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분위기

어제, 사무실을 다시 배치했다. 
창고 분위기가 나던 것을 연구실 분위기로 바꿨다. 가구와 모든 것을 새로 배치해서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 되었다.
무엇보다 창문으로부터 불어오는 바깥 시원한 바람이 직접 나에게 오도록 해서 좋다. 그리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바로 숲이 보이고 하늘이 보이는 것이 좋다.

공부 열심히 해야지...

그리움...

문득... 어스틴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

내 삶을 풍요롭게하고 감사하게 만들어 줬던 고마운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
평생에 남을 내 추억의 커다란 일부는 바로 그들과 만들어 갔던 기억들이 아닐까?
모두가 사랑스럽고, 모두가 보고 싶다.


그 사랑하는 영혼들 중에 특히 한 사람이 많이 보고 싶고 생각난다.
맑고 깨끗한 가운데 유난히 상처가 많던 그 영혼...
순수한 그 마음에 세상의 풍파가 큰 생채기를 많이 냈지만, 그 순수함만은 결코 잃지 않았던 그 영혼...
비틀거리면서도 주님을 붙잡고, 결코 그 분을 부인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영혼...
악에 둘러 싸임으로 그 자신도 악이 될 여지가 충분히 있었지만, 그 거대한 악 조차도 어떻게 할 수 없었던,그 중심 깊숙이 선함을 가지고 있던 영혼...
여러모로 성숙함에도 불구하고, 천진난만한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던 영혼...

그를 생각할 때마다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내 마음을 가득가득 차고 넘친다. 도와주지 못하고, 품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큰 상처만 주었기에...

생면 부지의 땅에서 홀로 하루 하루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을 그를 생각한다.

주님의 은혜가 그와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돌보심이 그와 늘 함께 하시기를...
그의 인생 끝날 때까지 주님이 그의 친구가 되어 주시기를...
주님으로 인해 그의 입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기를...
주님의 말씀이 그 영혼에 생수처럼 쏟아지기를...

정말 그렇게 되기를... 기도한다.

.

능력 없는 자의 비밀

능력이란 남이 할 수 없는 일을 해 내는 것과 남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같은 일을 더 적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해내는 것 두 가지를 포함한다. 대단하고 큰 일은 고사하고 사소한 것 하나를 제대로 해내지 못해서 낑낑 거리며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내 능력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아침부터 나와 서 밤늦게까지 집에 가지 못하고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서 일함에도 밤에 오피스를 나가면서 느끼는 것은 뭔가를 이루었다는 뿌듯함이 아니라, 하루 종일 한 것이 없다는 절망감이다.


흔히들 여자에게 외모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 남자에게는 능력이라고들  말한다.(여자에게 능력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남자로서 정말 보잘 것 없는 자인 것이다. 열심히 일하면 일 하는 만큼 뭔가를 얻고 이룩해 내는 개미보다도 못한 자가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 물밀듯이 밀려오는 것이 자괘감, 혹은 자기 모멸감이다. 그리고 그것을 뒤따라 오는 것은 절망이다.


하지만, 다행히 내 경우에는 자기 모멸감과 절망은 오래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내 자신의 자존감이 내 능력이나 소유, 혹은 성취나 내 자신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1992년 어느 날 서울대 총장잔디 근처의 벤치에서 이미 던져 버렸다. 내 자존감은 내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있다. 그분이 내 자존심의 근거이다.


사실, 나는 내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길로 들어섰다. 다른 것은 잘 할 수 있지만, 공부만은 잘 할 자신이 없었던 나를 그 길로 부르신 것이 하나님이셨다. 그분의 부르심만을 좇아서 여기까지 왔다.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길로 들어 섰기 때문에, 내 능력으로는 매우 작은 것 하나도 이룰 수 없었다. 나는 그저 그 자리에 있었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열심히 살았을 뿐이었다. 내 능력과 성취의 크나큰 간극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우셨다. 그리고 그 성취를 내 대신 이뤄 주셨고, 그 성취를 마치 내가 이룬 성취인양 포장해 주셨다. 그것이 바로 내가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였다.


내 능력에 대한 절망은 날마다, 매 순간마다 일어나는 것이라 하나도 새롭지 않다. 하지만 지금도 놀라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지금쯤이면 적응이 될만도 한데, 그게 아니다. 그분의 역사와 능력은 늘 내 기대를 뛰어 넘는다. 그게... 참 재미있다. 경험해 본 사람만 아는 것이다. 비밀이다.

.

신광현선생님 1주기 추모식



오늘 2011년 7월에 작고하신 신광현선생님 추모식이 있었다. 80학번으로서 나보다 9년 선배이신 선생님. 한창 나이에 위암으로 운명을 달리하신 선생님을 기억하며 그분의 죽음을 언타까와하는 분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보면서 그분이 어떤 인생을 사셨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정승의 개가 죽으면 사람들이 몰려와도 정작 정승이 죽으면 아무도 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분을 기억하는 자리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슬퍼하는 것은 그분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리라.
서울대에 교수로 처음 부임하셔서 개설하셨던 첫 전공과목인 중세영문학시간에 보여 주셨던 학자로서의 매력, 모든 여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요 남학생들의 감탄의 대상이었던 그 옷맵시와 멋 그리고 훤칠한 키(그 당시 과 사무실에서 일하시던 결혼한 여직원분이 '그분을 볼 때마다 가슴떨려서 말 한 번 못 걸어 봤다'고 했었다.), 친형같은 푸근함으로 감싸 안으시던 그 따뜻한 마음, 티없는 소년같았던 해맑음, 그러면서도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 겸손함, 압구정동이 집이고 교수로 부임하자마자 중형차를 타시던 부유한 집안의 배경을 결코 부인하지 않으셨지만 그 온 몸에서 느껴졌던 소탈하심. 그 모든 것이 주변 사람의 감탄의 대상이었고, 그로 인해 그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 모든 것 보다도 그분이 가졌던 학문과 세상을 향한 치열한 고민과 탐구, 그리고 인간을 향한 크신 사랑이 바로 모든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아닌가 싶다. 그분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분의 수업을 통해서 지식 뿐만 아니라 인간을 배우고 사랑받았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것이 학생들을 다른 차원의 삶으로 인도했던 것이다.

오늘 추모사에서 인문대 학장이신 배영수 선생님께서 하신 "여운"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가 남기고 싶어서 남기는 그것이 아니라, 내가 떠난 자리에 자연스럽게 남아 있는 여운. 그것은 어떤 것일까? 어떤 것이어야 할까?
그리고 사랑. 학생들에 대한 애정. 그것이 대학에서 가르치는 자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에게는 쉽지 않은 참으로 큰 도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