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19금 물품


최근 온라인 마켓에서 19세 이하에게는 팔 수 없는 일명 "19금" 제품 하나를 샀다.
그것은 바로...

"레이저 포인터"

온라인 마켓에서 레이저 포인터를 검색했는데, 사진들이 온통 빨간 동그란 원 안에 19가 써진 사진들 뿐이어서 순간 당황했다.

"내가 뭘 잘못 입력했나?"

다시 해 봐도 똑 같이 19금이어서 성인 인증하고 들어가 봤더니, 모두 "레이저 포인터"...
이게 왜 19금일까?

아이들이 레이저 포인터로 장난치다가 실명위기까지 가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이 있지만, 그래도 19금은 좀... 너무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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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같은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은 왜 부활후 바로 승천하시거나, 아니면 전과 같이 제자들과 함께 하시지 않고 가끔씩 그들 가운데 나타나기만 하셨을까?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여기서 어머니처럼 자상하신 예수님을 본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은 예수님의 지상사역의 매듭이었고, 그 이후의 사역은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의 사역이며, 그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교회의 사역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적어도 마지막 때까지는 전에 계시던 방식으로 이 땅 가운데 계시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린 새끼를 두고 둥지를 떠나지 못하는 어미새처럼, 예수님은 지상에 남겨진 제자들을 권념하시고 그들을 도우신다.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고 보혜사이신 성령과 함께 해야하기 때문에 그들과 늘 같이 계시지는 못하지만, 그들에게 종종 나타나셔서 그들의 믿음을 도우신다. 성령강림의 그 날까지 예수님께서 그들을 붙들고 도우시는 것이다.

특히 베드로에 대하시는 예수님의 태도는 참으로 온유하며 자상하다. 가룟인 유다만큼이나 예수님께 죄를 범한 베드로. 마음은 예수님과 함께 하고 싶었지만, 육신의 연약함으로 두려움 가운데, 예수님과의 관계를 완전하게 (= 세 번) 부인했던 그가 예수님께 가진 무거운 죄책감과 그 스스로에게 가졌을 자괴감으로 깊은 고통 가운데 있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한 번도 직접적으로 그를 책망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그 일 자체를 언급하지도 않으신다. 다만 그에게 나타나시며, 당신의 살아계심과 하나님되심을 드러내 보여주실 뿐이다. 그가 믿음을 일고 자포자기하는 가운데, 그를 짓누르는 죄책감 속에서 유다처럼 자살을 하거나, 아니면 믿음을 포기하고 떠나버리지 않도록 그를 붙잡아 주신다. 방황하는 베드로의 영혼이라는 배의 닻(anchor)이 되어 주셔서, 그를 도우신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먹이시며, 세 번(= 완전하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면서 그의 마음 중심에 자리잡은 죄책감과 자괴감을 꺼내어 치료하신다. 온유함 가운데 묻어나는 베드로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 그것이 바로 베드로를 치유하였고, 나중에 성령강림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위대한 제자로 성장하게 만든 것이다.

내 인생을 살면서 베드로보다 훨씬 더 큰 죄악으로 예수님을 부인하고 대적한 적이 있다. 변명을 하자면 여러가지로 변명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어버린 그 일들은 나를 늘 짓눌러 왔다. 하지만, 베드로와 제자를 대하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참 감사드리게 된다. 예수님은 당장 죽어 마땅한 나를 참으시고, 기다리시고, 먹이시고, 그리고 온유함으로 내게 말씀하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대답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난다.

어머니같이 자상하고 온유한 예수님의 사랑. 정말... 놀랍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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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 you..."

주일이었던 어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가던 큰 딸이 나에게 인사했다.

"See you next weekend!"

주 중에는 아침에 아이들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집을 나서고, 밤에는 잠자리에 들고서야 집에 오는 아빠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의 표현인지, 아니면 그냥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주말에 보자고 한 말인지... 마음 속에서 순간적으로 의문이 들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스쳐지나 갔다.

초임 교수로서, 해야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상황 가운데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자 주 중에는 새벽에 나가고 하루 종일 연구실에 쳐박혀서 수업준비, 연구를 열심히 하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간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보통 14시간에서 15시간. 그에 반해 주중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7시간 정도.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 그리고 주일 종일을 아이들에게만 집중하며 같이 시간을 보내지만, 아이들에게는 그 정도는 너무나 부족한 시간일터...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나를 가장 필요로 할 때가 지금이고, 앞으로 6-7년이 지나고 나면 아빠는 뒷전이고 자신들의 삶을 찾아 바쁘게 살아갈텐데... 내가 하는, 혹은 해야하는 일과 아이들과 함께하는 그 시간의 균형을 맞추기는 쉽지가 않다.

현재로서는 주중에 아침에는 새벽에 나가더라도, 저녁식사는 같이하며,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적어도 당분간은 실현이 불가능한 꿈인 것 같다.

하나님께서 능력 없는 자를 붙드셔서 지적생산성을 현격히 높여 주시기만을 바랄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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