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S..

어제... 약 3시간 반 떨어진 댈러스에 다녀 왔다. 한 번도 안 가본 곳인데... 이번 여름수련회 주제 강사로 모실 목사님이 댈러스에 계셔서 수련회에 대해서 직접 만나 뵙고 논의하기를 원하셔서 가서 찾아 뵈었다. 복음을 위해, 이 땅의 교회 개혁을 위해 마음을 쓰시고 많은 수고를 하시는 목사님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8일만에 4천마일을 달린 서부여행 이후 이제는 웬만한 거리는 눈하나 깜짝 안하고 단숨에 달려 가게 되어서, 올라 올 때와 마찬가지로 쉽게 집에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고 느긋하게 달렸다. 그런데 댈러스를 막 벗어나서 약 30마일 쯤 남쪽으로 내려오는데, 갑자기 쏟아지는 무지막지한 비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험난한 서부여행 도중에도 경험하지 못했을 정도의 비... 앞뒤 좌우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바로 옆에 있는 중앙분리대나 바로 앞에 있는 차나, 차선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 멈추고 싶었지만, 뒤에 따라오는 차의 희미하게 보이는 불빛을 보아 나로부터 그리 멀지 않는 곳에서 뒤따라 오는 차가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멈출 수도, 그렇다고 바로 옆 차선도 보이지 않는데, 거기에 차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차선을 바꿀 수도 없었다... 미국에서 운전을 하면서 그렇게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폭우를 운전해 본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많은 비가 쏟아졌다.

솔직히 내가 차선을 따라서 맞게 가고 있는지에 대한 감도 없는 상황에서 한 참을 긴장하며 달렸다. 더구나 도로의 물로 인해서 차의 컨트롤은 느슨해져서 차가 마음대로 좌우로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이러다 대형사고가 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죽음도 각오해야하는 상황...

그 때 당황한 내 눈에 GPS가 들어왔다. 초행길이라 아는 사람에게서 빌려 놓은 GPS를 가져갔었는데, GPS는 한치 앞이 안보이는 상황 속에서 내가 나아가야 할 길과 방향을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육안의 눈으로는 아무 것도 안 보이지만, 내가 남쪽으로 맞게 가고 있으며, 차선을 크게 이탈하지 않고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고, 그리고 앞으로 방향을 바꿔야 할 곳이 내 눈에는 안보이지만, GPS에서는 선명하게 보였다. 참으로 놀라왔다. 그리고 GPS와 바깥의 매우 흐릿한 상황을 함께 보면서 한참을 달렸다.

얼마나 달렸나? 빗방울이 점점 약해지더니 이제는 약 30m 전방이 보이기 시작하였고, 조금 더 달리니, 평소의 소나기 오는 수준으로 시야가 좋아졌다. 그리고 약 10분 후... 맑은 하늘과 쏟아지는 햇빛 사이를 달리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백미러로 보이는 시커먼 먹구름을 보면서 내가 뚫고 지나온 엄청난 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인생길을 달리다보면, 정말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혹은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 아무리 지혜를 짜내 보려고 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 인생의 먹구름이 잔뜩 낀 그런 상황...

그 때 선명하게 내가 위치한 곳과 나아가야할 방향을 보여주는 인생의 GPS는 무엇인가? 내 감각과 내 지식과 내 판단이 기능을 정지할 때, 아니 기능하고 있다 하더라도 수많은 신기루들과 착각 속에 쉽게 속아 넘어가는 내 자신의 판단력에 대한 신뢰를 상실할 때, 내가 의지할 내 인생의 GPS는 무엇인가? 내 인생의 목표인가? 내가 의지할 만한 사람(친구, 부모, 스승, 영적인 리더)인가?

예수 그리스도... 그분 외에는 진정한 GPS는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이신 그분. 이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고 절대주권으로 다스리시는 그분... 절대 진리가 되시고, 유일한 길이 되시는 그분... 그리고 그분의 말씀인 성경... 내가 헤매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길을 제시하신다. 내가 그분께 정결함으로 나아가, 그분의 뜻에 진정으로 순종할 자세를 갖춘다면, 그분은 언제나 말씀을 통해서 내 현재의 위치를 보여 주시고,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보여 주신다.

