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과 경건의 모습...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자기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출 34:29)

거룩한 삶, 경건한 삶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당연히 드러나야하고, 당연히 자라나야할 모습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방법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바로 인간의 죄성 때문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40일을 함께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에 "전염"되고 말았다. 그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의 얼굴에는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나타났다. 유대인들이 모세를 보고 두려워 했던 것으로 봐서,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거룩한 삶, 경건한 삶은 모세처럼 하나님과 근접 거리에서 동행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하나님과 대화하며,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갖는 동안에 그의 삶에는 자연스럽게 광채가 날 수 밖에 없다. 그 광채는 결코 함부로 할 수 없는 광채이며, 그 광채는 하나님의 존재와 위엄을 선포하는 광채이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에게서 뿜어져 나와야 하는 그런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신앙생활을 해 가면서, 과연 남들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이 진짜 하나님께 전염된 거룩한 빛인가, 아니면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낸, 혹은 남들에 의해 만들어진 가짜인가를 돌아보게 된다. 청년들을 섬기는 자리에 있고, 말씀을 전하고, 권면하는 자리에 있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주어진 거룩, 경건의 모습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너무나 높다. 리더의 자리에서 섬기다보면,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과 권면의 수준이 나의 진정한 내면의 모습인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이런 착각 속에서 나는 스스로 경건과 거룩의 모습을 띈 가짜 껍데기를 두껍게 만들어 간다. 그리고 그 두께가 두꺼워져 갈수록 그 속에서는 썩어서 냄새나는 뼈다귀와 부패해가는 살이 있을 뿐이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을 향해서 "회칠한 무덤"이라고 일갈하셨을 때, 그것은 그들의 존재의 핵심을 꿰뚫는 말씀이었다. 그들이 인간적인 경건한 신앙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 동안, 그들의 내면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치유될 기회를 잃어버린 채 완전히 썩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모습이 나의 모습은 아닌가? 거룩하고자 하고 경건한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은 내 안에 넘쳐나지만, 그것이 나의 노력과 나의 힘, 때로는 나의 위선으로 "만들어져가는" 내 신앙의 껍데기가 아닌가? 하나님과 동행함이 없이, 그냥 동행하고 있다는 확신과 생각 속에서 그분 없이 살아가는 데 너무 익숙한...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불쌍한 인간은 아닌가?
정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내 스스로를 돌아본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서 확실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는 내 자신을 본다.
신앙의 껍데기를 벗어버려야 한다. 남들이 나를 뭐라고 하는지,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께서 이 시간 나에게 뭐라고 하시는가이다. 그것은 내 삶 속에서 내가 하나님과 "실재로" 얼마나 동행하고 있는지, 하나님 당신과 내가 얼마나 자주, 그리고 긴 시간을 만나고 있는지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회칠한 무덤이여! 나에게서 떠라가라!"고 저주의 말씀을 하시기 전에 내 스스로가 하나님께 내 있는 모습 그대로 들고 나아가 무릎꿇고 고쳐달라고 외칠 수 있다면, 그것이 복이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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