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요 16:27)

십자가의 고난을 목전에 두신 예수님께서 하늘의 비밀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이 땅에서의 유언을 남기시면서 당신께서 가장 하시고 싶은 말씀, 제자들을 붙잡아 주실 그 놀라운 비밀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중 제자들에게 가장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었던 말씀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는 말씀이 아닐까?
유대인에게 하나님은 지금의 이슬람의 알라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그분은 크고 위대하시며,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신 분으로 범접하기 힘든 분이셨다. 특히 예수님 당시에는 이스라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많이 약화되었고, 절대자로서 멀리 떨어진 율법의 체화된 모습이 지배적이었다. 그런 이미지는 율법주의자들이었던 바리새인들에 의해 강화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분과 친밀한 인격적을 관계를 갖는 것도 불가능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은 내 아버지가 되신다. 그럴 뿐만 아니라 그 아버지는 엄격하고 무섭기만 한 체벌주의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친히(himself)"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사실 그 말씀이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보다 더 복음이 아니었을까?

그 아버지의 사랑. 친히 직접 사랑을 베푸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조건에 대해서 예수님은 단 하나로 정리해서 말씀하신다. 그것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을 믿었으므로"였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께서 주요 구주임을 믿는 믿음이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필요충분조건이 되는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회의가 들 때가 있다. 그분이 사랑이 멀게만 느껴지고, 마치 세상에 혼자 던져져 고아가 된 것 같은 느낌으로 힘들 때가 있다. 느껴지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하나님이 사랑을 확신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오늘 가르치신다. 그것은 내 안에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있는가? 그 크기와 상관 없이, (내가 임의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 성경에 객관적으로 묘사된 그 예수, 그분의 대한 사랑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바로 그 예수님을 내 하나님이요 구원자로,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 보내신 메시야로 믿는 믿음이 있는지를 확인하면 된다. 그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친히 사랑하고 계시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친밀하게 경험하든 말든 말이다. 그 사랑과 믿음이 있는 자는 하나님께 빌립과 같은 요구를 하지 않는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다.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 푹 젖어 살련다. 감사와 기쁨으로... 그것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니까... 그것도 친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