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꼭 3년 전인 2007년 7월 7일 (한국시간으로 7월 8일) 저녁 7시 30분경...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청년부에서 설교를 하고 있었다.
그 2주 전에 한국을 떠나온 터였다.
약 한 달 동안 폐암으로 치료를 받으시는 아버지와 함께 하며, 병원에 같이 다니고, 입원하셨을 때도 늘 같이 있었다. 너무 정정하셨고, 전보다 약간 야위셨다는 느낌 외에는 암환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그런 상태에 계셨다.
앞으로 1년 밖에는 더 사실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머나먼 미국으로 떠나 오면서, 혹시나 생전에 마지막 인사가 되지 않을까하는 불안한 마음에,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께 큰절로 작별인사를 드렸다. 당신 자신의 건강 상태가 그렇게까지 나쁜 것을 알지 못하셨던 아버지께서는 난데없는 셋째아들의 큰절에 흠칫 놀라셨다. 그런 아버지를 더 가슴아프게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아버지 앞에서 약간의 눈물을 보이고 말았고, 뒤돌아 떠나 오면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사실상 그것이 내 생애에 마지막 작별이었던 것이다. 정말... 그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줄은...
미국으로 떠나기 바로 직전에 아버지께서 기침을 하시다가 피를 토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의사의 말이 앞으로 일 년이라고 했으니 갑자기 나빠지시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고 아내와 아이들은 한국에 더 머물게 하고 혼자서 미국으로 향했다.
내가 미국에 온 직후, 아버지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하셨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셨다. 그리고 나서 바로 얼마 후인 토요일 오전,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하고 비행기편을 알아 봤지만, 주일 새벽에 떠나는 것 외에는 더 일찍 떠나는 것을 찾을 수가 없어서, 일단 청년부 토요예배는 정상적으로 드리고 그 다음날 새벽에 떠나기로 했다.
예배 시작 전... 당시 목자로 있던 정봉수 형제에게 교회로 전화가 온다면 꼭 받아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기도하며 예배를 시작했다.
말씀 도중 교회 사무실 전화벨이 울렸다. 봉수형제가 전화를 받으려고 뛰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의 임종을 알리는 전화일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고, 마음은 한 없이 슬펐지만, 전하던 말씀은 그대로 모두 전했다.
예배가 모두 마치고, 봉수형제가 다가왔다. 그리고 한국으로부터 아버지께서 임종하셨다는 연락을 받았음을 알려 주었다.
다음날 새벽...
비행기를 타고 가는 내내 아버지에 대해서, 그리고 죽음과 삶에 대해서 생각했다.
한국에 도착해서 바로 고속전철을 타고 광주로 내려가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영정--내가 떠나기 직전에 가족들과 함께 가서 찍은 그 사진, 장례식용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도 그것을 잘 알지 못하셨던 아버지를 보면서 가슴 아파 밖에 나가서 울었던 그 사진--앞에 무릎꿇고 통곡했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자의 아픔에 내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
평생 단 5분도 같이 앉아 다정한 말을 주고 받은 적이 없었던 아버지...
집안의 독재자, 고독자로 늘 혼자이셨던 아버지...
Next의 "아버지와 나"의 가사처럼, 아들과 다정하게 대화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셨던 전통적인 아버지...
평생 정이 없을 것 같았던 그 아버지의 임종이 나에게 그렇게 큰 충격으로, 그리고 상실로 다가오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역시 아버지는 아버지이셨다...
다행히 임종하시기 6개월 전에 그토록 싫어하시던 교회에 참석하시고, 세례를 받으시고, 믿음을 고백하셨다. 아버지 살아 생전에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내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그렇게 말리시고, 싫어하셨던 그 아버지와 함께 동생 교회에 앉아서 예배드린 장면이다. 나로서는 평생의 기도제목이요, 평생의 소원이었는데, 그 소원이 아버지께서 임종하시기 얼마 전에 이루어졌다. 기도하는 순서에도 아버지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고자 눈을 감을 수가 없었고, 찬송을 부르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주님께서 이루어주신 내 기도의 응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
가끔씩 하늘을 보며 아버지를 생각한다.
믿음의 고백이 분명하셨다면, 주님의 품에 안기셨을 그 아버지...
살아계실 때 보다도 더 가까이 느껴지고, 더 친숙해지신 아버지...
천국에서 반드시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는 아버지...
옛적 우리 선조들은 부친상을 당했을 때, 부친의 무덤가에 초막을 짓고 3년동안 무덤을 지키며 슬퍼하며 마지막으로 봉양하는 것을 자식의 도리로 삼았다. 현대를 사는 지금... 아버지의 무덤가에서 3년상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지난 3년 동안 동일한 마음으로 싸이 미니홈피 대문에 걸어 놓았던 아버지의 임종을 기억하는 글을 이제 내리며,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가슴에 담는다.
아버지께 생전에는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고백... 3년 상을 맞이한 오늘... 내 가슴에서 울린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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