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로 살 것인가?

부활주일 아침...
예배를 드리면서, 그리고 하루 종일 깊이 생각한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의미가 이 땅을 사는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주님이 부활하셨다!

여러 면에서 너무나 기쁜 소식... 신학적으로, 그리고 이론적으로는 기뻐해야 할 이유를 수도 없이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기쁜가? 정말 기쁜가? 그분의 부활이 내 삶에 절대적으로 복음으로 다가오는가?

자신있게 답할 수 없는 것이 내 현실...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이더라도, 일주일이 7일이 아니라 14일이더라도 시간이 부족해서 허덕이며 하루하루 한 순간 한 순간을 정신없이 살아가는 나에게, 고갈되는 체력과 정신력 가운데 이번 학기가 탈없이 지나가기만을 고대하고 있는 나의 삶에 부활은 어떻게 기쁨이 되는가?

내 마음 속에 뚜렷이 떠오른 한 생각... 그것은 그분이 살아계시다는 것이다.
내 하나님, 내 구원자, 내 도움, 내 피할 바위, 내 피난처, 내 능력, 내 주인께서 지금 살아 계시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기쁨이 되지 아니한가?

내 인생... 마치 아무 도움도 없이 스스로의 인생을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 나가야 하는 고아와 같이 살아간다면, 나는 삶에 매몰되어 살 수 밖에 없고, 일주일의 삶에서 한 치의 여유도 없이,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 것이 내 삶의 현 주소...
턱없이 부족한 내 능력... 너무나 많이 주어지는 일들... 그 간극, 그 괴리를 매꾸는 것은 오로지 더 일하고, 더 노력하고, 더 내 자신을 쥐어 짜는 것 밖에 없다면... 내 인생은 결국 그 가운데서 피폐해지거나(성공할 경우), 무너지는 것(실패할 경우) 외에는 다른 결론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주님이 부활하셔서 살아계신다. 그분은 내 주인이고,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시다. 내가 사는 것은 그분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이고, 그분이 허락하신 반경 안에서 사는 것이다. 애초에 내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내 노력으로 완성된 뭔가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게임의 룰이 다르다.
살아계신 그분의 능력으로 사는 것이다. 그분이 살아계셔서 나를 지켜보고 계시고, 그분의 전능하신 오른 팔로 나를 붙드시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그분을 하실 수 있다.

그분과 교제하며, 그분을 사랑하며, 순종하며, 그분의 뜻 안에 거하며,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충실하면서도 성실히 살아간다면 내 능력과 내 과업의 엄청난 간극은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의미를 잃는다.

그분이 살아나셨고, 살아 계신다. 나는 우주에 던져진 미아가 아니다. 나에게는 내 주님이 계신다.

부활이... 그분의 부활이 참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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