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시는 공동체?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것은 성경에 선포된 것이고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내가 속한 믿음의 공동체의 머리도 그리스도가 되셔야 한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주인이 되셔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내 교회, 내 신앙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다고 해서, 모여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공부한다고 해서, 그분이 공동체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야 할 것 같은데... 당연히 주님의 공동체여야 할 것 같은데... 실상 이 땅 가운데 있는 믿음의 공동체의 모습을 볼 때,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되신 것이 맞는지 의심이 들 때가 "정말" 많다.

진정으로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신 공동체라면 어떤 모습일까? 누가 보든지간에,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 당신께서 당신의 공동체라고, 당신이 주인되시는(정확히 말해서 주인대접 받으시는) 공동체라고 인정하시는 공동체는 어떤 특징들을 가지고 있을까?
내 스스로 자주 질문하고 묵상하지만, 사실 나도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묵상하는 가운데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서 주인대접을 받으시는 진정한 주님의 공동체는 주님의 종들이 사역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섬기는 모든 자들이 철저하게 주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만을 구하는 가운데 순종하는 공동체라는 것이다.
섬기는 자들이 진정으로 종이 되어 있을 때만 주님은 주님으로 대접받으실 수 있다. 이 점은 신앙공동체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점이다.

최근에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영적 리더들을 선발하고 있다. 절차는 간단하다. 현재 영적 리더로 섬기고 있는 지체들이 일정기간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 그리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는 확신이 있는 지체들만, 부장인 나에게 추천한다. 그 추천을 받는 나 또한 일정 기간 동안 기도하는 가운데 추천된 지체들이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자들인가를 점검한다.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는 확신이 없다면 리더로 설 수 없다. 부장인 내가 일정기간 기도하면서 구하는 가운데 분명한 확신이 드는 지체들에게 개별적으로 통보하여 그들로 하여금 다시 일정기간 동안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여쭤보게 한다. 그 기간 동안 해당 지체들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부장인 나를 포함해서--그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고, 상의할 수 없다. 순전히 개인이 하나님과 독대하는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분명한 부르심의 확신이 있어야만 한다. 그 부르심의 확신이 있는 사람만 영적 리더로 섬기겠다고 답변할 수 있다. 부장인 나에게 통보하는 것으로 모든 절차가 끝난다. 그 어느 경우에도 설득이나 권유는 없다.

이 프로세스는 내가 부장으로 섬기면서 정착시킨 것이다. 이 프로세스의 핵심은, 하나님의 뜻이고, 그에 대한 순종이다. 그것은 우리 공동체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이다.

현재 기존의 리더들이 해야할 일들이 모두 끝나고 이제는 내가 기도하는 차례다. 청년부를 섬기고 있는 부장으로서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이 과정 중에서 내 생각, 판단, 경험, 선호함을 내려 놓는 것이다. 누군가를 미리 생각하거나, 필요한 리더의 숫자를 미리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데 있어서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내 안에 먼저 내려 놓는 작업이 되지 않으면 기도할 수가 없다. 사실 기도의 많은 부분은 나로 하여금 내 생각을 내려 놓도록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보기에 좋은 사람, 내가 보기에 할 만한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리더로 선발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공동체에서 일할 하나님의 종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사람을 심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이 공동체는 더 이상 하나님의 공동체가 아니라 내 공동체가 된다. 내가 사역하기에는 편할지 모르지만, 이미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할 수가 없게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될 경우, 섬기는 사역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 되어버릴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그 엄청난 짐을 나 혼자 지고 가야 한다.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이 공동체를 섬기는 짐을 질 능력이 없는 자라는 것을 너무 잘 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직접 일하셔야만 하고, 나는 그분의 종으로서 시키시는 대로 할 뿐이다. 나에게는 이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 없다. 그분이 책임을 지시고, 나는 비서로서, 종으로서 그냥 그분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나는 지금까지 그런 자세로 공동체를 섬겨왔다.

나는 내가 섬기는 청년부가 내 공동체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내 것을 내려놓는 작업을 철저하게 진행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물론 인간이기 때문에 100% 그렇게 될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내려 놓는 가운데, 주님의 뜻을, 내 시각으로 왜곡되지 않은 순전한 뜻을, 받기를 간절이 원한다.

늘 그렇듯이 내 것을 내려 놓는 것은 고통이 수반된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내가 져야할 나의 십자가이다. 그리고 사실 그것만이 내가 우리공동체를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것만 제대로 된다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다 하신다. 그분이 주인이시기 때문에... 내가 지는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이 우리 공동체의 주인으로 인정될 수만 있다면, 나는 기쁘게 그 십자가를 지겠다.


리더를 선발하는 이번 프로세스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시는 리더들이 세워지기만을 간절히 기도한다.

용서..

