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복을 받을 자와 저주를 받을 자

Thus says the Lord:
“Heaven is my throne,
and the earth is my footstool;
what is the house that you would build for me,
and what is the place of my rest?
All these things my hand has made,
and so all these things came to be,
declares the Lord.
But this is the one to whom I will look:
he who is humble and contrite in spirit
and trembles at my word.
“He who slaughters an ox is like one who kills a man;
he who sacrifices a lamb, like one who breaks a dog's neck;
he who presents a grain offering, like one who offers pig's blood;
he who makes a memorial offering of frankincense, like one who blesses an idol.
These have chosen their own ways,
and their soul delights in their abominations;
I also will choose harsh treatment for them
and bring their fears upon them,
because when I called, no one answered,
when I spoke, they did not listen;
but they did what was evil in my eyes

and chose that in which I did not delight.” (Isaiah 66:1-4, ESV)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타락 가운데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인간들, 한 사람도 빠짐없는 모든 인류 중에서 하나님께서 "돌아보실" 자들, 즉 그분의 복을 받을 자들은 그분 앞에서 겸손하고 통회하며 그분의 말씀에 대해 왕의 말씀으로 받고 경외함으로 떠는 자들(he who is humble and contrite in spirit and trembles at my word)이다.
반면에 그분의 저주를 받을 자들에 대해서는 길게 서술되어 있는데, 그들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시는 일을 즐겨하는 자들이며, 따라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다. 주목할 것은 그 저주받을 자들이 교회와 담을 쌓고 사는 자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He who slaughters an ox is like one who kills a man;
he who sacrifices a lamb, like one who breaks a dog's neck;
he who presents a grain offering, like one who offers pig's blood;
he who makes a memorial offering of frankincense, like one who blesses an idol.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소와 양(매우 값비싼 재물)을 드리고 곡식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분향을 드리는 자들이다. 예배에 열심이 있는 자들이고 나름대로 헌신된 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태도, 그리고 그들의 일상의 삶은 가증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숫소를 잡아 하나님께 드리지만, 그들의 삶은 살인(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무시)하는 자들이다. 혹은 직접 살인하지 않더라도 살인하는 자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마음이 없는 것과 동일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양을 드리지만, 그 드리는 양에 안수하면서 자신의 죄를 통한히 여기고, 주님 앞에 눈물로 사죄하기 보다는 마치 당시 유대사회에서 가증한 동물인 개의 목을 꺾는 것과 같이 무심하고 의미 없이 예물을 드린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예배 행위, 종교 생활에는 매우 열심이 있는 자들이고, 누가 보던지 거룩한 자들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자들이지만, 실재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는 예배와 삶을 드리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돌이키시기 위해 여러번 말씀하신다. 그들을 부르셨지만, 아무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의지적으로 그 악행을 지속한다.

because when I called, no one answered,
when I spoke, they did not listen;
but they did what was evil in my eyes

and chose that in which I did not delight.

그런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증오하신다. 그리고 심판하신다.

교회에서 내가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는 그런 "신앙인" 혹은 그리스도인인가? 나의 열심이 보통 수준을 넘어섰고, 내 헌신으로 교회가 부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런대로 쓸만한 신자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진정으로 예배에 임하는 자신의 자세와 교회 밖에서의 자신의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겸손(내 주장을 모두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인 권위를 부여하며 그 말씀에 따라 사는 것)과 통회(자신의 죄와 죄의 본성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삶속에서 닮아가지 못한 것에 대한 아픔으로 가슴을 찢는 회개), 그리고 말씀을 사랑하며 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왕의 마음을 알고 왕의 뜻을 알아 경외함으로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있는지를 철저하게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열심이, 그 교회 안에서의 열심이 오히려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이될 가능성이 많다. 

오늘 말씀을 읽으며 참으로... 참으로...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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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생각을 따라..."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사 65:2)

하나님께서 정의하시는 죄. 그것은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 죄가 드러나는 현상이라면, "자기 생각을 따라"는 죄의 원인이며, 죄의 본질 그 자체이다. 즉 죄는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을 따라 사는 것으로서, 그것은 반드시 옳지 않은 길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국정원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명박 정부의 안하무인식의 통치의 결과이다. 자신만 옳기 때문에 대화를 거부하고, 자신이 제시하는 (내가 보기에는 지극히 천박하며 반국가적인) 비전이 절대적으로 옳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법질서나 규칙은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우리 속담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으로(내가 우리 속담 중에서 제일 싫어하는 속담이다) 온갖 불법을 자행한 결과 썩어 문드러진 정부의 치부 중 지극히 일부가 드러나는 것이다. 지극히 부끄러운 일, 불법을 자행하고도 스스로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떳떳이 말하는 그 조직의 수장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온갖 죄를 짓고, 더러움가 가증함에 찌들어 있으면서도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가증한 이스라엘과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밤을 지내며 돼지 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것들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사람에게 이르기를 '너는 네 자리에 섰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라.'하나니, 이런 자들은 내 코의 연기요, 종일 타는 불이로다."(사 65:4-5)

말씀대로 그들의 행위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되어야 마땅하다. 불법을 행한 자들, 거짓을 일삼고, 권력에 의지해서 국민을 우롱하는 자들은 처벌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국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자라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는 이유가,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그분의 뜻에 순종할 수 있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죄로부터 벗어나는 삶이며, 죄로부터 벗어나는 삶이 거룩한 삶이고, 거룩한 삶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고,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 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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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라.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라.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사 64:5-9)

You meet him who joyfully works righteousness,
those who remember you in your ways.
Behold, you were angry, and we sinned;
in our sins we have been a long time, and shall we be saved?
We have all become like one who is unclean,
and all our righteous deeds are like a polluted garment.
We all fade like a leaf,
and our iniquities, like the wind, take us away.
There is no one who calls upon your name,
who rouses himself to take hold of you;
for you have hidden your face from us,
and have made us melt in the hand of our iniquities.
But now, O Lord, you are our Father;
we are the clay, and you are our potter;
we are all the work of your hand.
Be not so terribly angry, O Lord,
and remember not iniquity forever.
Behold, please look, we are all your people. (Isaiah 64:5-9, ESV)

하나님의 은혜는, 기쁘게 공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길에서 서서 하나님을 기억하는 자를 기뻐하시는 내 하나님을 오랫동안 의지적으로 거역하여 징벌을 받는 자, 생각에서, 그리고 삶의 방식에서 부정한 자가 되어 누더기같은 의를 입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영적 생명이 말라 비틀어진 잎사귀처럼 되어, 세속의 바람에 힘없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가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그런 자가되어 주님의 가장 큰 형벌인 "신적유기(내어버려두심)"을 당하는 가운데 소멸을 향해 속절없이 떠내려 갈 때, 바로 그 때 우리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간절하고 진심이 담긴 한 마디의 고백 "하나님!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십니다."라는 고백 하나에 마음을 돌이키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5장에서 탕자의 비유를 들어 너무나 적확하게 표현하신 그 하나님. 내 아버지...

아버지의 그런 은혜 때문에 이 세상이 존속하고, 죄인 중의 괴수인 내가 이 땅에서 호흡하며,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수 있는 것...

그 은혜의 크기를 내가 가늠할 수 있을까?

그저 그 앞에 무릎꿇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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