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없는 자의 비밀

능력이란 남이 할 수 없는 일을 해 내는 것과 남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같은 일을 더 적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해내는 것 두 가지를 포함한다. 대단하고 큰 일은 고사하고 사소한 것 하나를 제대로 해내지 못해서 낑낑 거리며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내 능력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아침부터 나와 서 밤늦게까지 집에 가지 못하고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서 일함에도 밤에 오피스를 나가면서 느끼는 것은 뭔가를 이루었다는 뿌듯함이 아니라, 하루 종일 한 것이 없다는 절망감이다.


흔히들 여자에게 외모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 남자에게는 능력이라고들  말한다.(여자에게 능력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남자로서 정말 보잘 것 없는 자인 것이다. 열심히 일하면 일 하는 만큼 뭔가를 얻고 이룩해 내는 개미보다도 못한 자가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 물밀듯이 밀려오는 것이 자괘감, 혹은 자기 모멸감이다. 그리고 그것을 뒤따라 오는 것은 절망이다.


하지만, 다행히 내 경우에는 자기 모멸감과 절망은 오래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내 자신의 자존감이 내 능력이나 소유, 혹은 성취나 내 자신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1992년 어느 날 서울대 총장잔디 근처의 벤치에서 이미 던져 버렸다. 내 자존감은 내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있다. 그분이 내 자존심의 근거이다.


사실, 나는 내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길로 들어섰다. 다른 것은 잘 할 수 있지만, 공부만은 잘 할 자신이 없었던 나를 그 길로 부르신 것이 하나님이셨다. 그분의 부르심만을 좇아서 여기까지 왔다.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길로 들어 섰기 때문에, 내 능력으로는 매우 작은 것 하나도 이룰 수 없었다. 나는 그저 그 자리에 있었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열심히 살았을 뿐이었다. 내 능력과 성취의 크나큰 간극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우셨다. 그리고 그 성취를 내 대신 이뤄 주셨고, 그 성취를 마치 내가 이룬 성취인양 포장해 주셨다. 그것이 바로 내가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였다.


내 능력에 대한 절망은 날마다, 매 순간마다 일어나는 것이라 하나도 새롭지 않다. 하지만 지금도 놀라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지금쯤이면 적응이 될만도 한데, 그게 아니다. 그분의 역사와 능력은 늘 내 기대를 뛰어 넘는다. 그게... 참 재미있다. 경험해 본 사람만 아는 것이다.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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