척 좋아해서, 몇 번씩 읽고 읽고 또 읽는다...
오늘 아침 이번 주 비빔툰을 여기 올린다. 저작권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같이 나누고 싶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cartoon/bibimtoon/4179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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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이번 주 비빔툰을 여기 올린다. 저작권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같이 나누고 싶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cartoon/bibimtoon/4179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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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1:07:00
양키스의 마무리 투수인 리베라의 인터뷰
현역 메이저리거 마무리 투수 중 최고인 양키스의 리베라가 한국 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의 일부입니다.
"그로부터 1시간 30분 후, 스트레칭을 마치고 돌아온 리베라를 클럽하우스에서 다시 만났다. 매일 경기 전 성경을 읽냐고 묻자 "매일 읽는다"고 말했다. 라커룸에서 성경을 읽고 있는 친구는 리베라가 유일했다. 그래서 하루에 몇 번 읽냐고 되묻자 "시간이 날 때마다 성경을 읽는다"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당신을 보통 양키스의 '수호신'이라고 부른다고 말하자 리베라는 "나는 신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아무런 힘이 없다. 나의 신은 하나님(Jesus)"이라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당신은 위기 순간마다 마운드에 올라 타자들과 상대해 거의 대부분 승리를 거두는데 어떤 마음으로 던지냐고 묻자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내 힘으로 타자들을 상대한 적이 없다.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질 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 그리고 그는 항상 나를 도와 주신다. 나는 단지 매일 기도하며 성경을 읽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1시간 30분 후, 스트레칭을 마치고 돌아온 리베라를 클럽하우스에서 다시 만났다. 매일 경기 전 성경을 읽냐고 묻자 "매일 읽는다"고 말했다. 라커룸에서 성경을 읽고 있는 친구는 리베라가 유일했다. 그래서 하루에 몇 번 읽냐고 되묻자 "시간이 날 때마다 성경을 읽는다"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당신을 보통 양키스의 '수호신'이라고 부른다고 말하자 리베라는 "나는 신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아무런 힘이 없다. 나의 신은 하나님(Jesus)"이라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당신은 위기 순간마다 마운드에 올라 타자들과 상대해 거의 대부분 승리를 거두는데 어떤 마음으로 던지냐고 묻자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내 힘으로 타자들을 상대한 적이 없다.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질 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 그리고 그는 항상 나를 도와 주신다. 나는 단지 매일 기도하며 성경을 읽을 뿐"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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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43:00
야외예배...
오늘 교회에서 야외예배를 드렸다. 일년에 한 번씩 공원에 가서 드리는 예배...(참고로 많은 분들은 자연으로 부르신 하나님을 찬양했었는데... 사실 어디에도 자연은 없었다. artificiality의 흔적으로 충만한, 사람이 "조성"한 공원의 한 가운데였을 뿐...) 30년 만에 재기도 차보고, 작년에 이어 줄다리기도 해 봤다(줄다리기에 있어서 생애 첫 패배를 맛보았다). 예전같지 않게 둔해져버린 몸을 확인할 수 있었던 2인3각 경기에서 같은 목장의 형제님과 호흡을 맞추어 보기도 했다. 즐거웠다. 온 교인들이 같이 예배드린 후 같이 모여서 먹고 노는 가운데, 한 교회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하나님께 여쭙고 있는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을 찾는데 골몰해 있었다. 모든 싸인들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주시는 답을 듣고 싶었다. 지난 시간 동안 거의 90% 정도 마음의 확정이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확증해 주시는 하나님의 seal을 잡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도 여전히, 적어도 그 질문에 대한 답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모호했다. 기다렸던 화룡정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든 상황으로 볼 때, 그리고 그간 받았던 말씀들로 봤을 때, 답은 이미 정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애써 주어진 답을 더 확인하려고 하는 불순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나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한치의 틀림이 없이 주님의 뜻만 100% 드러나는 가운데 일을 진행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주님께 묻고 또 묻는다. 내 모든 관심이 거기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일에 있다. 요즘 잠잘 때 마저도, 꿈 속에서도 주님의 분명하신 뜻을 구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드는 첫 생각이 바로 그 질문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전에는 절제하던 콜라도 요즘은 과음을 하게 된다.(전에는 1주일에 한 캔 정도씩만 먹던 것이, 이번 주만 하더라도 두 캔에, 두컵, 그리고 오늘 하루만 해도 작은 병으로 두 병을 마셨다. 콜라는 내가 가슴이 답답할 때 주로 찾는, 나에게는 "술"과 같은 것이다.)
우매하고 무지한 나이기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데 있어서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늘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몇 번씩 확인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잘 못 알고 섣불리 행동에 옮겼다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는 보다는 차라리 백배 나은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구한다... 주님의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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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최근 하나님께 여쭙고 있는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을 찾는데 골몰해 있었다. 모든 싸인들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주시는 답을 듣고 싶었다. 지난 시간 동안 거의 90% 정도 마음의 확정이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확증해 주시는 하나님의 seal을 잡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도 여전히, 적어도 그 질문에 대한 답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모호했다. 기다렸던 화룡정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든 상황으로 볼 때, 그리고 그간 받았던 말씀들로 봤을 때, 답은 이미 정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애써 주어진 답을 더 확인하려고 하는 불순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나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한치의 틀림이 없이 주님의 뜻만 100% 드러나는 가운데 일을 진행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주님께 묻고 또 묻는다. 내 모든 관심이 거기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일에 있다. 요즘 잠잘 때 마저도, 꿈 속에서도 주님의 분명하신 뜻을 구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드는 첫 생각이 바로 그 질문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전에는 절제하던 콜라도 요즘은 과음을 하게 된다.(전에는 1주일에 한 캔 정도씩만 먹던 것이, 이번 주만 하더라도 두 캔에, 두컵, 그리고 오늘 하루만 해도 작은 병으로 두 병을 마셨다. 콜라는 내가 가슴이 답답할 때 주로 찾는, 나에게는 "술"과 같은 것이다.)
우매하고 무지한 나이기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데 있어서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늘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몇 번씩 확인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잘 못 알고 섣불리 행동에 옮겼다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는 보다는 차라리 백배 나은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구한다... 주님의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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