만약 내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놓친다면, 그분의 말씀을 놓친다면, 그것은 낯선 땅에서 GPS를 잃어버린 것과 같은 것이다. 운전하는 내내 GPS를 의지해야하는 것처럼, 내 삶의 모든 순간에 예수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야 한다. 갈바를 알지 못할 때, 그리고 앞이 캄캄할 때, 그분은 나를 인도하시며, 나를 천국이라는 최종 목적지까지 반드시 인도하실 것이다.

.

想念...

요즘... 마음과 생활이 붕 떠있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무엇을 해야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한 채 떠 있는 상태에서 표류하는 느낌... 뭔가 현실에 발을 딛지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

지난 주는 한국에서 샌안토니오를 방문한 처제 부부를 만나러 몇 번씩 거기를 다녀왔고, 그곳의 호텔에 머물면서 마치 처제 부부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 먼 여행을 떠난 것과 같은 느낌 속에서 분주했고,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기말고사 감독하고, 110개의 답안지를 하루 반만에 grading을 해 치우는 가운데, 일주일을 정신없이 지냈다.

주일... 그날 새벽 일찍 한국으로 돌아가는 처제부부와 함께 토요일 밤 호텔에서 같이 자고 새벽에 공항에 데려다 주느라 잠을 설쳤고, 데려다 주고나서는 몰려오는 피로를 감당하지 못해 잠에들었다가, 예배에 약 5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예배에 늦는 것이 얼마나 속상하던지...) 경황과 정신이 없는 상태, 피곤한 상태임에도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내 자세를 바르게 함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부족함이 없는 예배가 되도록 신경을 많이 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준비되지 못한 내 모습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부끄러웠다.

주일 저녁에 집에 와서 쉬었지만, 오늘 아침까지도 쌓인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몸은 피곤으로 힘들어 하고, 마음은 뭔가 정착되지 못한 떠도는 듯한 상태로 그냥 정처없이 둥둥 떠내려가는 것과 같은 느낌... 실재적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고, 삶의 방향도 그 전과 다름이 하나도 없지만,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지지난 주일 설교 말씀은 우리의 영혼의 닻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었다. 세상의 거센 흐름에 정처없이 흘러가고 떠내려가는 가운데, 멸망으로 가버릴 수 밖에 없는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난 후, 그분이 내 영혼의 닻이 되셔서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잡아 주시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원하시는 모습으로 붙들려 있을 수 있도록 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을 들은 직후에 나는 내 영혼이 영혼의 닻이 없이 거센 조류의 흐름에 정처없이 떠도는 유령선과 같이 되어버린 것을 경험했다.
물론 말씀이 약속한 대로, 그분이 나의 닻이 되어서 어느 일정 정도 이상은 결코 떠내려 가지 않도록, 그래서 전과 같이 세상에 대책없이 떠돌아 다니는 일은 없도록 하시는 주님의 은혜 가운데, 나의 표류함도 분명히 일정 boundary내에서의 이야기이지만, 그 경계 안에서의 표류조차도 나로 하여금 공허감과 상실감을 절감하게 하는 것은, 그만큼 내가 주님이 없이는, 주님께서 있기를 원하시는 곳에 정박해서 떠내려가지 그대로 있지 않고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뜻이리라...

주님께서 나를 붙잡으신다. 그것은 큰 은혜이다. 하지만, 나도 역시 주님을 붙잡아야 한다. 말씀이, 기도가, 그리고 내 주인이 내 삶의 무게 중심, 무게 추가 되어 나를 든든히 붙잡지 않으면, 나는 또 얼마나 삶의 현기증 속에서 힘들어할지 모른다.

주님을 북극성 삼아, 영혼의 닻되신 그분을 붙잡고, 일치의 흔들림이 없는 굳건한 믿음의 삶으로 다시 나아가련다...

.

