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부터 14절까지의 짧은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 가서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경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그리고 15절부터 68절까지의 긴 구절들을 통해서는 그 반대의 경우,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 가서, 그 풍요함과 선진문명 가운데서 하나님을 망각하고 이방의 신을 섬길 경우에 그들이 받게 될 저주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너무나 큰 유혹을 받을 것이고, 정말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꼭 붙어있지 않으면 그들이 너무나 쉽게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것에 대한 경고이다. 그 경고의 강도가 예언된 저주의 강도와 같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엄중한 경고를 받았다. 하나님의 저주의 예언을 하나하나 생각할 때 몸서리치지 않을 만큼 두려운 말씀을 받았다. "만약 나라면" 절대로 하나님을 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만큼 그렇게 두려운 말씀을 받았다.
그런데 결과는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의 오래참으시고 돌이키시려고 하시는 그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 모든 저주가 그대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왜 그랬을까? 하나님의 저주가 두렵지 않았나?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일백 십세에 죽으매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산 북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삿 2:7-10)
사사기는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들의 타락의 원인은 "망각/무지"였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경험한 자들은 비록 불순종을 하고 불평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결코 전적으로 하나님을 떠날 수 없다. 그분이 얼마나 두려운 분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버린 이 세대는 바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경험하지 못한 세대였다. 그들은 무지와 망각 속에서 인간의 본성을 따라 살았으며,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금하신 모든 것을 행하는 불쌍한 민족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스라엘의 민족적, 세대적 경험은 바로 내 개인의 경험을 대리하는 경험이다. 다시말하면, 이스라엘이 그랬다면 나도 그럴 수 있다는 것. 아니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현재 속한 어스틴한인침례교회라는 믿음의 공동체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며, 그 앞에 겸손히 서 있는 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아래 겸손하게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내가 있는 교회의 공동체, 특히 청년부 공동체 안에 있으면, 그분은 내 눈 앞에서 실재로 살아계시는 분이며 나의 왕이시라는 것이 그 어느 다른 곳에 있을 때 못지 않게 쉽게 경험이 된다. 하지만 거기서부터 떠나 있을 때,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가 이 공동체에서처럼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나에게 닥칠 수 있는 위험은, 그분의 임재와 역사가 관념화되고, 신앙이 화석화되어가는 것이다. 말씀을 보지만, 그 안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할 때가 많고, 다른 많은 교회 내의 지체들의 신앙의 모습과 나를 "비교"하면서 내 스스로를 "그런대로 쓸만한" 믿음을 가진 자로 평가해 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럴 때가 가장 위험할 때이다. 그 때가 바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향해 달려갔던 그 때인 것이다.
우리는 정말 조심해야한다. 신앙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우러나는 dynamic함을 잃어버릴 때, 다시말해 "살아계신" 하나님, 현재 내 삶의 자리에 역사하신 하나님과의 지속되는 인격적인 관계의 역동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듣고, 그 앞에 무릎꿇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생활을 지속해 가지 않는다면,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과거 선조들에게 준, 그래서 나와는 상관없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서 나에게 주시는 엄위하신 주권자의 경고가 되지 않는다면, 내 삶에 우상숭배는 언재든지 가능하며, 사실, 이미 시작되었을 수 있다.
나는 오늘 진정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엄위하신 말씀 앞에 무릎꿇고 있는가? 그분께 매달리며, 나의 죄를 사해달라고 간청하며, 나와 동행해 달라고 모세처럼 간구하는가? 그리고 그분이 함께하시는 구체적인 증거가 내 삶 가운데 드러나고 있는가?
내가, 그리고 내 사랑하는 믿음의 동역자들의 삶 가운데, 그런 역사가 있기를 간절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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