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낙심할까 함이라(골 3:21)
Fathers, do not exasperate your children, so that they will not lose heart.(NASB)


내가 평생동안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께 가졌던 가장 서운한 것이 있다면, 어렸을 때의 한 사건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정도 되었을 때였다. 어느날 오후에 학교에서 집에 돌아 왔는데,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냥 집에 들어서는데, 바닥에 아버지의 수첩이 떨어져 있는 것을 봤다. 평소에 아버지께서 수첩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내 책상 서랍에 잘 보관해 두었다. 저녁에 아버지께서 오시면 가져다 드리고 자초지종을 설명드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친구분들과 한 잔을 하셨는지 그날 따라서 아버지는 늦게 오셨다.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그냥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고 있는데, 느닷없이 몸이 아파왔다. 깨어보니 아버지께서 나를 무작정 때리고 계시는 것이었다. 자다가 얼떨결에 얻어 맞았는데, 나중에 왜 때리시는지를 여쭤보자, 내가 아버지의 수첩을 내 서랍에 숨겼다고 오해하시고, 화가 나서 때리시는 것이었다. 내 평생 동안 부모님께 거의 맞아본 적이 없었는데, 일생을 다해 얻어 맞았던 것 보다 더 많이 맞았다. 어머니께서는 옆에서 아버지를 말리고 계셨지만, 아버지는 단단히 화가 나셨던 모양이다. 그 수첩에는 그날 아버지의 사업을 위해서 필요한 모든 정보가 들어 있었는데, 수첩이 없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신 것 같았다.
일단 늘씬 얻어 맏고, 아버지의 화가 좀 풀리셨을 즈음에, 나는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다.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듣고도 화를 그치지 않으셨다. 하지만 더 이상 때리지는 않으셨다. 내 기억으로는 내 볼에 입을 맞추고 볼을 비비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의 까칠한 수염의 감촉이 아직 내 볼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하지만 아버지는 나에게 사과하지 않으셨다. 미안해 하신 것은 이해하지만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것으로 인해 분노했고,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지만, 부당하게 당했다는 그 마음 때문에... 그 상처가 깊었던 모양이다. 아버지께서 미안하다는 말씀 한 마디만 하셨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텐데... 아버지에 대해서 다른 서운한 것은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그 때의 그 분노는 여전히 나에게 남아 있다. 이제는 그것에 대해 아버지와 이야기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아버지가 된 지금... 나는 아이들을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대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경험한다. 아이들은 아이들일 뿐... '뭘 안다고...'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가버리기가 참 쉽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아이들도 지각이 있고 생각이 있다. 부모가 부당한 행동을 하고도 자신에게 충분히 사과하지 않는다면, 그 아이들은 내면에 분노를 쌓게 된다. 성경에서 자녀를 격노케 하지 말라는 것은 아이들을 충분한 인격체로서 인정하고, 그 아이들을 부당하게 대우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항상 이 말씀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비록 완전히 자란 성인은 아니지만, 인격체이며, 그 자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늘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아무리 아이들 때문에 화가 나 있다 하더라도 그 아이들의 인격을 손상하는 말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 그들을 훈육하는 과정에서 그들 인격의 핵심을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것이 나의 철칙이다. 그리고 내가 어떤 이유로든지 그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을 때는 반드시 형식을 갖추어 진지하게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도 내가 지키고자 하는 원칙 중이 하나이다.


언젠가 하연이를 심하게 야단친 적이 있었다(무슨 일인지는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평소에는 내가 야단을 칠 때 하연이가 잘 순종하며 순순히 받아 들이는데, 그 때는 유난히도 반발이 심했다. 그로 인해서 내 언성이 높아져 갔고, 나는 매우 권위주의적인 자세로 복종을 요구했다. 하연이는 매우 억울해 하면서 내 힘에 못이겨 내가 원하는 대로 해 주었다. 잠시 후에 내가 잘못 알았음을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하연이가 매우 억울해 할 수 있고, 또 그 안에 분노가 자리잡았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연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아빠가 뭘 잘못했는지, 왜 그렇게 잘못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고 진지하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빠의 그 행동을 결코 좋게 보지 않으시고 책망하신다는 것을 하연이에게 알렸다. 착한 하연이는 아빠가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을 보면서 어쩔줄 몰라했다. 그러면서 아빠를 용서해 주었다. 우리를 포옹을 했고, 서로간의 사랑을 확인했다.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때로는 체면이 구겨지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하연이에게 내 잘못을 고백하고, 진지하게 사과를 할 때, 아빠로서의 권위는 더 굳건해진다고 믿는다. 아빠로서의 내 권위는 내 지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리 위에 서 있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내가 진리 위에 서 있지 못할 때는 그 잘못을 충분히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권위를 더 세우는 일이다.


또한 아이들이 자신이 부당하게 대우 받았다는 느낌 가운데 그 상처를 가지고 오랫동안 고통하는 것은 부모인 나로서도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내 자존심을 꺾고 내 아이에게 내 잘못을 충분히 인정하고 사과함으로써 그 아이들 영혼이 건강해 질 수 있다면, 내 자존심 따위는 내게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내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내가 못할 것이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 내가 아버지이지만, 그래서 가장의 권위가 내게 있지만, 아빠인 내가 순종하고 더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어른인 내가 어린 아이들에게 사과를 하는 것도, 나로 하여금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게 하는 것도, 그리고 아빠임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에게 사과를 하는 것도 모두 아빠의 권위보다 훨씬 높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임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그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중요성을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다. 아빠도 순종하는 그 하나님의 말씀... 자신의 부당한 대우를 바로 잡아주는 그 공의로운 말씀이라는 인상이 아이들에게 깊게 심어질 때, 나중에 아이들이 그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분명히 다를 것이라는 것. 그것이 내가 가진 생각이다.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이다. 그 말씀에 내가 순종할 때, 나와 내 가족이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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