보물 24

(2006.03.22.에 쓴 글)

우유 큰게통

저녁식사를 하러 집에 갔다가 아내의 부탁으로 아이들과 함께 Randall's에서 간단한 장을 보게 되었다. 오랫만에 아빠랑 장으로 본다는 사실에 흥분한 아이들.. 밥을 후다닥 해치우고 주섬주섬 옷을 입고 아빠를 따라 나선다.
아이들을 차에 앉히고 시동을 켜니 때마침 가스펠 음악 중 "물이 바다 덮음같이"가 흘러 나온다... 이 곡은 요즘 두 딸들이 가장 좋아하는 찬양이다. 잠잘 때도 아빠랑 같이 컴컴한 곳에 누워서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를 잠자리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소리 높여 부른다. 가사를 또박또박 잘 기억하고 따라하는 하연이, 그리고 "인정하는 것이"를 늘 "신정하는 것이"로 그리고 가끔씩 "여호와의 영광을"이라고 해야할 대목에서 "온 세상 가득하리라~~"고 엉뚱하게 부르는 예연이의 목청껏 불러대는 찬양은 하나님도 미소짓게할 만큼 듣기에 무척 재미있다.
역시나 차 안에서 큰 소리로 찬양을 부르며 가게에 갔다. 너무 가까운 거리인지라 한 곡이 끝나지 않아서 차를 주차장에 세워 놓고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 내렸다.
아이들을 카트에 앉히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하연이는 차에서 내리자 마자부터 엄마가 적어준 쪽지를 가져왔는지 연신 물어댄다... 걱정이 되는가 보다. 물건들을 보면서 아내가 뭘 사오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바지 뒷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쪽지를 꺼냈다.

"가만있어라... 당근을 사오라 했는데.. 어떤 당근이지?"

늘 그렇듯이 뭘 사야할지를 몰라 헤매고 있는 나를 본 하연이...

"아빠! 그 종이 주세요. 제가 볼께요."라고 하더니 종이를 가져간다. 그러면서 하나씩 불러준다.

"당근 사야해요!"

아내가 알려준 당근을 발견! 카트에 집어 넣는다.

"그 다음은 뭐지?"
"양상치요..."
"양상치가 뭐냐?"
"양상치 몰라요?"

이리저리 양상치를 찾아 헤멘다.. 솔직히 그게 뭔지 전혀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가고 있었는데 하연이가 "아빠! 저거요!" 하고 가리킨다. 그곳을 보니 뭔가 랩으로 싼 동그란 야채가 있었다. 하연이 말을 듣고 보니 언젠가 본 듯한 야채다.. 양상치였다.

'기특하네!'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다음 물품인 바나나를 사고 우유가 있는 곳을 향햇다. 쪽지를 보던 하연이.

"아빠! 엄마가 우유 큰게통 사오래요.."
"뭐?"
"우유 큰게통!"

이해가 되지 않아 쪽지를 들여다 보았다.
"우유 큰거 1 통"

"1"자가 "거"자에 많이 붙어 있어서 하연이가 "게"자로 잘못 읽은 것이었다.

"우유 큰거 한 통이라고 써있잖아!"
"아니예요.. 우유 큰게통이에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하연... 어느덧 우유코너에 왔다. 그 동안 조용하던 예연이 초콜렛 우유를 보자 사달라고 조른다.
"안돼! 엄마가 적어준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안 사! 그리고 저건 너무 커!"
"예, 알겠어요."

요즘 두 애들의 화두는 순종이다. 아빠말에 순종하는 것을 재미로 여기는, 그리고 서로 충성경쟁을 하는 관계로 대체로 아빠말 한 마디에 "예, 알겠어요"라고 대답하며 금새 순종한다.

하연이와 함께 상의해서 우유를 한 통 사고, 계란을 산 뒤, 마지막으로 오렌지 주스를 사러 갔다.
"아빠! 저거 사야되요. 전번에도 샀었어요."
하연이가 가르쳐준 대로 주스를 고르자 험난한 장보기가 끝났다.

두 아이들을 데리고 짐을 양손에 들고 차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에도 목청껏 "물이 바다 덮음같이~~~"를 외쳐대는 아이들과 함께 나도 소리높였다.

오랫만의 장보기... 예전에는 멋모르고 따라와서 이것저것 사달라고 조르기만 하던 하연이와 예연이가 이제는 장보기 프로젝트의 파트너로서 당당하게 성장한 것을 경험한 뿌듯한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