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토요일 오후...
서울대 캠퍼스는 한산하다. 몇몇 학생들과 캠퍼스를 구경하기 위해 찾은 아이들과 어른들...

서울대 바깥은 이미 봄이 왔지만, 이곳은 아직 봄의 문턱에 진입하기 직전의 상황인듯, 약간은 춥다.

토요일에도 학교에 나와 연구실에서 수업준비하고 논문준비하는 것이 참...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공부할 곳이 있고, 나를 바쁘게 하는 일거리가 있다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얼마나 감사해야할 일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난 수요일에 있었던 총선 후, 마음을 추스리기가 너무 쉽지 않았다. 쓰라린 패배에 따른 원망과 좌절. 공의와 정의를 기대했건만, 세상은 달랐다.
아직도 마음이 잘 잡히진는 않지만, 일상을 삶에서 내가 해야할 일을 감당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한산한 캠퍼스에서 다음 주 수업시간에 만날 학생들을 생각하며, 그들에게 최고의 것을 주는 선생이 되어야 겠다는 마음, 그리고 학계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기여를 해야겠다는 다짐,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왕, 내 주인, 내 친구, 내 모든 것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그분의 가장 충실한 동반자요, 종이요, 제자가 되겠다는 소망을 품고, 나아간다.

조금씩 제 색깔을 내기 시작한 개나리를 보면서, 좌절하지 않고 감사하며, 희망하며, 내 자신 안의 어두움, 그리고 이 사회, 내 조국의 어두움과 싸우리라.

책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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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로 살 것인가?

부활주일 아침...
예배를 드리면서, 그리고 하루 종일 깊이 생각한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의미가 이 땅을 사는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주님이 부활하셨다!

여러 면에서 너무나 기쁜 소식... 신학적으로, 그리고 이론적으로는 기뻐해야 할 이유를 수도 없이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기쁜가? 정말 기쁜가? 그분의 부활이 내 삶에 절대적으로 복음으로 다가오는가?

자신있게 답할 수 없는 것이 내 현실...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이더라도, 일주일이 7일이 아니라 14일이더라도 시간이 부족해서 허덕이며 하루하루 한 순간 한 순간을 정신없이 살아가는 나에게, 고갈되는 체력과 정신력 가운데 이번 학기가 탈없이 지나가기만을 고대하고 있는 나의 삶에 부활은 어떻게 기쁨이 되는가?

내 마음 속에 뚜렷이 떠오른 한 생각... 그것은 그분이 살아계시다는 것이다.
내 하나님, 내 구원자, 내 도움, 내 피할 바위, 내 피난처, 내 능력, 내 주인께서 지금 살아 계시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기쁨이 되지 아니한가?

내 인생... 마치 아무 도움도 없이 스스로의 인생을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 나가야 하는 고아와 같이 살아간다면, 나는 삶에 매몰되어 살 수 밖에 없고, 일주일의 삶에서 한 치의 여유도 없이,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 것이 내 삶의 현 주소...
턱없이 부족한 내 능력... 너무나 많이 주어지는 일들... 그 간극, 그 괴리를 매꾸는 것은 오로지 더 일하고, 더 노력하고, 더 내 자신을 쥐어 짜는 것 밖에 없다면... 내 인생은 결국 그 가운데서 피폐해지거나(성공할 경우), 무너지는 것(실패할 경우) 외에는 다른 결론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주님이 부활하셔서 살아계신다. 그분은 내 주인이고,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시다. 내가 사는 것은 그분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이고, 그분이 허락하신 반경 안에서 사는 것이다. 애초에 내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내 노력으로 완성된 뭔가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게임의 룰이 다르다.
살아계신 그분의 능력으로 사는 것이다. 그분이 살아계셔서 나를 지켜보고 계시고, 그분의 전능하신 오른 팔로 나를 붙드시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그분을 하실 수 있다.

그분과 교제하며, 그분을 사랑하며, 순종하며, 그분의 뜻 안에 거하며,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충실하면서도 성실히 살아간다면 내 능력과 내 과업의 엄청난 간극은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의미를 잃는다.

그분이 살아나셨고, 살아 계신다. 나는 우주에 던져진 미아가 아니다. 나에게는 내 주님이 계신다.

부활이... 그분의 부활이 참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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