언젠가... 차를 타고 가면서 들은 미국 기독교 방송에서 한 목사님이 설교 중에 용서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참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용서
1. 용서를 해주는 사람이 용서를 구하는 사람에게 다시는 그 잘못에 대해서 상기시키지 않고 언급하지 않는 것.
2. 용서를 해주는 사람이 제 3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자의 잘못을 언급하지 않는 것.
3. 용서를 해 주는 사람 자신이 스스로 용서를 구하는 자의 잘못에 대해 기억하지 않는 것.

한 마디로 말해서 용서를 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잘못을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으로서는 참으로 하기 힘든 용서..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완벽하게 이 용서를 실천하신다. 그것이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주님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해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나를 완벽하게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용서... 그 용서를 따라가는 내가 되기를 기도할 뿐이다.

공짜전화 쓰는 법...

미국 내에서 공짜로 전화 쓰는 법.

1. Google voice에 가입하여 invitation 신청을 한다. (아니면 google voice를 이미 쓰고 있는 사람에게 invitation을 달라고 요청한다.)
2. Google에서 invitation e-mail이 오면 가입하고, 번호를 받는다. 오스틴의 지역번호인 512는 내가 가입할 때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지금은 다 나간 듯... 그럴 경우 가까운 도시의 지역번호가 있는 전화번호를 받는다.
3. Gizmo5에 가입한다. Gizmo5는 Skype와 비슷한 프로그램이다. MSN메신저처럼 컴퓨터와 컴퓨터를 무료로 통화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일반 전화로 전화하는 경우는 요금을 내야 한다.
4. Gizmo5의 Desktop용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난 후 로그인을 한다. 그리고 나서 "Edit"메뉴에서 "My Profile"을 선택하면 Sip Number칸에 1로 시작하는 11자리 숫자(전화번호와 비슷)를 볼 수 있다. 그것을 기록해 둔다.
5. Google Voice에 로그인해서 "settings"를 클릭하면, 거기에 Google Voice로 걸려 오는 전화를 forward할 수 있는 번호들을 등록하는 곳이 있다. (최소한 한 개는 집전화나 핸드폰 전화를 입력해야 한다.) "Add Another Phone"을 클릭한 후, "Number"에 Gizmo5 Sip Number중 1을 제외한 10자리 숫자를 입력한 후 "phone type"에서 Gizmo를 선택한다.
6. 다른 전화도 등록한다. 여러 전화를 등록할 경우, Google Voice의 전화번호로 걸려오는 모든 전화를 등록된 모든 전화에서 동시에 울리도록 할 수도 있고(이럴 경우 먼저 아무 곳이나 받으면 다른 곳은 벨이 정지한다.) 지정한 한 곳에만 울리도록 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컴퓨터를 통해서 미국 내의 모든 전화에 전화를 걸 수도 있고, 컴퓨터로 받을 수도 있다. 모두 공짜이다. 내 경우에는 핸드폰을 prepaid phone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전화 요금 절감에 큰 도움이 된다. 100불에 1000분을 1년 동안 쓸 수 있는 것으로 구입하여, 특별한 경우에만 핸드폰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거의 google voice로 해결한다. 약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450분 정도를 사용했기 때문에 많이 경제적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smart phone을 사용하는 사람은 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인터넷만 연결하도록 한다면, google voice를 사용하여 전화로도 쓸 수 있다. 이를 위한 smart phone으로 가장 적합한 것은 google에서 나온 "안드로이드"이다.

내 경우에는 내 핸드폰과 컴퓨터, 그리고 집전화를 등록해 두었다. 누군가 구글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면, 세 곳에서 동시에 울린다. 내가 도서관의 방에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경우에는 주로 컴퓨터로 받는다.(완전 공짜) 혹시 밖에 나가 있을 때면, 핸드폰으로 받는다.(이럴 경우에는 핸드폰 사용시간 만큼 minute이 떨어진다는 것을 주의할 것.), 그리고 집에 있을 때는 집에서 전화를 받는다. 따라서 아는 사람들에게 한 개의 전화번호만 알려주면 어디서든지 나는 전화를 받을 수가 있다. 이것이 Google Voice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이다.

참고로, 나는 집에서 쓰는 Google Voice번호가 따로 있다. 집에 그 번호를 두는 이유는, 위에서 설명한대로 1-6번까지 새로운 번호를 등록하고 나서 Linksys PAP2라는 20불 정도 하는 작은 기계를 구입하여 세팅을 잘 맞추면(쉽지 않다..) 집에서 컴퓨터를 켤 일이 없이, PAP2에 일반 전화를 연결하여 미국내 어디에든 전화를 공짜로 무제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전화를 무료로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집에 설치한 지 약 한 달 정도 지났는데, 아직까지는 만족스럽다. 특히 집전화인 ATT전화가 시내통화 밖에는 안되는 전화이기 때문에, 512가 아닌 다른 전화로 할 때는 이 전화를 사용한다. 조금 더 써보고 만족스러우면 집전화를 없앨 계획이다.

혹시 생각이 있으시면 시도해 보시길...

100번째 글을 쓰며...

