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27

화요일인 어제 중요한 프리젠테이션이 있었다. 잘 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월요일 저녁에 집에서 프리젠테이션 연습을 했다. 많이는 못했지만 두 세번 정도 전 과정을 연습했고, 조금은 개선 시킬 수 있었다.
아빠가 오랫만에 집에 일찍와서 혼자서 중얼거리는 모습을 본 딸들... 나름 대로 사안의 중요성을 알고 이런 저런 피드백을 주었다. 감사하게도...
연습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요즘은 막내의 개인 사정상 막내가 아내와 자고 나는 큰 애랑 같이 이층침대에서 잔다.
자리에 누워 있는데, 윗층에 누워 있던 하연이가 말을 꺼낸다.

"아빠?"
"왜?"
"저기, 프리젠테이션 할 때 앞에 있는 사람들을 자주 쳐다봐야하는 것 같아요."
"그래?"
"예. 얼마전에 영어말하기 대회에서 내 친구는 앞을 자주 쳐다보면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했고, 나는 중간에 잊어버릴까 봐서 앞을 못보고 써서 가져간 종이만 봤는데, 친구가 상을 탔어요."
"그렇구나~~"
"예. 그러니 종이만 읽지 말고 앞에 있는 사람들을 자주 보면서 하세요."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큰 애의 조언에 참 감사했다. 아빠를 위하는 마음, 그리고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주는 그 조언. 내용보다 마음에 감동했다.

"알았다. 정말 고맙다. 내일 프리젠테이션 할 때 꼭 명심할께."
"예, 안녕히 주무세요."
"잘 자라!"

그리고 그 다음날, 프리젠테이션 시간에, 하연이의 그 조언이 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비록 초등학생의 조언이지만, 내 딸이 벌써 이렇게 커서 아빠에게 조언을 해줄 정도가 되었다니... 참 대견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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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늘 떠오르는 질문...
그 대답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나오는 질문... 왜?

장로교 목사이자 신학자로서 매우 존경하는 RC Sproul 교수. 지난 7년 동안 그의 강의와 설교를 거의 날마다 빠짐없이 들으면서 느낀 것은 탁월한 그의 신학적 지식, 특히 조직신학적 지식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그의 사랑과 충성의 크기가 대단하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 속이야 내가 절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난 7년간 그의 강의를 통해서 느낀 것은 그것이다.
그는 이 시대의 선지자요, 하나님의 말씀을 깨우는 등불이다.
그런 그의 사랑하는 아들인 RC Sproul, Jr. 경제학 박사이자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헌신된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암으로 먼저 떠나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남은 아이들(친자식들과 입양한 아이들)을 혼자서 키워내는 어려움을 감내해야만 했다. 사랑하는 아들의 아픔은 곧 부모의 아픔. Sproul교수도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그런 그들이 작년에 방송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대담을 하는 것을 들었다. 가식이 아니라 진심에서 나오는 고백. 비록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는지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것이 최선이라는 것...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그들의 고백은 참 아름다왔다.

그런 그들에게 닥친 또 하나의 비극.
Sproul 교수의 손녀이자 Sproul, Jr.의 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집안의 기쁨이었던 그 딸인 Shannon을 하나님께서 데려가셨다. 할아버지가 "인간의 사는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했을 때,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Shannon이 "For the gory [glory] of God."라고 앙증맞게 그렇지만 진지하게 답하던 그 아이. 할아버지가 방송에서 강의하면서 너무 대견해 하면서 자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 천사같던 아이를 하나님께서 데려가신 것이다.
그들의 아픔은 얼마나 클까? 아무리 신학자요 믿음에 뛰어난 사람들이라 해도 그 가슴에 남을 그 아픔은...

하나님을 그토록 사람하는 사람들에게 왜?

아픔과 눈물과 이별과 죽음이 없는 그날... 그 날을 간절히 소망하며, Sproul 교수와 그 아들에게 하나님의 큰 위로가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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