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단어는 기억나지 않지만, 음악을 "1차언어로 된 예술"(혹은 그 비슷한 이름)라고 부르는 것을 기억한다. 문학이나 미술이나 다른 어떤 예술보다도 가장 direct하고 가장 근본적인 medium을 사용하는 예술, 다시 말하면, interpretation이 필요 없이 직접적으로 느껴지고 전달되는 언어를 사용하는 예술이라는 설명이다. 2002년에 타개한 Pierre Bourdieu가 저술한 La Dintinction의 관점에서 볼 때, 후천적으로 획득되고 학습되는 문화자본의 차이로 인해 음악조차도 계급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음악을 다른 예술과 구분하는 것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느낌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각에 호소하는 예술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신앙생활에도 음악과 같은 것이 있다. 신앙인격, 혹은 그리스도인이 가진 영적 감각 중에서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감각에 호소하는 것... 그것은... 내 생각에는... 기도이다. 성경을 보는 것, 봉사하는 것, 교제하는 것, 예배 드리는 것, 찬양하는 것 등등 믿음 안에서 주님을 경험하고, 주님과 관계 맺는 많은 활동들이 있지만, 그 무엇보다도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레벨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가는 것은 바로 기도이다.
기도는 신앙생활에서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기도는 호흡이다. 기도는 영적인 숨을 쉬는 것이며,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주님 안에서 살아 있을 수 있다.
기도는 주님의 임재 한 가운데로 뛰어들어가는 행위이며, 그분의 품 안에서 그분의 숨결을 느끼는 행위이다.
위대하신 창조주이자 온 우주의 주권자 앞에 무릎꿇는 행위이며, 그분의 마음을 읽고,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기도는 나를 비우는 것이며, 그분의 것으로 나를 채우는 작업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온전히 인정하는 행위이고, 나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행위이다.
기도 가운데 주님은 당신 스스로를 계시하시며,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해 간다.
단, 기도가 진정한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샤머니즘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자신의 소원을 비는 그런 기도, 다시 말하면 자신의 욕망과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이용하려고 하는 유치하고 파렴치하고 믿음없는 기도가 아니라, 주님께서 가르치신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이 땅 가운데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주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임하시는 것을 위한 기도, 다시 말해 주님을 위한 기도, 주님의 소원을 위한 기도가 중심이 되는 기도여야 한다.
소원 성취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임하기를 간절히 구하는 기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추구하는 기도가 내 기도의 중심이 될 때, 기도는 그분과의 가장 내밀한 교제가 되며, 하나님 마음의 중심에 서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될 때, 세상은 간데 없고, 영광 가운데 임하신 변화산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기도는... 진정으로... 주님께서 이 땅의 제자들에게 주신 위대한 특권이고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기도를 통해 나는 오늘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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