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3.22.에 쓴 글)
우유 큰게통
저녁식사를 하러 집에 갔다가 아내의 부탁으로 아이들과 함께 Randall's에서 간단한 장을 보게 되었다. 오랫만에 아빠랑 장으로 본다는 사실에 흥분한 아이들.. 밥을 후다닥 해치우고 주섬주섬 옷을 입고 아빠를 따라 나선다.
아이들을 차에 앉히고 시동을 켜니 때마침 가스펠 음악 중 "물이 바다 덮음같이"가 흘러 나온다... 이 곡은 요즘 두 딸들이 가장 좋아하는 찬양이다. 잠잘 때도 아빠랑 같이 컴컴한 곳에 누워서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를 잠자리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소리 높여 부른다. 가사를 또박또박 잘 기억하고 따라하는 하연이, 그리고 "인정하는 것이"를 늘 "신정하는 것이"로 그리고 가끔씩 "여호와의 영광을"이라고 해야할 대목에서 "온 세상 가득하리라~~"고 엉뚱하게 부르는 예연이의 목청껏 불러대는 찬양은 하나님도 미소짓게할 만큼 듣기에 무척 재미있다.
역시나 차 안에서 큰 소리로 찬양을 부르며 가게에 갔다. 너무 가까운 거리인지라 한 곡이 끝나지 않아서 차를 주차장에 세워 놓고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 내렸다.
아이들을 카트에 앉히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하연이는 차에서 내리자 마자부터 엄마가 적어준 쪽지를 가져왔는지 연신 물어댄다... 걱정이 되는가 보다. 물건들을 보면서 아내가 뭘 사오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바지 뒷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쪽지를 꺼냈다.
"가만있어라... 당근을 사오라 했는데.. 어떤 당근이지?"
늘 그렇듯이 뭘 사야할지를 몰라 헤매고 있는 나를 본 하연이...
"아빠! 그 종이 주세요. 제가 볼께요."라고 하더니 종이를 가져간다. 그러면서 하나씩 불러준다.
"당근 사야해요!"
아내가 알려준 당근을 발견! 카트에 집어 넣는다.
"그 다음은 뭐지?"
"양상치요..."
"양상치가 뭐냐?"
"양상치 몰라요?"
이리저리 양상치를 찾아 헤멘다.. 솔직히 그게 뭔지 전혀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가고 있었는데 하연이가 "아빠! 저거요!" 하고 가리킨다. 그곳을 보니 뭔가 랩으로 싼 동그란 야채가 있었다. 하연이 말을 듣고 보니 언젠가 본 듯한 야채다.. 양상치였다.
'기특하네!'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다음 물품인 바나나를 사고 우유가 있는 곳을 향햇다. 쪽지를 보던 하연이.
"아빠! 엄마가 우유 큰게통 사오래요.."
"뭐?"
"우유 큰게통!"
이해가 되지 않아 쪽지를 들여다 보았다.
"우유 큰거 1 통"
"1"자가 "거"자에 많이 붙어 있어서 하연이가 "게"자로 잘못 읽은 것이었다.
"우유 큰거 한 통이라고 써있잖아!"
"아니예요.. 우유 큰게통이에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하연... 어느덧 우유코너에 왔다. 그 동안 조용하던 예연이 초콜렛 우유를 보자 사달라고 조른다.
"안돼! 엄마가 적어준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안 사! 그리고 저건 너무 커!"
"예, 알겠어요."
요즘 두 애들의 화두는 순종이다. 아빠말에 순종하는 것을 재미로 여기는, 그리고 서로 충성경쟁을 하는 관계로 대체로 아빠말 한 마디에 "예, 알겠어요"라고 대답하며 금새 순종한다.
하연이와 함께 상의해서 우유를 한 통 사고, 계란을 산 뒤, 마지막으로 오렌지 주스를 사러 갔다.
"아빠! 저거 사야되요. 전번에도 샀었어요."
하연이가 가르쳐준 대로 주스를 고르자 험난한 장보기가 끝났다.
두 아이들을 데리고 짐을 양손에 들고 차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에도 목청껏 "물이 바다 덮음같이~~~"를 외쳐대는 아이들과 함께 나도 소리높였다.
오랫만의 장보기... 예전에는 멋모르고 따라와서 이것저것 사달라고 조르기만 하던 하연이와 예연이가 이제는 장보기 프로젝트의 파트너로서 당당하게 성장한 것을 경험한 뿌듯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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