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o

2013년 1월인가? 처가댁을 방문했다가 태어난 지 한 달 밖에 안 되는 강아지 두 마리를 집으로 데려왔다. 강아지들을 데려올 것인가를 고민할 때, 나와 둘째는 적극 찬성, 첫째는 유보, 아내는 반대했었다. 찬성이 많았기 때문에 결국 데려 오기로 했고, 그 중 한 마리는 강아지를 키우기를 원하시는 둘째 친구의 할머니 댁으로 보냈다(지금도 대접 잘 받고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강아지는 어릴 때는 키우기가 재미있지만 커가면서 어려움이 점점 늘어난다. Bruno라고 이름붙인 우리 애도 그랬다. 강아지 때는 똥오줌 가리게 하는 것 빼놓고는 다른 문제는 없었다. 물론 그것도 쉽지는 않았지만...

강아지가 커서 개의 모습이 점점 드러나면서 가장 큰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는데, 털이 너무나 많이 빠진다는 것이다. 봄과 가을 털갈이 할 때 무지막지하게 빠지는 것을 차치하고도 그 외에도 상당히 많은 양의 털이 빠진다. Bruno가 잠시 놀다간 자리를 진공청소기로 청소하면 턱이 수북히 싸이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고, 음식, 옷 등 모든 곳에서 Bruno의 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야 집에 거의 없고 밖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니 크게 신경쓰이지 않지만, 아내의 스트레스는 대단했다. 원래 강아지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에다 털관리에 먹이고 똥오줌 치우는 것을 떠맡아야 했기 때문에 참 힘들어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베란다에서 키우기로 했다.

문제는 베란다로 내 보내면서 Bruno의 성격이 거칠어진 것. 그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베란다에서 생활하면서부터 외부 사람들을 보면 낯설어 하면서 심하게 짖어댔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밖에 산책할 때만 생기는 문제라서 그나마 좀 나은 것이었고,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우렁찬 목소리. Bruno는 큰 개가 아니고 중간에서 작은 축에 속하는 크기이지만, 목소리만으로 본다면 대형개 못지 않은 소리를 낸다. Bruno가 자주 짖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짖을 때면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퍼질 정도이다.




그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개들이 많아서 그런지 그런 큰 목소리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온 동네에 개짖는 소리가 많이 들렸기 때문에 거기에 묻힌 것이다. 하지만 새로 이사온 동네는 그 전보다 훨씬 조용한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Bruno 때문에 민원이 많이 들어 온 모양이다. 근처 사는 사람이 찾아오기도 했었다.

그런 불만을 접수하고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했다. 덕분에 적어도 우리가 보기에는 짖는 횟수가 전보다 현저하게 줄었다. 하지만 이웃들이 보기에는 부족했나보다. 며칠 전 저녁에 갑자기 경찰 두 명이 찾아왔다. 공손하고 좋게 말하긴 했지만 이 동네 주변 사람들의 민원이 경찰서로 들어 오고 있으니 조치를 취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제안한 것이 성대수술.
평생 처음 경찰의 방문을 받고 온 가족들이 비상대책회의를 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옵션은 짖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성대수술이나 마스크 착용)과 처가댁으로 돌려 보내는 것.
일단 마스크 착용에 대해서 알아 봤지만, Bruno의 성격상 더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것, 그리고 효과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남은 것은 둘 중 하나: 성대수술 아니면 돌려 보내는 것.

많은 토론을 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특히 첫째가 많이 힘들어 했다. 처음에 데려올 때는 유보 입장을 보이던 아이. 강아지가 싫어서가 아니라 데려 올 경우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성숙한 태도를 견지했던 아이(그 때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Bruno를 데려 오고 성장해 가면서 Bruno에 대해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가장 성실하게 챙기고 마치 동생처럼 아끼고 사랑한 사람은 바로 첫째였다. 밖을 나갈 때면 언제나 Bruno걱정이 먼저였고, 아무리 힘들어도 Bruno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세상구경시키면서 산책시키는 것을 거르지 않았고, 그를 위해서라면 평소에 잘 않던 청소하기를 마당하지 않았고, 집에 있을 때면 늘 먹을 것 챙겨주고 똥오줌 치워주고, 놀아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Bruno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늘 그를 아끼던 아이가 첫째였다. 이런 첫째를 보면서 서 내 딸이지만 존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그런 첫째에게 Bruno 문제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였다. 논의를 하면서 눈물을 멈추지 않는 첫째. 나는 그런 첫째를 위해 성대수술을 생각했지만, 첫째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성대수술을 하는 것은 적어도 그 애 생각에는 인간을 위해 동물을 희생시키는 것이라는 것. 인간이 개를 데리고 있고 싶은 마음에 개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는 주장. 물로 성대수술을 하더라도 목소리를 완전히 잃지는 않고, 일부 사람들은 개가 그것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자신을 위해 Bruno에게 그런 희생을 강요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단다. 그래서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시골에 있는 처가댁으로 보내서 거기서 마음껏 짖으며 살도록 하고 싶다고 마음을 토로했다.

'이런 것이 사랑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Bruno를 자주 보지 못하는 아픔을 자기가 떠 안으면서도 Bruno를 온전히 지켜주고 싶은 마음.

이제 걱정은 어떻게 Bruno가 외가집에서 잘 적응하도록 할 것인가였다. 자주 가서 보는 것이 Bruno의 마음을 안정시킬 것인지, 아니면 자주 안 가는 것이 Bruno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더 도움이 될지... 오로지 Bruno를 위하는 마음.

어젯밤에 집에 늦게 들어 갔는데, 첫째가 말한다. "I can't believe that Bruno has to go..."

완전한 이별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Bruno와 떨어져야 하는 그 고통을 첫째가 잘 이겨내기를... 아빠로서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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