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he did evil, for he did not set his heart to seek the Lord." (2 Chronicles 12:14, ESV)
분단된 남쪽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르호보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는 중간자적 인물이었다. 아버지인 솔로몬을 이어 왕위에 오른 후, 노역을 감해달라는 백성들의 요청에 교만함으로 포악하게 대응을 한다. 그 모습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모습이다.
이스라엘 10 부족이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킨 후, 그는 유다와 배냐만의 성인 남자 십팔만명을 모아 북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여 잃어버린 통치권을 회복하려 할 때, 하나님의 선지자가 그 전쟁을 막자 그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북이스라엘 회복을 포기한 그는 남유다 나름대로 강성한 국가를 만들 수 있었다. 국가가 강성해지고 세력이 강해지자 다시 교만해진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자신의 뜻대로 행한다. 그에 대해 하나님은 애굽의 군대로 그를 징벌하신다.
저항할 수 없이 강력한 애굽의 군대가 코 앞까지 밀려 왔을 때, 하나님은 다시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를 잘책하신다. 그 질책 앞에서 르호보암은 무릎을 꿇고 회개하며 "스스로 겸비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의로우시다"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교만을 꺾은 것이다.
이 겸비함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 특유의 놀랄만큼 자비로운 용서로 그를 용서하시고, 유다를 멸망시키지 않으신다. 대신 여로보암의 교만의 근거인 왕이 세운 강력한 힘과 자랑을 애굽에게 빼앗기도록 허락하신다.
세상적으로는 어떤 왕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르호보암 왕에 대한 성경의 최종 판결은 "르호보암이 악을 행하였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을 굳게하지 아니하였음이더라"이다. 그것이 그의 인생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 것이며, 그것이 바로 그의 인생이다. 그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내려지는 평가가 바로 이것인 것이다.
언뜻 보기에 어리석어 보이고 답답해 보이는 르호보암의 행태는 사실상 나와 비교했을 때, 나보다 한 등급 위의 인간이다. 그와 나는 틈만나면 교만해지려고 한다는 면에 있어서는 동일하지만, 그는 나와 다르게, 그 교만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질책하실 때, 겸손하게 무릎꿇고 잘못을 시인할 줄 아는 자였다. 나는 그와 다르다. 죄악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끝까지 그 말씀 앞에 무릎꿇지 않는 악한 자이다. 그 말씀이 귓가에 들리지 않고, 내 생각(정확히 말하면 내 욕망)만 내 머리 속에 가득 찬 그런 삶을 산다. 그 완악함은 당나귀의 어리석은 고집과 매우 유사한 면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그는 나보다 낫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악을 행하였으니"라고 평결을 내리신다면, 하물면 나는 어떠랴?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그의 악행의 원인에 대한 성경의 해석이다. 그가 결국 악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그가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을 굳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SV는 이 부분은 "he did not set his heart to seek the Lord"라고 번역했다. 그 마음을 하나님을 구하는 데 고정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인생에서 어떤 일에든지 주님을 찾는 그것을 최우선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나 중심의 삶을 살게 된다. 그것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인간에게 주어진 원죄 때문이다(아니 그 자체가 원죄다). 그렇기 때문에 늘 하나님을 구하며, 그분을 내 삶에 모시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결국 그분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는 정도와 빈도의 증가가 있는 삶 아닌가? 그리스도의 성숙이란 내 안에 내가 사라져가고, 그분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아닌가? 성령의 역사란 바로 그것이 내 안에서 가능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사역이 아니고 무엇인가? 바로 그것이 마지막날 하나님 앞에서 내 인생이 "악하다"는 평가를 면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나는 르호보암보다 더 형편없는 인간이다. 나는 그 만큼 종교적이지도 않고 겸손하지도 않다. 그 본성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그와 내가 다른 또 한 가지는 내 안에 내가 아닌 다른 존재(성령)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분께서 나를 바꿔가신다는 것, 그래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구하는 삶으로 조금씩 인도해 가신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이 아니 기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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