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교회에서)

(2005.12.06에 다른 곳에 썼던 글)


내가 미국에 오기 전에 다녔던 교회는 작은 개척교회였다. 규모는 작았지만 큰 뜻을 품고 시작한 교회는 많은 아름다운 이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였다. 이상의 대부분은 현재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개선하고 성경의 원리에 보다 가까운 교회의 모습에 대한 것이었다.
그 이상 중의 하나가 공동목회였다. 대부분의 교회가 한 명의 담임목사를 두고 그 아래에 교역자들을 두고 있는 한국교회의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공동담임목사들을 두는 것을 그 교회의 원칙으로 세웠다. 사실 나로서는 한 명의 담임목회자를 두는 것이 무슨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인지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어서 공동목회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교회 개척 때부터 함께한 멤버들 간에는 매우 의미가 큰 것이었던 것같다.
교회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면서 공동목회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이상은 높았지만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면서 공동목회를 추진했던 목사님들 사이에 상당히 큰 상처를 남기고 단독목회로 선회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교회의 리더들인 집사들은 목회자들이 서로 상처를 받는 것을 보면서 참 많이 힘들어 했었다. 그 중에 특히 한 집사는 결국 그 문제로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그 집사는 성실했고 신실했으며, 교회의 중고등부를 담당해서 정말 잘 섬기는 교회의 큰 일꾼이었다. 그는 한국 교회의 부패에 대해 아픈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아픈 만큼 "바른" 교회에 대한 큰 꿈을 가지고 있는 분이었다. 그분에게 공동목회는 그 "바른" 교회의 척도로 자리하고 있었을 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니 공동목회가 더 이상 불가능한 교회에 머문다는 것은 그에게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떠났다.
그가 떠나고 남은 빈자리는 오래도록 채워지지 않았다. 그 분이 있었을 때 점차 자리를 잡고 성장해 가고 있었던 중고등부는 그 후 한참 동안 힘들어졌고, 아이들은 돌봄을 받지 못했다. 물론 그것이 그분이 떠난 결과로 발생한 문제만은 아니었다. 교회차원에서 이들에 대해 보다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없었다. 사실 개척교회로서 너무나 많은 곳에 일꾼이 필요한 상황에서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만약" 그분이 계셨더라면 중고등부가 활성화 되고 많은 어린 영혼들이 하나님 안에서 잘 자라는데 크게 쓰임 받았을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 한 예를 생각한다. 내가 아는 다른 교회는 수 천 명이 모이는 그 동네에서는 가장 자리를 잘 잡고 성장한 교회였다. 그 교회는 이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도 않았고, 대부분의 한국 교회가 가지는 이런저런 문제도 많은 그런 평범한 교회였다.
그 교회에 큰 분란이 일어났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담임 목사가 자신을 지지하는 교회 내의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 아름답지 못한 방법으로 측근들을 장로로 세워가기 시작했다. 이는 교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젊은 집사들을 주축으로 해서 이에 대한 반대 및 시정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갈등이 생겨났다.
갈등의 상황은 점차 증폭되어 시정을 요구하는 측에 속해있던 젊은 집사에게 부목사가 공개적인 모임에서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나는 외부인으로서 교회 내부의 사정을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여기서 그 교회가 무엇 때문에 갈등을 겪고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 젊은 집사의 태도였다.
"나 같으면...."이라는 생각이 드는 그 상황 속에서 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나 같은면, 그런 폭언을 들으면서까지 교회에 머물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 널린 것이 교회고, 너무나 좋은 교회들이 많은 상황에서 왜 내가 이런 소리를 듣고 여기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을 것이고 그로 인해서 교회를 조용히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아픈 가슴을 달레고 새롭게 출발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말 나 같으면...
하지만 (내가 아는 한에 있어서) 그 젊은 집사의 반응은 달랐다. 자세히는 잘 모르지만 그 집사는 그 교회를 떠나지도 않았고, 그 교회에 머물러 계속 섬기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교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들었다. 그는 바르지 못한 교회에서 바르게 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남기를 택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은 항상 이상에 사로잡혀 있어야 하고, 하나님 안에서 세상을 개혁하며 교회를 개혁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배우고 있는 진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부패한 모습을 보고 그것을 말씀으로 개혁하고자 했던 수 많은 선배들의 희생과 노력의 결과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을 품는 것과 현실 교회에서 섬기는 것과의 상관관계는 잘 연결되지 않으면 문제를 야기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두 가지의 예를 들었지만 사실 한 쪽이 다른 쪽보다 낫다는 말을 함부로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두번째의 경우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상은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길로 우리를 부르신다. 하지만, 그 길은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와 함께 가야할 길이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그 이상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그 공동체와 나의 관계를 끊고 더 가까이 있는 다른 공동체로 옮겨가는 것이 정말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든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이단이 아닌 이상은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그 공동체에 한 몸이 되어 머물며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시는 이상을 향해 함께 가기를 권하는 그런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불려갔을 때, 하나님은 내가 이상을 품고 얼마나 교회를 개혁하려고 했는지를 더 중요시 여기실까 아니면 나에게 맞겨진 영혼들을 돌보고 그들이 그리스도를 알고 주님으로 영접하고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도왔는지를 더 중요시 여기실까? 한 번 생각해 볼만한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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