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회 간 둘째를 생각하며...

오늘 둘째가 학교에서 수련회 갔다. 평창으로 간다는데, 오늘 하루 종일 마음의 불안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방금 아내에게서 무사히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불안한 마음이 약간을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약 500일 전, 들뜬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꽃같은 아이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어른들이 수장되었다. 그 큰 배가 서서히 가라 앉는 것을 눈 앞에 보면서도 부모도, 그 누구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음을 찢어졌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 때의 그 공포감과 좌절감이 내 안에 깊은 상처를 남긴 것 같다. 객관적으로 보면 너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이 분명하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지 않다.

세월호 이후 무엇이 바뀌었는가? 세월호 유가족들은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며 필사적으로 싸우는데, 정부와 사회는 그들을 보상금을 노리는 자들로, 세상을 소란스럽게 만드는 자들로, 심지어 귀찮은 자들로 매도하지 않았는가? 그러는 사이에 진상규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모든 것은 조용히 덮인다. 정부는 물론이고 사회는 반성하지 않는다. 그래서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여객선과 화물선의 운항도 세월호 사태 이전에 비해서 그리 나아진 것이 없단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그토록 필사적으로 싸우는 이유는 그들의 자식들의 희생이 의미없는 것이 되지 않게하려는 것이다. 그 아이들은 이미 죽었지만, 그들의 죽음이 앞으로 올 비슷한 사고를 예방함으로 수 많은 인명을 구하는 데 기여했다는 그런 의미부여, 그로 인한 위안이 바로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것일터... 그렇다면 그들의 싸움으로 득을 보는 것은 사실 그들이 아니라 우리다. 그들이 아무리 싸운다고 아이들이 살아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으로 내 생명, 우리 아이들의 생명이 덜 위험해 지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들의 싸움은 그들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바로 내 싸움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싸움이 되어야 한다. 그들이 그냥 잠잠하게 있더라도...

그런데 그 싸움은 여전히 그들의 싸움이고, 사회는 그들을 잊어간다. 그리고 "아직도 그러고 있느냐"는 반응으로 싸늘한 시선을 그들에게 던진다. 이것보다 더 큰 부조리가 있을까?

둘째가 걱정되고 보고 싶은 오늘 나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노란리본 뱃지 두 개를 얻었다. 그것은 그간 기억은 하고 있지만 그들과 함께한다는 적극적 의사표명을 하지 않았던 내 자신을 반성하고, 세상에 그들을 잊으면 안된다는, 나도 결코 잊지 않겠다는 내 스스로의 반성의 고백이자 세상을 향한 항변이다.

모든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어른들인 우리가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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