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재적인 성범죄자다 & 당신 잘못이 아니다(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을 애도하며...)

(2020년 7월 9일 시민운동가이자 서울시장인 박원순 변호사 사망)

어제 오후에 내가 존경하고 사랑해 마지 않는 시민운동가이자 정치인 한 사람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대학생 시절 참여했던 참여연대의 창립자이고 너무 훌륭한 시민운동을 전개해온 시민운동가, 인권과 약자를 사랑했고 위했던 변호사, 탁월한 행정가이자 정치인인 한 사람의 죽음은 나에게 너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더구나 그분이 상호합의에 의한 불륜도 아니고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행한 범죄인 성추행으로 고소당한 바로 다음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이 내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

어렸을 때는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럽고 사악한 자들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건 남일이었다. 그냥 그런 나쁜 놈들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성폭행을 일삼았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그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좋아했던 한 사람으로서 정말 큰 배신감을 느꼈다. 그것은 남일이 아니었다. 심적으로 "우리"의 카테고리에 있는, 기대하고 좋아했던 한 사람으로부터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아 분노하게 된 그런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감정이 좀 다르다. 배신감이라기 보다는 박원순 시장과 공범이 된 것 같은 느낌. 그만 그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나도 같이 나쁜 짓을 한 그런 감정. 청년의 때부터 좋아하고 존경해 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여러 면에서 나보다 몇 배나 더 뛰어난 인물의 잘못이 내가 얼마나 형편없고 약하고 악한 사람인가를 여실히 드러내 보여줬기 때문일까? 어젯밤 둘째딸과 길을 걸으면서 내가 아이에게 했던 말은 화난다가 아니라 슬프다는 말이었고, 덧붙여 아빠도 스스로를 잠재적인 성범죄자로 인식하고 각별히 더 조심하고 살아야겠다는 말이었다.

그분은 그렇게 가셨다. 그분의 죄는 분명히 지적해야 하지만, 그분의 인생은 그 죄로 무화(無化)시켜버릴 수 없는 존경받고 인정받아 마땅한 것들이 아주 많은 인생이었다.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분의 도덕성도 점차 마비시켜버리고 수렁으로 끌어들여버린 그 무엇이 두려울 뿐이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 매우 걱정되는 한 사람이 있다. 그것은 박시장이 죽기 하루 전 그를 성추행죄로 고발한 사람이다. 그는 박시장의 비서였고,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성추행의 피해자로서 그가 겪었을 고통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덧붙여 마치 그의 고발로 인해 박원순 시장이 죽게되었다는 말도 안되는 인과관계의 자책감(죄책감) 혹은 주변의 비난과 손가락질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우리는 어떤 경우도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켜서는 안 된다. 박원순 시장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지지해온 사람이라면 박원순 시장이 죽음의 순간에 자신을 고발한 사람을 미워하며 원망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치며 자신을 탓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고발자는 시장을 죽음으로 몰기 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당한 피해와 고통에 대한 정당한 법의 댓가를 원했던 것이다.

오늘 벌써 "꽃뱀"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박시장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는 몇 사람들이 그 고발인에 대한 공격을 감행할 것이다. 박시장과 비서 사이에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당사자 외에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고발인이 진실되다고 우선 믿는다. 그리고 그 전제하에 그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박시장의 비극은 자기 스스로가 초래한 것일 뿐 그대의 잘못이 아니라고... 어떤 경우에도 자책하지 말고 숨지 말고 당당하라고... 그리고 죽음을 선택한 박시장을 용서해 달라고...

흐리고 비오는 날씨가 내 마음을 너무 잘 대변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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