지난 주 토요일 청년부 말씀을 전한 뒤, 한 형제가 말했다.

"작년에 하셨던 말씀과 하나도 다르지 않게 말씀을 전하시네요..."

말씀의 주제는 이성교제와 결혼이었고, 일년에 가을 즈음에 꼭 한 두 번의 말씀을 그 주제로 다룬다. 내가 전하는 말씀은 매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다시 반복하지 않는데, 이성교제와 결혼에 관한 말씀은 매년 같은 말씀으로 전한다.
사실 전에 말씀을 전한 이후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므로 이번에 전할 때 뭔가 수정할 것이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 보았지만, 몇 가지 예들을 업데이트한 것을 제외하고는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 없었다. 말씀을 전하기 전에 이 점을 분명히 했고, 작년에 열심히 듣고 기억하고 있었던 그 형제가 역시나 똑 같은 것을 알고는 나에게 장난식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말씀전하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는 말씀을 전할 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고민한다. 그리고 내 생각과 내 지식과 경험이 그 진리를 왜곡시키지 않도록 기도하고, 또 주의한다. 사실 아무리 그렇게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부족한 자이기 때문에 진리가 왜곡될 여지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하나님께 구한다면, 큰 문제가 없이 진리를 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설교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진리의 속성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전하는 말씀이 진리라면, 그것은 몇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물론 그 진리를 적용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많은 변화가 있을 수 있겠지만, 메시지의 핵심은 늘 동일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진리가 기반을 두고 있는 말씀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1년이 지난 후에도 수정할 것을 찾지 못한 것이 어찌보면 나에게는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이번 글로서 100번째 글을 쓰게 된다. 글을 쓰는 동기는 참으로 다양하다. 사실 이 블로그에서도 단 한 가지만의 이유로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내 안의 깊은 고민을 글로 씀으로써 정리해 나가기 위한 목적도 있고, 때로는 내 개인사의 중요한 기록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때로는 이 세상을 사는 잡담에 가까운 가벼운 이야기들을 남기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이 모든 목적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내 신앙의 동역자들에게 내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묵상을 나누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셔서 함께 주님의 일을 하다가 지금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믿음의 동역자들, 그리고 지금 나와 함께 주님의 일을 도모하는 내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내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들을 나눔으로써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그 목적이 달성되고 있는지 나로서는 전혀 알 수 없다. 반응들이 없기 때문에... 하지만 그 소망을 가지고 시작한 글들이 그들에게 어떤 모양으로든 도움이 되기를 기도한다.

며칠 전에 이 블로그가 아니라 교회의 칼럼에 올린 내 글들을 읽어볼 기회가 있었다. 그 글들을 읽으면서 많은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았다. 자신이 쓴 글에 자신이 감동하는 것을 보면, 웬지 푼수같다는 느낌, 자화자찬 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사실 내가 쓴 모든 글들이 나로 하여금 감동과 은혜를 주는 것은 아니다. 내 개인의 생각, 내가 알고 있는 지식에서 쏟아져 나오는 글들은 대부분의 경우 내 낯을 뜨겁게 한다. 세월이 이 만큼 지난 지금에 돌아 볼 때, 그 생각과 감정들이 얼마나 유치했는지, 그리고 그 지식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천박한 것이었는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 글들을 보면 당장 지우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내 마음에 은혜와 감동을 주는 나의 글들은, 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글들이다. 나는 글을 쓸 때, 내 안에서 글을 써야만 한다는 강력한 drive가 있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 마치 예레미야가 경험했던 것처럼, 그 글을 쓰지 않으면, 내 마음이 터져버릴 것 같고, 마음이 불붙는 것같은 것을 경험할 때가 있다. 내 안의 묵상과 생각들이 차고 넘치며 주님으로부터 주어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마치 누군가의 말을 받아 적듯이 그것들을 쏟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고 내 글들이 성경 수준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그 글을 왜 써야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쏟아 내지만, 후에 알게 된다. 그 글이 나뿐만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를 위한 글이라는 것을...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고, 나를 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나에게 지금까지도 감동을 주고, 은혜를 끼치는 글들은 거의 대부분이 그런 글들이다.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닌, 내 안에 차고 넘쳐서 쏟아 낼 수 밖에 없는 묵상들... 그래서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글들... 그 글들이 지금까지 나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진리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로서는 도저히 만들어 낼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는 진리이지만,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신 글들이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신앙 안에서 더 성숙해지고, 많은 지식이 더해진 지금 그 글을 쓴다 하더라도 더해지거나 덜해질 것이 별로 없는 그런 글들이 바로 진리에 기반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런 글들로 이 블로그를 가득 채우는 것이 내 소망이다.

그 글들로 인해서 내가 은혜받을 뿐만 아니라, 내 사랑하는 동역자들에게 그 은혜를 나누고, 또한 먼 미래에 다시 그 글을 읽을 내 자신에게 동일한 은혜를 끼치는 그런 글들을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