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길에 들은 Ravi Zacharias의 질책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는 현대 교회의 문제가 말씀이 부족한 것, 혹은 말씀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진단하며 목소리를 높여 질책했다.
나는 그의 말에 100% 동의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 시대 교회에서 보이는 양상은 말씀에 대한 이해, 말씀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자세가 너무나 희박하기 때문이다. Sola Scriptura가 개신교의 가장 중요한 모토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어느새 장식품이 되어 버렸고, 말씀은 설교단에서, 혹은 라디오에서 설교자에 의해 한 번 소화된 것을 듣는 것으로 끝인 세대가 바로 우리 세대이다. 일반 성도들 뿐만 아니라 장로 집사들, 그리고 심지어 수 많은 목회자들까지도 말씀에 얼마나 무지한지... 치가 떨릴 정도이다.
하지만 Zacharias가 지적한 것은 보다 근본적인 것이다. 말씀에 무지한 원인이 바로 말씀을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말씀을 많이 아는 자라 하더라도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것이 무서운 것이다.
내 자신을 생각해 보았다. 아침마다 말씀 앞에 무릎 꿇겠다고 다짐했지만, 바쁘고 급한 일이 생기면 그 시간이 대폭 줄어들기 있쑤이고, 그렇지 않고 말씀을 읽을 때에도 5-6 장 정도 읽는 그 시간, 30분에서 한 시간 밖에 안 되는 그 시간에 내 마음을 말씀 앞에 겸손히 하고, 온 마음을 다해 만군의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보다는 읽는 도중에 생각은 딴데로 흐르는 경우도 종종 있고, 눈은 말씀을 따라가고 있지만 생각은 다른 일을 떠올리면서 그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 급하면 빨리 해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고, 말씀 후에 기도할 때에도 전심을 다해 기도하기보다는 하나님께 드리는 하나의 인사치례로 후다닥 끝내고 밀려있는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 뿐만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관계에서, 하나님 중심을 외치고 살지만, 실제의 모습은 나 중심이고 세상 중심이며 하나님은 어느새 변방으로 밀려나버린 삶을 살기 일쑤이다. 그 와중에 짓는 죄악은 일일이 나열하기가 부끄러울 정도이다. 생각과 말은 성인의 삶을 지향하지만, 실제의 모습은 죄인 중의 괴수의 삶을 사는 위선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Zacharias는 그런 내 태도에 엄중한 경고를 던져준다. 하나님은 나에게 그런 대접을 받으실 분이 아니라는 것.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왕의 왕이 되시는 분이라는 것, 그분은 나를 구원하신 구원자이시고, 나의 아버지가 되시는 분이라는 것. 이 온 우주도 그분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데, 하물며 나같은 것은 눈에 띄지도 않을 것에 불과한데, 그런 나를 주목하시고 찾아 와 주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라는 것.
그분을 홀대하는 내 자신을 깨달았고, 그 근저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려고 하는 내 자신의 죄악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것에 몸서리가 쳐졌다.
나는 그런 자인 것이다.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의지적으로 그분을 거역하고 그분을 멀리하고자 하는 본성을 가진 자가 바로 나라는 것. 적어도 나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혐오하고, 내 자신을 앞세우고자 하는 욕망이 바다처럼 거대한, 흉악한 자라는 그의 지적이 딱 들어 맞는 지적이다.
그 진노의 설교를 들으면서 참 슬펐다. 나라는 존재가 그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것이 슬펐고, 그런 나에게 그렇게 푸대접을 받는 하나님께 죄송해서 슬펐다.
그런 나를 보게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하나님께 내 죄악을 자복한다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셔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내 안에서 만들어 주시지 않을까? 참 그렇게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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