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대학사회에서 몇 년 간 생활하면서 느낀 것 한 가지... 누구나 상식, 정의, 희생을 외치고, 또 내가 힘들 때 힘내라고 말하고 몸이 안 좋을 때 건강을 우선 챙기라고 말하지만, 그 모든 외침과 격려의 이면에는 명시적으로 말해지지 않은 괄호 안의, 가장 중요한 assumption이 있다는 것.

그것은 "(내 이익(이해관계)을 1이라도 침해하지 않는다면...)"이다. 만약 자신과 이해관계가 조금이라고 얽히게 된다면, 그 외침과 권고는 아무 의미가 없어지고, 태도는 돌변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말 많은 대다수의 대학 구성원들은 그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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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이름...

첫 애를 임신했을 때 이름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다. 장인께서 산부인과 의사셨기 때문에 임신 3개월 때 딸이라고 알려주셔서 그 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애가 태어난 후 결정된 이름을 가지고 출생신고를 하기 얼마 전 첫 애의 이름에 아내의 성을 넣겠다고 결정해서 그 이름을 들고 갔다. 내 성인 '이'와 아내의 성인 '조' 그리고 아이의 이름 'ㅎㅇ'을 합하여 '이조ㅎㅇ'을 공식 이름으로 등록했다. 물론 성을 '이조'로 등록할 수 없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성이 '이'이고 이름이 '조ㅎㅇ'이지만 어느 누구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언니를 따라서 '이조ㅇㅇ'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제 둘이 같은 학교에 다닌다. 각기 다른 중학교에 다닐 때는 둘 모두 별명이 '이조'였다. 전국에 하나 밖에 없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라서 '이조'라고 부르면 모두 다 누군지 알았다. 심지어 둘째는 운동회 때 반 단체복에 "2000000000000"라고 썼을 정도였다. 이 둘이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니 늘 화제가 된다. 첫째가 학교에서 그래도 잘 알려졌기 때문에 둘째가 늘 화제였다. 선생님들이나 선배들에게 둘째가 자기 이름을 밝힐 때 늘 따라오는 질문은 "너 이조ㅎㅇ이 동생 아니야?" 혹은 "너 이조ㅎㅇ과 무슨 관계냐?"라는 질문이다. 심지어 경비 아저씨도 같은 질문을 하셨단다.
얼마 전 둘째가 처음으로 알게된 선생님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역시 같은 질문... 그리고 나서 그 선생님 왈:
선생님: ㅎㅇ이는 집에서 어때?
ㅇㅇ: 엄청 무서워요.(첫째가 둘째의 군기를 확실히 잡는다.)
선생님: 그래?
ㅇㅇ: 언니가 걸어 오면 가슴이 쿵쾅거려요.
선생님: 하긴 그래... ㅎㅇ이가 걸을 때 유난히 쿵쾅거리면서 걷지...
ㅇㅇ이: ????
이름 때문에 학교에서 겪는 에피소드가 많은데, 그것으로 많이 웃는다. 다행히 아이들이 이름을 그렇게 지어 준 아빠에게 감사해 하고 자신의 이름에 자부심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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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충격적인 죽음

(2018년 7월 23일 정의당 노회찬 의원 자살에 부쳐...)

언제였던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작년 대선을 얼마 앞둔 추운 겨울. 정의당대표실에서였던 같다. 박근혜가 탄핵되고, 새로운 세상의 건설에 대한 열망이 차오르고 있던 그 때, 최소 정당으로서 당당히 대선에 심상정을 내세우며 출사표를 던졌던 그 때... 정의당의 선거대책위원장이었던 것 같다. 정의당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당대표 회의실에 모여서 그를 중심으로 상견례를 하고 간단하게 회의를 했었다.
나는 그를 좋아했지만 지지하지는 않았다. 나는 오로지 심상정 의원이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었고, 그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웬지 그에게는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그가 드루킹일당과 엮여있다는 보도가 슬슬 흘러나오던 요즘. 설마 설마 했다. 그는 자신의 결벽을 여러 번에 걸쳐 주장했다. 최근 외국으로 출장나가면서도 카메라에 대고 자신은 깨끗하다고 주장했고, 자신을 신뢰하는 같은 당 의원들에게도 거듭 확인했었다. 그런 그가 외국에서 돌아온지 얼마 안 되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로 하여금 그런 선택을 하게 한 원인이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 잘 모른다. 지금쯤 먹잇감을 찾아 떠돌던 하이에나같은 언론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어뜯고 선정적이고 걸러지지 않은 보도들을 쏟아 놓겠지만, 그런 짐승들의 피튀기는 먹이감 싸움은 일절 쳐다보기도 싫다. 분명한 것은 아직 우리는 정확한 팩트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를 그토록 괴롭게 했던 떳떳하지 못한 뭔가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누가 그를 욕하며, 누가 그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으랴? 정치인들 중에서, 그리고 온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그만큼 사회 정의와 약자들을 위해 피나고 눈물나게 고생하며 싸운 사람이 있을까? 그만큼 처절하게 우리 사회의 악과 맞짱떴던 사람이 있을까? 그 만큼 진보정치에 일반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정치인, 그것도 유력한 정치인에게 다가오는 수 많은 유혹 중 한 두 가지에 넘어갔을 수 있다. 그것은 잘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인생, 그의 정치를 손가락질 받을 만한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까? 아니다. 오히려 그의 예민한 감수성, 염치를 아는 마음, 깨끗한 도덕성을 지향하는 열정, 이 시대의 참 양심을 가진 정치인임을 반증해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의 선택이 아닐까?

그보다 훨씬 더럽고, 추잡하고, 권력욕에 사로잡힌 수 많은 정치인들이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그에게 머리가 절로 숙여지는 것은, 이 시대의 한 인물이었고, 뛰어난 정치인이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줬던 한 인간의 극단적인 선택을 안타까워하는 마음 때문이리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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