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네 명의 아들과 집안에서는 꿈쩍도 하지 않았던 아버지를 "섬기셔야" 했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오부자가 쏟아내는 엄청난 빨래들을 빨래하고, 그들이 한 창 자랄 때 먹어대던 음식을 준비하고, 많개는 10개의 도시락을 새벽 6시까지 준비하시며, 그 많은 설거지와 집안 청소를 감당하셨던 어머니... 밖에서 신나게 놀다가 집에 들어가면, 세탁기가 없어서 빨래를 말 그대로 산더미처럼 쌓아 놓으시고 일일이 손빨래를 하시던 어머니를 보고도 도와드릴 생각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밥달라고 소리치며 졸라대기만 했고, (특히 막내인 내 동생이 심했는데) 밥달라고 했을 때 바로 밥을 대령하지 않으면, 밥을 안 먹겠다고 협박아닌 협박을 해대기에 일쑤였다. 아버지와 두 형들은 밥을 먹으면서 짜다는 둥 싱겁다는 둥, 반찬이 너무 부실하다는 둥 반찬에 대한 평가가 끊이지 않았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너무하다 싶은 그 불평들을 어머니는 아무말 없이 그냥 감내하셨다.
어머니라고 불평이 없으시고 힘드시지 않았을까? 어머니는 항상 딸을 낳지 못한 자신의 운명을 탓하셨다. 하루 종일 엄청난 집안일로 온 몸이 쑤시고 아파올 때면, 나를 부르셔서 안마를 시키시면서, "딸을 낳았어야 했는데... 내가 지지리도 복이 없지..."라며 신세한탄을 하셨다. 5대 장손이자 독자, 그리고 그것도 아버지를 일찍 여의신 내 아버지에게 시집와서 낳는 자식마다 아들을 낳으셨던 어머니는, 두 아들을 낳으시고 딸을 기대하셨다. 셋째를 임신하여 출산한 아들이 바로 나였다. 그리고 내 동생까지 출산하시고는 용하다는 점장이를 찾아가셔서 다음에 딸을 낳을 가능성을 물으셨단다. 그 때 그 점장이는 아들을 일곱을 낳아야 딸을 낳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고, 일곱이라는 숫자에 놀라셔서, 더 이상 자식 낳는 것을 포기하셨다. 어머니는 이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셨다.
어머니는 딸을 낳지 못한 자신을 탓하셨을 뿐, 아들들에게 일을 분담시키시는 것에 대해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셨다. 오히려, 내가 "아주" 가끔씩 어머니를 돕기 위해서 나서기라도 할 때는 사내는 부엌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씀하셨다. 신발과 옷들, 양말, 이불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손빨래를 하실 때에도, 어머니는 딸 없는 타령만 하셨을 뿐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불쌍했고, 나는 커서 장가가면 아내를 많이 도와주는 남편이 되리라 다짐했었다. 그리고 대학에서 여성운동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어머니께서 과거의 관습에 사로잡히신 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남성도 가사일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도 그런 여성운동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자가 되었다.
아내를 만나서 결혼했다. 좋은 남편이 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정말... 내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설거지가 필요한 그릇들은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았고, 빨래를 기다리는 빨래감들은 내 일이 아니라 아내의 일처럼 느껴졌다. 집안에서 보이는 지저분한 것들은 아내를 탓하는 구실이 되었을 뿐, 내가 치워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연이를 낳고, 너무 고생하는 아내를 보면서, 불쌍했지만, 내가 도와줘야 한다는 것, 그 짐을 덜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몸은 매우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즐겼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열심히 하는 그런 남편이다. 컴퓨터가 고장나면 밤을 세워서라도 고치고, 차가 수리나 관리가 필요하면, 아내가 아무 말이 없더라도, 즉각즉각 고치고 관리하고, 뭔가를 만들어야만 하면 계획을 세우고 만들어 낸다. 보편적으로 남자들이 좋아하는 집안 일들을 하는 것은 너무나 즐겁고 당연히 내가 해야할 일들이므로 그 일들은 불평없이 감당한다. 하지만 부부로서 같이 감당해야할 가사 노동에는 도통 관심이 가지 않는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훈련을 받아서 이미 내 몸에 프로그램밍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 생각된다.
결혼 10년이 지난 지금... 그런 나의 모습은 여전하다.
이런 나의 모습은 아내를 늘 힘들게 했고, 그것이 아내에게는 가시가 되었다. 믿음 안에서 굳건하게 서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된 것이다. 그가 힘들어 할 때, 나는 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그런 남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최근에 많은 회개를 하게 되었다.
성경에서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역할을 분명하게 가르치신다.
엡 5:25-29
남편이신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기를 내주신 것같이,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며, 티나, 주름이나, 또 그와 같은 것들이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교회를 자기 앞에 내세우시려는 것이며,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여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자기의 육신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기르시고 돌보시는 것처럼, 사람은 자기의 육신을 가꾸고 보살핍니다. (표준새번역)
남편이 아내에게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가지는 의무는 그 아내를 거룩하며 아름답고 정결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남편이 아내를 그렇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내를 거룩하고, 정결하며, 아름답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것이다. 남편의 역할은 아내가 그리스도를 더욱 깊은 관계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하며, 그분 안에 온전히 거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가 되는 것이다.
조력자로서의 역할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내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이다. 영적 리더십을 가지고, 아내를 말씀으로, 기도로 인도하는 가운데, 그가 그리스도께 더욱 가까이 가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남편인 내가 주님 앞에 더 나아가야 한다.
다른 하나는 아내가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는 데 남편인 내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나의 연약함이, 나의 죄가 내 아내를 지속적으로 시험에 들게하고, 그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막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으로서의 내 역할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가사일에 대한 나의 습관적 무관심과 비협조가 내 아내로 하여금 시험에 들게하고 그가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된다면, 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모든 가사일을 도맡아서 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아내에게 큰 짐을 지워놓고, 나 혼자 거룩한 척 하는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지켜보고 계시고, 그것을 언젠가 징계하실 것이라는 것을 나로 하여금 분명히 깨닫게 하셨다.
결국 내가 집안에서 가사일을 적극적으로 돕고, 아내의 짐을 덜어주는 일은, 단순히 남편으로서 아내를 돕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으므로, 나는 순종하겠다.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이 그분의 종으로서 내가 취해야할 마땅한 자세이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설거지를 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령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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