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화를 내는 것, 진노하는 것.. 그 자체가 죄인가?
분명히 그것은 죄가 아니다. 만약 그것이 죄라면,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죄를 짓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진노하신다. 분노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에 의해서 된다고 해서 진노가 다른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분노... 그것은 죄를 향한 분노이며, 불의와 부정을 향한 진노이다. 하나님은 그 속성상 절대로 죄를 지으실 수 없는 분이다. 따라서 그분의 진노는 죄의 카테고리 안에 있지 않다. 만약 그렇다면, 화 자체, 분노 자체가 죄라고 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화를 내도 되는가? 나는 어떤 경우에는 그리스도인이 화를 내도 될 뿐만 아니라 화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노를 해야할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불의를 볼 때, 특별히 나 자신에게 가해진 불의보다는 사회적 부정과 불의, 그리고 약한 자들에게 가해지는 불의, 죄를 볼 때 그것을 지켜보면서 아무런 감정이 없이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고,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책임을 져버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공의가 훼손되고 있는 그 현장에서, 그리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고, 그들을 품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약한 자들에게 가해지는 불의와 부정을 보면서, 자식된 자로서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한다면, 사실 자신이 그분의 자녀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아버지 일이 곧 내 일이기 때문에 결코 평상심을 유지하고 그대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 때, 반드시 분노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진노해야한다. 공분을 느껴야 한다. 그 때는 분노, 화는 정당화될 수 있다.

나는 어리고 약한 영혼들에게 가해지는 영적인 학대를 접하면서, 분노를 느낀다. 매우 심한 분노를 느낀다. 약한 영혼들의 무지와 어림을 이용해서 잘못된 신학으로 그들을 어두움으로 몰아가는 그 학대를 보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얼마나 진노하고 계실지 생각한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 18:6)

예수님의 이 말씀은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말씀은 다른 두 복음서에서도 강조되어 있는 예수님의 중요한 가르침 중의 하나이다.(눅 17:2, 막 9:42) 예수님은 분명히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 있는 "소자"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믿음 안에 어리고 연약한 자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믿음 안에 있지만, 어리고 연약해서 믿음 없어보이는 행동들과 상태에 자주 빠지는 자들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들을 실족하게하는 자들은 누구일까? 두 부류이다. 한 부류는 죄의 유혹으로 인도하는 자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당시의 바리새인들처럼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짐을 그 위에 얹어 놓음으로써 그들이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게 하는 자들인 것이다. (사실 두 부류는 궁극적으로 한 부류이다.)
최근 나는 후자의 경우를 많이 본다. 비록 바리새인들처럼 행위의 조항들을 들고 와서 들이대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적 근거도 희박한 "구원의 기준"이라는 것들을 들이대면서 연약한 자들을 한없는 나락으로 이끈는, 어두움 가운데 쓰러져 신음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말도 안되는 영적 학대를 접하면서, 큰 분노를 느낀다. 나는 그들이 바로 예수님의 그 저주의 말씀에 해당하는 죄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문제는 나에게도 있다. 그런 영적 학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귀한 영혼들을 어두움으로 몰아가는 무책임한 자들을 보면서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도를 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 4:26-27)

분노는 그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분노를 품는 자는 죄에게 기회를 줘서 스스로 죄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기 때문에 분노를 품고 있는 자는 스스로가 아무리 정당한 원인으로 분노를 품고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매우 경계해야 하며, 그 분노를 선한 일의 에너지로 바로 치환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 분노를 품고 그 에너지를 사용해서 더 열심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더 열심히 영혼들을 바르게 섬기고, 더 열심히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도 같은 오류에 빠져 같은 죄를 짓지 않는지를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 분노를 인간에 대한 미움으로 치환시킬 기회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는 순간 마귀가 나를 실족시킬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되고, 내가 쓰러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죄를 보면서 내가 비판하며 내가 분노하는 가운데, 내 스스로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죄 가운데 거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최근 영혼들에게 가해지는 영적 학대의 사례를 접하면서, 내 안에 끓어 오르는 분노가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내가 실족하고 죄를 짓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전혀 기뻐하지 않으시는 모습이다. 내 스스로가 먼저 회개해야 한다. 불의에 항거하며, 맞서 싸우는 것은 멈추지 않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은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그들과 같은 불의한 자에 지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교만...

무지에 열정을 더하면 독선이 된다.
그리고 독선에 자기 의(義)를 더하면 교만이 된다.

신학적, 성경적 무지가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지 몸서리쳐질 만큼 분명히 본다.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 될 수 있는지... 그 무지 가운데서 그 열정이 영혼을 잠식하고, 한 영혼을 어두움 가운데로 몰아가고, 급기야 실족하게 까지하는 무서운 죄를 범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

자기 의(義)... 자기가 옳다는 확신... 그리고 자기만 옳다는 확신...
분별이라는 이름으로... 그것도 무지한 자신의 상태를 알지 못한 채, 소위 분별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그 교만과 독선...
자신이 분별할 준비도 능력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망각한 상태에서 휘둘러 대는 그 무시무시한 분별이라는 칼날에 많은 영혼들이 상처받고 피흘리며 쓰러진다. 교만한 자들의 눈에는 쓰러져 피흘리며 고통하는 그 영혼들은 소위 "믿음없는" 불쌍한 영혼들일 뿐이다...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비수같은 칼날이 되어 영혼에게 해악을 끼쳤는지는 결코 돌아보지 않는다. 모든 것이 타인의 잘못일 뿐... 그들이 거듭나지 않아서일 뿐... 그 칼부림을 해대는 자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확신한다. 철저한 무지... 자기 중심적인 사고... 남탓하는 것은, 남이 부족하다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다...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자, 자신의 내면을 철저하게 돌아보고 자신의 과오를 볼 줄 아는 자들... 그런 자들이 진정으로 귀하게 쓰임받는 자들이다... 교만한 자들은 칼끝을 타인에게 들이대는 것에는 매우 익숙하지만, 그 칼을 자신 안에 있는 엄청난 오류와 잘못을 수술하기 위해 자신에게로 돌리는 데는 매우 인색하다...

교만한 자... 그들은 동역을 모른다. 지극히 제한된 소수의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그것만을 그들은 동역이라 부른다.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은 "믿지 않는 자" "복음이 없는 자"라고 쉽게 규정해 버린다. 그리고 배척하고 함께하지 않는다.
분별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이 바로 교만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까?
그 교만이 지극히 가증스러운 것이라는 것... 그것을 알까?
분별할 능력도 준비도 되어 있지 않는 자들이 스스로 겸손할 줄 모르고 날뛰는 그 가증스러운 가공할만한 무식함의 횡포....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제발... 깨달아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