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두 세명을 우연히, 혹은 다른 관계로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수준이었다. 그 때까지 교회를 떠난 자로서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겠다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내가 떠나고 난 후 공동체가 잘 되기만을 바라는 마음만 가지고 있었을 뿐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 두 세명을 만난 후 마음이 바뀌었다. 내가 그냥 지켜보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결코 내가 그냥 있기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나에게 찾아오는 지체들을 결코 피하지 않기로 했고, 아주 가끔은 낙망 가운데 쓰러져 있는 지체들에게 다가갈 필요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만난 그들... 대부분 나를 만나기를 먼저 원해서 만났던 그들은 모두 절망과 깊은 어두움 가운데 있었다. 구원에 대해서 확신은 없었고, 절망과 온갖 어두움이 그 영혼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만나자 마자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 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로서는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왜냐하면, 그것은 온통 자신에 관한 이야기 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믿음 생활을 듣기를 원했는데, 그들은 자신의 부족한 부분, 자신이 구원받지 못했다는 확신을 갖게한 교회가 알려준 자신의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서만 나열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그들의 영혼은 좌절해 있었고, 어두움 가운데 거하고 있었다. 이들 이후에 만난 모든 영혼들은 동일한 모습을 나에게 보여줬다. 그들에게 믿음이란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높은 "경지"에 있는 그 무엇일 뿐이었고, 자신들은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없는 형편없는 존재일 뿐이라는 확신이 너무 강했다.
절망 가운데서 눈물을 보이는 그들... 그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내가 그 지체들을 만나서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밖에 없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
자신의 죄와 부족한 부분에만 고정되어 있는 시선을 돌려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것...
절망스러운 자신의 모습... 죄가 끊이지 않는 자신의 모습... 자기 의로 가득찬 자신의 모습... 믿음이 없이 연약해 쓰러지는 자신의 모습...
그렇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칼빈이 Total Depravity라고 인간의 상태를 정의했을 때, 그가 그리고 있는 모습, 그리고 성경이 보여주는 인간의 모습은 바로 선한 것이 하나도 있을 수 없는, 그 존재 자체가 죄이고 악인 모습이었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절대 희망이 없다. 인간에게 집중하면 할수록 우리는 절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마귀는 우리를 죄로 유혹한 뒤, 그런 죄된 우리의 모습에 집중하게 하고, 거기에 눌려 있게하고, 그래서 어두움 가운데서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마귀의 종으로 계속 살게 한다. 그것이 그의 전략이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런 형편없는 존재, 벌레만도 못한 나같은 존재를 위해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으로 오셨고, 이 땅에서 "나를 위해서" 완벽하게 의로운 삶을 사셨고, "나를 위해서" 아니 "내 그런 더러운 죄, 아니 죄된 본성"을 짊어지시고 내가 달려야 할 십자가에 달리셨고, 하나님은 내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내 죄를 지시고 달리신 그분께 모든 진노를 쏟아 부으셨고, 그 결과 죄의 궁극적인 결과인 죽음을 예수님께서 "내 대신" 맛 보셔야 했다는 것... 그래서 이제 나에게 더 이상 정죄가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살아계시고, 나의 주가 되시기 때문에, 나는 그분의 지배를 받으며 그분을 닮아가는 삶, 이제는 죄를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 그럴 자격이 전혀 없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그런 영광스런 자리로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는 것.... 그것이 복음 아닌가?
그 복음은 분명 죄된 나의 모습을 보게 하지만, 그것이 절대 중심이 아니라는 것... 그것이 너무나 중요한 진리이다. 복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내 죄와 내가 형편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보는 것에서 그친다면, 그것은 저주일 뿐이다. 거기에는 절망밖에 없다. 그런 나를 보는 시선에서, 내가 그렇게 죄인이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복음 아닌가? 나에게 철저히 절망하는 대신, 그분께 완전한 희망을 두는 것이 그것이 바로 복음이 아닌가?
정말 놀라운 것은... 정말 가슴아픈 것은... 내가 만난 모든 지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시선,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는 그 소망,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을 완전히 망각한 채, 자신의 죄됨에만 너무 obssessed되어 있는 것을 본 것이다...
어찌 그럴 수가... 도대체... 도대체... 뭘 배웠길래?
모든 지체들에게 내가 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 뿐이었다.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 것 뿐이었다. 그런데 그 복음을 들은 그들이 보인 반응... 너무나 놀라는 그 반응... 눈을 번쩍 뜨는 그 반응...
솔직히 그 반응을 보고 내가 놀랐다. 그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듣고 놀라면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가 놀랐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듣고, 그분이 구원자가 되신다는 그 소식을 듣고, 그분께 모든 것을 집중하고 그분만 바라보라는 그 설명을 듣고, 그들이 놀랐다....
한 지체가 나를 만나고 나서 이메일을 보내 왔다. 사실 다음과 같은 메일은 그 지체만의 반응이 아니었다. 모든 지체들이 보이는 동일한 반응이었다.
"어제 들은 내용을 오늘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그 은혜... 내가 어떻게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받게 되는 그 십자가가 내것이라는 것을 정말 오랫만에 다시 깨닫게 되었고, 또 오랫만에 "예수님"의 이름이 나에게 저주가 아닌 구원의 이름으로 다가왔습니다. 예전 저에게 찾아와 주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되는것 같아 너무나 기쁘고 정말 잃었던 것을 다시 찾은 듯 하였습니다.
복음과 더불어 만난 모든 지체들에게 강조한 것은 성경공부였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리 그 자체라는 것.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든 판단 기준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나도, 어떤 인간도 교회도 아닌 성경이라는 것. 성경만이 진리이고,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시고자 하는 모든 말씀을 성경에 다 해 놓으셨기 때문에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이 믿는 자의 바른 자세라는 것을 누누히 강조했다.
나를 만난 이후 그들의 변화는 분명했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말씀을 사랑하게 되었고, 거룩한 삶,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향한 열정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
최근 어떤 경로를 통해서 전에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 나를 위험인물로 지목하고, 나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내가 지체들을 만나서 교회를 떠나라고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로부터 오는 모든 연락에 반응하지 말라고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진 모양이다.
사실 내가 만났던 많은 지체 중에서 내가 교회를 떠나라고 권면한 지체는 한 명 뿐이다. 그 지체는 그것을 거부했고, 지금도 열심히 다니고 있다. 나머지 지체 중 절반에게는 교회를 떠나지 말고 그 교회에서 중요한 것들을 더 배울 것을 권면했고, 그 나머지 절반에게는 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권면했다. 내가 적극적으로 교회를 떠나라고 한 것은 한 경우 빼놓고는 없었다. 교회를 떠나는 것이 내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에 그 주제는 대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도 못했다. 중요한 것은 복음이었고, 그리스도였고, 말씀이었다.
복음을 전하는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인 우리에게 유일한 희망이고 생명이라는 것을 전하는 내가 위험인물이고 기피해야할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면, 참 아이러니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바로 그 교회가 스스로 복음에 목숨을 건다고 생각하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지체들이 있는, 사랑하는 교회이다. 나는 그 교회가 하나님 안에서 복음 안에서 바르게 자라가는 것을 참으로 소망한다. 교회가 잘못되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 복음이 바르게 이해되고 그리스도가 소망이되고 중심이되고 생명이되고 기쁨이 되는 가운데, 모두가 십자가로 인해서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
만약 그런 내가 그들의 경계 대상이고 기피 대상이라면, 나로서는 할 말은 단 한 가지 밖에 없다.
"Let it be! I don't care!"
나는 나를 찾아 오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는 그 일... 바로 그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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